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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에서] 74세 '월드 스타' 윤여정

김성현 기자 입력 2021. 01. 23. 03:02 수정 2021. 01. 24.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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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정

“제가 방금까지도 개처럼 일했어요.”

수화기 너머에서 들리는 배우 윤여정의 푸념에 파안대소하고 말았다. 결코 빈말이 아니다. 그는 최근 재미 교포 작가 이민진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미국 드라마 ‘파친코’에 캐스팅됐다. 얼마 전 국내 촬영을 마쳤고 이달 말 캐나다 현지 촬영에 들어간다. 2019년 오바마 전 미 대통령이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놓았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는 첫 문장부터 당신을 사로잡는다”고 격찬했던 그 소설이다.

이 드라마는 애플의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를 통해서 방영될 예정이다. 일흔넷의 여배우가 미 드라마의 주연이 되는 셈이다. 그는 “내 맘대로 일이 적당히 순서대로 오는 법은 없다. 올 때는 몰려오고 안 올 때는 또 안 오니까. 노구를 이끌고 헤매고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그의 말에 다시 웃었다.

자주 그의 소식을 듣고 가끔씩 안부를 묻는다. 그보다 더 가끔씩은 만나고 인터뷰도 한다. 무심한 지인이자 게으른 기자가 불쑥 전화를 한 이유가 있었다. 한국계 미국 감독 리 아이작 정(한국명 정이삭)의 영화 ‘미나리’에 출연한 그가 최근 로스앤젤레스·보스턴 등 미 현지 비평가 협회에서 여우 조연상을 잇따라 받았다. ‘아카데미상의 전초전’에서 청신호가 켜진 셈이다. 미 연예 매체들도 아카데미상 여우 조연상 후보 가운데 한 사람으로 윤여정을 거론하고 있다. 물론 오는 4월 시상식까지는 아직 변수가 많다. 하지만 만약 후보로 선정되면, 윤여정은 어맨다 사이프리드 같은 할리우드 스타들과 경쟁하게 된다.

판씨네마 영화 '미나리'의 배우 윤여정

윤여정의 수상 여부에 관심이 쏠리는 건 온라인 연예 뉴스용 관심거리기 때문만은 아니다. ‘미나리’는 오는 3월 국내 개봉을 앞두고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서 첫선을 보였다. 1박 2일 짧은 출장길에 이 영화를 관람할 기회가 생겼다. 윤여정은 영화에서 딸의 초대를 받고 미국으로 건너가는 친정어머니 역할을 맡았다. 한인 가정 이야기를 담다 보니 한국어 대사가 영화의 절반 이상이다.

제목인 ‘미나리’는 영화에서 윤여정이 시냇가에서 심고 키우는 작물이다. 영화에서 윤여정은 손주들에게 말해준다. “미나리는 잡초처럼 잘 자라니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누구나 뽑아 먹을 수 있다”고. 질긴 생명력을 상징하는 미나리는 한인 가정에서 태어난 감독 자신에게도 남다른 의미였을 것이다.

지난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4관왕의 위업을 달성했다. 하지만 한국 배우의 아카데미 연기상 수상은 아직 상상할 수 없었던 영역이다. 일흔을 넘긴 배우가 전인미답의 꿈에 도전하고 있다. 윤여정은 까칠한 말투로 “제발 김칫국 좀 그만 먹여”라고 타박하겠지만, 성공이든 실패든 힘껏 응원하고 싶다. 꿈꾸는 자에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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