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대북전단, 프레임에 감춰진 진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 2021. 1. 23.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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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프레임은 사람이 세상을 바라보는 틀이다. 언어학자인 조지 레이코프는 프레임을 ‘특정한 언어와 연결되어 연상되는 사고의 체계’라고 정의한다. 한 번 프레임이 형성되면 쉽게 바뀌지 않는다. 사람은 프레임에 부합하는 사실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나아가 프레임에 의해 사실이 왜곡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대북전단에 대한 공론장에서, 때로는 진실보다 프레임이 더 영향력을 발휘하는 경우를 보면서 답답함을 금할 수 없었다. 일부 정치인과 보수언론, 그리고 대북전단으로 이익을 취하는 단체들이 만든 프레임이 감추고 왜곡하는 대북전단의 진실을 알아야 한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

첫째, ‘대북전단금지법’ 프레임이다. ‘대북전단금지법’이란 법률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전문가들도 잘못된 프레임으로 인해 이런 법률이 제정됐다고 오인하고 있다. 전단 규제는 2020년 12월 공포된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 개정안에 일부 요소로 규정돼 있을 뿐이다. 또한 개정법률이 대북전단만을 규제하는 것도 아니며, 전단을 살포했다고 바로 처벌받는 것도 아니다. 이 법률은 국민의 생명·안전을 침해하고 국가안보를 저해하는 군사분계선 일대 확성기 방송과 게시물 게시, 전단 등 살포라는 3개의 극단적 표현행위만 금지하고 있다. 그것도 국민의 생명·신체에 위해를 끼치거나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때만 벌칙을 부과하도록 엄격하게 요건을 규정하고 있다.

둘째, ‘북한인권운동 금지’ 프레임이다. 이들은 대북전단만이 북한 인권을 증진하는 방법이라고 강변하며, 대북전단 규제는 북한인권운동 금지 조치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대북전단이 아니더라도 북한 인권에 기여할 방법이 많다. 휴대폰 600여만대가 보급되고, 400여개 장마당이 열리고 있는 북한 사회에서 대북전단은 비웃음을 살 뿐이다. 수준 높은 한류 드라마·영화를 쉽게 접할 수 있는 북한 주민들에게, 북한 지도부를 조잡하게 합성한 음란사진이나 가짜뉴스를 담은 전단은 오히려 반감과 부정적 인식만을 남길 뿐이다.

셋째, ‘선택적 인권’ 프레임이다. 전단 관련 단체와 보수언론, 일부 정치세력은 북한 주민의 인권 증진을 외치면서 전단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대북전단으로 생명까지 위협받는 112만 접경지역 우리 국민의 인권은 철저히 외면하고 무시한다. 파주 통일촌 주민들은 2020년 8월 유엔북한인권특별보고관에게 제출한 진정서에서 전단 살포로 인해 기본적인 의식주 해결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학생들은 등교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전단 단체들은 마치 접경지역 국민의 생명권과 생존권, 어린이들 학습권마저 짓밟을 ‘특권’이라도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하지만 헌법이나 유엔인권규약 등 어디에도 나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의 생명권과 생존권을 침해할 ‘권리’나 ‘특권’은 인정되지 않는다. 보수언론과 일부 정치세력은 이런 자명한 사실조차 외면한 채, 전단 단체들의 ‘특권’을 정당화하고 옹호하고 있다.

넷째, ‘해외인사들의 대북전단 지지’ 프레임이다. 이들은 해외인사들이 대북전단 규제에 반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국내외 대북전단 단체와 이들과 연계된 언론들은 세계 각국에 왜곡한 법 내용을 선전하고, 입장표명을 요구하며 대한민국을 비방하고 있다. 미국 하원의원 중에서도 독불장군으로 이름난 크리스 스미스는 우리 정부를 비방하고, 전단 규제는 물론 코로나19 방역조치까지 비난하고 있다. 하지만 대북전단 단체와 언론·정치세력은 대한민국을 모독하는 스미스를 치켜세우고 있다. 1월19일 기준 미국의 코로나19 감염자는 인구 규모를 고려해도 한국의 50배, 사망자는 47배 이상 많다. 우리의 엄격한 방역조치를 비난하는 스미스는 한국인은 물론 미국인의 생명권마저 경시하는 반인권적 인사일 뿐이다. 대북전단 규제와 방역조치를 비난하는 스미스를 옹호하는 보수언론과 정치세력도 우리 국민의 생명권과 생존권을 경시하는 반인권적 집단이라 아니할 수 없다.

베를린자유대 이은정 교수는 최근 언론기고에서 1960년대 서독연방군이 극비리에 동독으로 전단을 보낸 사실이 알려지자 ‘슈피겔’ 등 서독 언론들은 민주주의에 흠집 낸 부끄러운 일이라고 비난하였으며, 지금도 부끄러운 역사로 기록돼 있다고 언급했다. 1965년 6월 헤센주 내무장관은 전단 살포를 금지하면서 ‘전단 살포는 정보전달 목적에도 부합하지 않는 의미 없는 행위이며, 동독 주민들을 위험에 빠뜨리고, 접경주민들의 일상생활을 어렵게 한다’고 말했다. 이해관계 때문에 대북전단을 옹호하는 보수언론과 일부 정치세력, 관련 단체들에 1960년대 서독인 수준의 양식과 염치를 기대하는 것은 과한 것인가.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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