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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백두산 호랑이, 죽어서도 고통

배소영 입력 2021. 01. 22.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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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정말 크다 커. 집채만 하네."

수년 전 가족과 경북 봉화군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을 찾았다가 마주한 백두산호랑이의 첫인상이다.

산림청 산하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은 두만이 사망하자 '국내에서 사육 중인 호랑이 중 가장 오래 살았다'며 보도자료를 냈다.

이 때문에 호랑이와 같은 희귀 동물은 전문 의료폐기물 처리업체에서 내용물을 알 수 없도록 커다란 상자에 담아 소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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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정말 크다 커. 집채만 하네.”

수년 전 가족과 경북 봉화군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을 찾았다가 마주한 백두산호랑이의 첫인상이다. 노란빛을 띤 갈색 털에 선명한 검은 줄무늬, 날카로운 이빨, 매서운 눈빛까지···. 맹수의 위용에 입이 절로 벌어졌다. 이 호랑이는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때때로 사진첩에 담긴 호랑이 사진을 꺼내 볼 정도였으니 말이다.
배소영 사회2부 기자
수목원에서 사육하던 호랑이 중 한 마리인 ‘두만’이 지난해 12월 20일 20살의 나이로 숨을 거뒀다. 산림청 산하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은 두만이 사망하자 ‘국내에서 사육 중인 호랑이 중 가장 오래 살았다’며 보도자료를 냈다. 그러자 언론은 두만의 사망 소식을 발 빠르게 주요 기사로 보도했다.

이달 초 두만의 사체가 어떻게 처리됐을까 하는 의문이 문뜩 들었다. 곧바로 수목원 측에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돌아온 답변은 요즘 말로 ‘고구마 100개’가 따로 없었다. “두만의 사체를 어떻게 처리했냐”고 묻자, 수목원 관계자는 “두만은 소각하기로 내부적 결론을 내렸고 사체 처리가 끝난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국민의 알 권리와 관계없기 때문에 더는 답할 이유가 없다”고도 했다. 두만의 사체 소각과 관련해 어떤 정보도 알려 줄 수 없다는 수목원의 입장은 어쩐지 석연치 않았고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했다. 곧바로 정보공개를 청구하는 등 후속 취재에 들어갔다. 관계기관의 말을 종합하면 수목원 측은 지난달 21일 두만의 정확한 사인 규명을 위한 부검을 위해 사체를 경북대 수의대로 보냈다. 이틀 뒤인 23일 수목원은 대학으로부터 ‘두만이 소각됐다’는 통보를 받고, 별도의 확인절차 없이 부검비와 소각비 명목으로 70여만원을 수의대에 지급했다. 하지만 소각됐다던 두만은 지난 6일에도 여전히 차가운 냉동고에 보관돼 있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제야 수목원은 “수의대 직원의 실수로 두만을 아직 소각하지 못했다”면서도 “사체처리는 수의대에서 맡기로 해 우리는 법적 책임이 없다”고 발뺌했다. 십수 년 두만을 사육한 수목원의 답변치곤 너무 무성의했고 면피성 변명만 연거푸 늘어놨다. 또 사체를 소각했다고 보고한 뒤 두만을 냉동고에 보관한 수의대는 어느 기관보다 책임이 작지 않다. 호랑이 가죽과 뼈, 송곳니, 발톱 등은 고가에 거래된다. 워낙 희귀해 부르는 게 값이다. 이 때문에 호랑이와 같은 희귀 동물은 전문 의료폐기물 처리업체에서 내용물을 알 수 없도록 커다란 상자에 담아 소각하고 있다. 호랑이는 무게만 220~270㎏으로 거대한 몸집을 자랑한다. 이런 호랑이가 냉동고에 보관 중이란 사실을 몰랐다는 수의대의 대답은 왠지 궁색하게만 느껴졌다.

뒤늦게 수의대 부속 동물병원 원장은 “직원이 의료폐기물 처리업체에 (두만을) 보냈다고 했는데 업무상 착오가 있었던 것 같다”면서 “두만의 사체가 아직 냉동실에 보관 중인 사실을 확인했으며 실수를 인정하고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중국에서 건너와 평생 수목원에서 갇혀 살다가 죽은 두만. 두만은 그렇게 지난 13일 의료폐기물과 함께 소각처리됐다. 두만의 사후 처리과정에서 보여준 관계기관의 행정은 무책임의 한 단면을 여실히 보여줬다.

배소영 사회2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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