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세계일보

[방민호의문학의숨결을찾아] 소백산 연화봉 희방사를 찾아

남상훈 입력 2021. 01. 22.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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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구명 보답으로 지어준 절
선방을 보니 '정진' 생각 많아져

무작정 떠났다 해도 될 것 같은 길이다. 아침에 병원에 들렀다 학교에 잠깐 갔다 서울 빠져나오는 길로 향한다.

오후 네 시에나 만나기로 했으니 시간 여유가 있다. 그 시간을 길에서 보내고 싶다고 생각한다. 이른 출발은 또 풍기가 이렇게 위쪽에 ‘붙은’ 것을 몰라서이기도 했다. 지난번에 무주에서 풍기로 달리면서도 내비게이션만 보고 옆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이제 지도를 보니 충북 단양 바로 아래가 풍기다.
방민호 서울대 교수·문학평론가
차는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정철의 ‘관동별곡’에 나오는 섬강을 건너고 원주 제천을 지나 내륙 고속도로로 옮겨 탄다. 영월이 나오고 시인 정기복 고향 단양을 가는데 산 넘어 산, 첩첩산중이다. 일부러 여러 번 쉬면서 심호흡도 하고 고장 안내 책자도 본다. 문득 생각 나 ‘트럼프’를 키워드 삼아 학술정보도 검색한다. 어제 바이든이 취임했다고 하나, 이제 미국은 내가 지금까지 알던 미국이 아니다.

무슨 터널인가를 지나치자 저 아래 낮게 자리 잡은 풍기의 경관이 한눈에 들어온다. 시계를 보니 뜻한 대로 아직 여유가 있다. 지난번에 스치듯 송명호 ‘선비’의 소백산중으로 들어가 버렸던 게 못내 아쉬웠다.

풍기를 가로지르는 남원천변을 타고 희방사 쪽으로 향한다. 지난해 12월 13일이 마지막 정차였다던가, 이제 중앙선 희방사역은 폐역이 되었다던가. 창락터널 지나서 얼마 가지 않아 바로 희방사역 있는 수철리, ‘무쇠달’ 마을 표지판이 보인다. 인적 끊긴 희방사역 앞에 희방사와 ‘무쇠 다리’에 얽힌 설화가 다른 곳에서보다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때는 신라 선덕여왕 12년, 태백산에서 수행하던 두운(杜雲) 스님이 소백산으로 터를 옮겼다. 깊은 산중에서 홀로 도를 닦는데, 호랑이가 한 마리 찾아와 친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이 호랑이가 목에 은비녀가 걸려 찾아왔다. 빼주고는 사람을 해친 것을 꾸짖었다. 은혜를 갚으려고 호랑이는 큰 멧돼지 한 마리를 물고 오기도 했다. 스님더러 육식을 하라는 것인가? 스님이 참 어이없었을 것이다. 이 호랑이가 어느 날 밤 또 사람 하나를 물고 왔는데, 이번에는 아리따운 젊은 여인이다. 소개 글에는 호랑이가 이 여인을 해쳐 가져왔다고 했지만, 가지가지 하는 이놈이고 보면 필시 스님더러 신부라도 삼으라고 한 짓임에 틀림없다. 열심히 간호해서 살려놓고 보니 이 여인은 경주 호장 유석의 무남독녀였다는 것이요, 딸을 살려준 데 대한 보답으로 이 유석은 두운을 위해 절을 하나 지어 드리니 이 절이 바로 오늘날 희방사(喜方寺)요, 이 절로 향하는 개천에 무쇠다리를 하나 놓아 주니, 그로부터 ‘무쇠달’이라는 땅이름이 생겼다는 것이다.

어딘가에 ‘달’은 산을 가리키는 옛말이라고 했으니 ‘무쇠달’은 무쇠가 나오는 산, 철산(鐵山)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냐 하는 의문을 옆으로 밀어두고 옛 죽령 고갯길을 잠시 걸어본다. 옛날 같으면 풍기에서 단양으로 넘어가는, 영남과 기호를 이어주는 길이다. 소백산 도솔봉과 연화봉 사잇길로 높이가 689미터에 이른다나.

고갯길을 오가던 옛사람들의 고단한 삶을 떠올리며 연화봉 희방사에 오르기로 한다. 산비탈 눈 쌓인 돌길을 밟아 오르니 산은 금방 깊은 느낌을 준다. 워낙 사람 끊기는 깊은 겨울이요, 폐역으로 설상가상이다.

무쇠다리가 앞에 보이는가 싶더니 영남 제일 희방폭포가 모습을 나타낸다. 연화봉에서 솟아나 계곡을 이루어 내려오다 뚝 떨어지는 이 폭포는 지금 희게 얼어붙어 있다. 웅장하기보다 아름답다 해야겠다. 혼자서 얼어붙은 ‘물 절벽’을 앞에 놓고 이 깊은 산의 적막을 생각한다.

두운 선사의 희방사는 조금 더 높다. 폭포를 바라보며 눈 쌓인 계곡을 무쇠다리로 건너고 가파른 나무 계단을 올라가니 드디어 희방사, 기쁜 선방의 절이다. 요즘 부쩍 ‘정진’이라는 두 글자를 생각하는 때가 많다.

그럴 수만 있으면 어떤 공부라도 기쁠 것만 같다. 올라왔으니 이제 내려가야 한다.

방민호 서울대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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