사설칼럼

한국일보

[2030 세상보기] "정인이법 만든 사람이 바로 접니다"

입력 2021. 01. 22. 15:00 수정 2021. 01. 22.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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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에서 근래 들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이 하나 있다.

21대 국회가 들어선 이후, 이 법안은 지난 연말까지 30건이 발의되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국회의원들은 월요일이 되자마자 관련 법안을 마구잡이로 쏟아냈다.

함량 미달의 법안들을 쏟아내고서는 "일하는 국회를 만들었다"며 자화자찬을 늘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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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야경. 홍인기 기자

국회에서 근래 들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이 하나 있다. 바로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법안을 처리한다는 것이다. 특히 국민의 공분을 사는 일이 한번 발생하면 평소에는 민생에 관심이 없던 국회의원들도 부랴부랴 입법을 추진한다. 그때는 중차대한 법안도 며칠 지나지 않아 뚝딱 만들어진다.

얼마 전 통과된 '정인이법'은 그 대표적 사례다. 21대 국회가 들어선 이후, 이 법안은 지난 연말까지 30건이 발의되었다. 하지만 논의는 지지부진했다. 상황이 바뀐 건 1월 2일, '그것이 알고 싶다'가 방송되면서다. 여론이 들불같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국회의원들은 월요일이 되자마자 관련 법안을 마구잡이로 쏟아냈다. 나흘 동안 무려 14건의 '정인이법'이 발의되었다. 이 법안이 상임위, 법사위, 본회의를 모두 통과하는 데까지는 채 일주일이 걸리지 않았다.

졸속으로 통과된 법안들은 대개 처벌을 강화한다든지 규제 범위를 확대한다든지 하는 내용을 핵심으로 한다. 그게 만들기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짜고짜 형량을 높이자고 하는 건 초등학생도 한다. 제대로 된 정치인이라면 자신이 만드는 법안의 맹점은 없는지, 또 예기치 못한 부작용은 없을지 세심히 살펴야 한다.

어린이 보호구역 내 교통사고를 줄이겠다고 만든 '민식이법'만 봐도 그렇다. 선거를 앞두고 도로교통법을 바꿔야 한다는 여론이 확산하자 국회는 성급히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그런데 처벌을 너무 강화한 게 문제였다. 이를 악용해 아이 부모가 과도한 합의금을 요구한다든지, 일부 철부지들이 차를 쫓아다니며 운전자를 위협하는 '민식이 놀이'를 즐긴다든지 하는 사건이 알려지면서 "개정안을 다시 개정해야 한다"는 불만들이 터져 나왔다. 쫓기듯이 만든 '민식이법'은 되레 민식이 이름에 먹칠을 한 꼴이 되었다.

'타다금지법'은 또 어떤가. 타다가 성행해 택시업계가 파업에 나서자 이내 '타다금지법'이 발의됐다. 지역구에 택시업체가 많은 의원들이 중심이 되었다. 어쩌면 미래 산업의 향방을 가늠하게 될지도 몰랐을 이 법은 제대로 된 의견 수렴도 거치지 않고 발의된 지 40여일 만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 결과 규제 사항만 잔뜩 늘어난 만신창이 법안이 탄생했다.

법조문 하나가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 따라서 단어 하나를 바꾸더라도 수많은 고려를 해야 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입법이 퍼포먼스로 전락하면서 무분별한 발의 경쟁이 붙었다. 함량 미달의 법안들을 쏟아내고서는 "일하는 국회를 만들었다"며 자화자찬을 늘어놓는다. 하도 엉성하게 만들다 보니 '전동킥보드법'처럼 무턱대고 규제를 풀었다가 문제가 불거지자 개정안이 시행되기도 전에 다시 고치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생긴다. 혼란은 당연히 우리 몫이다.

이슈가 생길 때마다 '무슨무슨법'을 허겁지겁 내놓고 인기를 좇는 정치인들, 그들은 아마 그 법을 열심히 홍보한 뒤에는 다른 이슈로 갈아탈 것이다. 그게 목적이었으니 말이다. '정인이법'을 내놓은 국회의원들이 동네에 가서 "제가 '정인이법' 만들었습니다"라며 생색낼 모습도 벌써 눈에 선하다. 그걸 생각하면 씁쓸하지만, 그래도 '정인이법'이 제대로 기능해주길 염원한다. 아동 학대를 예방하자는 취지만큼은 진심이었길 바라면서.

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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