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총성 없는 전쟁터 현실 보여준 LG폰 사업 재검토

2021. 1. 23.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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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세계 3위, 26년 사업 접을 수도
미래 유망사업에 자원 집중해야
정부·정치권, 냉혹한 현실 직시하길

“이제는 2~3등으로 대충 수출해서 먹고살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모든 것이 급변하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엔 안 될 것엔 빠르게 미련을 버리는 과감한 의사 결정이 절실하다. 그렇게 아낀 역량을 선택과 집중을 통해 글로벌 챔피언이 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해야 한다.”

LG전자가 26년간 이어온 휴대전화 사업을 전면 재검토하며 사실상 매각 또는 철수의 뜻을 밝힌 것에 대한 전문가들의 반응을 취합하면 이렇다. 권봉석 LG전자 사장은 지난 20일 “모바일 사업과 관련해 현재와 미래의 경쟁력을 냉정하게 판단해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며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사업운영 방향을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스마트폰 사업의 매각 또는 철수까지 고려한 발언이었다. 시장은 LG전자의 스마트폰 부문 철수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였다.

LG전자는 삼성전자와 더불어 한국의 정보기술(IT)산업을 초일류로 키운 양대 기업 중 하나다. 가전부문 경쟁력은 세계 최강이며, 휴대폰 부문 역시 한때 세계 3위를 자랑했다. 최근까지도 LG윙 등 다양한 형태의 실험은 물론 지난 11일 온라인으로 열린 세계 최대 IT 전시회인 ‘소비자가전쇼(CES) 2021’에서 차세대 전략 스마트폰 ‘LG롤러블’의 영상을 보여주면서 반전을 노렸다.

LG전자는 지난해 코로나19 사태 속에서도 매출 63조 2638억원, 영업이익 3조 1918억원의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렸다. 세계 3위 자동차 부품업체인 캐나다 마그나와 합작법인 설립 소식을 밝히면서 자동차 전장사업을 차세대 먹거리로 내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스마트폰 부문은 깊숙이 곪아 있었다. 23분기 연속 적자행진을 해왔고, 누적적자가 5조원에 달했다. LG 휴대폰의 위기는 2007년 아이폰의 등장과 함께 시작된 스마트폰 출시에 실기(失期)하면서 시작됐다. 한번 돌아선 소비자들은 끝내 LG폰을 외면했다.

LG전자의 스마트폰 사업 구조조정은 한국의 기업과 산업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무리 잘나가던 글로벌 기업도 한순간의 방심이나 그릇된 의사 결정으로 돌이킬 수 없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냉혹한 현실을 보여준다. 글로벌 무한경쟁은 해가 갈수록 더 격렬해지고 있다. 시대를 읽지 못해 변신에 실패하고 시장에서 잊혀져 가고 있는 글로벌 기업을 찾아보기란 어렵지 않다. 노키아가 그랬고, 소니가 그랬다. 삼성전자 역시 이런 변화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2014년까지만 해도 삼성은 중국 시장에서 스마트폰 1위를 자랑했다. 하지만 이젠 7위로 밀려났다. 메모리반도체 부문에서는 여전히 세계 1위의 경쟁력을 갖추고 있지만, 남아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미·중 갈등 속에 중국 기업들이 고전하면서 시간을 벌긴 했지만, 중국이 또다시 달려올 것이라는 건 삼척동자도 예측할 수 있다.

이렇듯 기업이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이며 분투하고 있는데도 정부와 정치권의 인식은 현실과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 기업의 사기를 북돋우고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기는 커녕 사회 양극화와 청년실업 등 모든 갈등과 병폐를 기업 탓, 재벌 탓으로 돌리고 있다. 마치 기업이 적폐의 온상인 양 걸핏하면 기업을 옥죄고 규제를 양산하기 바쁘다.

재계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기업규제 3법(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통합감독법)이 거대 여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했다. 민주당은 또 2월 임시국회에서 반도체·IT관련 대기업 등을 대상으로 한 ‘코로나19 이익공유제’ 법안을 처리할 방침이라고 한다. 거친 격랑의 시대를 헤쳐가는 기업들의 경쟁력을 저하하고, 기업활동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게 불 보듯 뻔하다.

정부와 정치권은 이제라도 LG전자 휴대폰 사업 재검토 결정의 함의를 살피고 기업이 놓인 냉엄한 현실을 직시하는 계기로 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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