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차 합작설에 현대차 19%↑.. 뜬소문에 춤추는 한국 증시

박건형 기자 2021. 1. 22.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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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증시]
주식투자 열풍이 불고 있는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에서 시민들이 주식 관련 서적을 살펴보고 있다./뉴시스

지난 21일 증시 마감을 30분 앞둔 오후 3시 무렵, 종일 약세를 보였던 삼성전자 주가가 급등세로 돌아섰다. “삼성전자가 인텔의 그래픽 처리용 반도체(GPU)를 위탁 생산하는 계약을 체결했고 22일 발표한다”는 한 증권사 보고서가 발단이었다. 삼성전자 주가는 장외거래에서도 강세를 이어갔다. 다음 날인 22일 새벽엔 ‘삼성전자 인텔’이 포털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이날 오전 7시 진행된 인텔의 실적 설명회에 투자자들의 이목이 집중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텔 설명회에선 삼성전자 이름조차 언급되지 않았다. 인텔은 “위탁 생산을 확대할 계획은 있지만 정해진 것은 없다”고 못 박았다. 이날 삼성전자 주가는 전날 소문이 확산되기 전 수준인 8만6800원으로 하락한 채 마감했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전날 주가를 움직였던 보고서의 유일한 근거는 미국 군소 매체 보도였다”며 “소문에 일단 사고 보는 요즘 주식 투자자들의 성향을 보여준 사례”라고 했다.

◇한국 주식시장 뒤흔든 애플·테슬라

소문과 가짜 뉴스가 국내 주식시장을 움직이는 큰손으로 등장했다. 주식 게시판이나 정보방에서 출처가 불분명한 소문이 양산되고 이를 접한 개인 투자자들이 앞다퉈 매수에 나서면서 벌어진 현상이다. 일부 기업은 주가가 요동치는 것을 방치하는가 하면 직접 루머를 흘려 주가 부양에 활용하는 행태마저 보인다. 증시 호황에서 소외된 개인 투자자들의 ‘패닉 바잉(공황 구매)’ 심리를 교묘하게 조장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자료=한국거래소·각 사 그래픽=박상훈, 백형선

현대자동차와 기아차는 최근 미국 애플 관련 소문으로 주가가 급등했다. 지난 8일 “애플이 자율주행 전기차인 ‘애플카’의 생산과 배터리 개발을 함께 하자고 현대차에 요청했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이 소식에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주가는 이틀 동안 20% 넘게 폭등했다. 애플과 협력한다는 설의 진위를 확인하기보다는 무조건 현대차 관련 주식을 사야 한다는 심리가 투자자들을 지배한 것이다.

19일에는 “기아차가 애플카를 생산할 것”이라는 소문으로 기아차 주가가 이틀간 22.52% 올랐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논의 중인 것은 사실이지만 정해진 것은 없다”고 공시까지 했지만 급등세는 멈추지 않았다. 현대차 내부적으로도 주가 급등에 상당히 당혹했다는 후문이다. 협상이 성사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리고 풀어야할 과제가 많은데다 자칫 협상이 결렬될 경우 후폭풍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자동차 전문가인 차두원 모빌리티연구소 소장은 “애플카 생산 목표가 2026~2027년으로 당장 주가에 반영될 요소가 아닌데 투자자들이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KT 자회사인 지니뮤직도 소문에 주가가 출렁였다. 지난 11일 주식시장에 “KT가 전기차 업체 테슬라에 음성 인식 인공지능 서비스를 공급하고, 지니뮤직 콘텐츠를 사용한다”는 이야기가 퍼졌다. 지니뮤직 주가는 15일까지 57%나 올랐지만 테슬라코리아가 ‘사실무근’이라고 밝히자 급락세로 돌아섰다. 지니뮤직은 주가가 폭등, 폭락하는 동안 별다른 해명 공시를 내놓지 않았다.

◇소문 직접 생산해 주가 끌어올리기도

일부 제약 바이오 업체는 소문을 활용해 적극적으로 주가를 끌어올리고 있다. 바이오 업체 A사는 지난 12일 코로나 치료제 개발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는 루머가 확산되며 2만원대였던 주가가 9만원대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19일 “임상 시험용 코로나 치료제의 위탁 생산만 담당한다”는 공시를 내놓자 곧바로 주가가 하한가로 돌아섰다.

코로나 사태 이전인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찾아보기 어려웠던 ‘임상 시험 논의 중’ ‘환자 모집 원활’ 같은 보도 자료도 넘친다. 기업 가치나 성과와는 무관한 내용이지만, 소문이 될 만한 소재를 기업이 앞장서서 제공하는 것이다. 바이오 업체 B사는 지난 14일 “해외에서 코로나 치료제 임상 시험을 진행할 예정”이라는 자료를 냈고, C사는 5일 “임상 1상 첫 환자에게 코로나 백신 투여를 완료했다”고 밝혔다. 두 회사 모두 주가가 크게 뛰었다.

전문가들은 소문에 주가가 움직이는 상황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본다. 국내 증시가 활황일수록 시류에 편승한 ‘묻지 마 투자’가 많아지는데 이를 노린 세력이 소문을 양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창민 한양대 경영대 교수는 “최근 빚을 내서 주식을 사는 이른바 ‘영끌 투자’가 크게 늘었는데 주가가 급락하면 개인 파산은 물론 기업, 돈을 빌려준 금융 업계까지 연쇄적으로 타격을 받는 시스템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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