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몇 년 전에 다닌 헬스클럽은 지역에서 가장 큰 규모였다. 하지만 1000평이 넘어 보이는 그곳에서 청소하는 사람은 1년간 초로의 할머니 한 사람뿐이었다. 기구를 들어 올리며 땀을 흘리는 근육질의 청년들 사이로 작고 마른 할머니가 물 양동이를 들고 가는 모습은 내게 초현실적으로 보였다. 노인의 구부정한 어깨 사이로 곧게 허리를 펴는 필라테스 동작을 반복하는 사람들의 모습 역시 그랬다. 돈을 내고 땀 흘리는 것과 돈을 벌기 위해 땀 흘리는 것. 운동과 노동의 차이라고 말하기에는 늘 뒤끝이 씁쓸했다.
운동을 끝내고 돌아가는 길에 편의점에서 이온 음료를 사 마셨다. 자주 가던 편의점은 대기업 계열이 아닌 소규모 편의점이었다. 그 편의점에서 나 말고 물건을 사는 사람은 거의 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오픈 초기 매장을 가득 채웠던 물건들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고, 결국 내가 마시던 이온 음료도 보이지 않았다. 갈 때마다 중년의 편의점 사장은 뭘 하는 건지 늘 스마트폰만 봤다. 나는 다른 편의점에서 이온 음료를 사기 시작했다. 산책을 하던 어느 밤, 편의점 앞에 놓인 기계에서 인형 뽑기에 열중하던 사장을 보았다. 그는 잡으려던 인형을 놓친 게 분한 건지, 아니면 서러운 건지, 갑자기 비명을 지르더니 불빛 환한 기계 앞에서 울기 시작했다. 일그러진 그를 본 얼마 후, 편의점은 사라졌다.
요즘 배달 음식을 시키면 음식점 사장의 서비스 메뉴와 손 편지가 함께 올 때가 있다. 고작 찌개 하나 시켰을 뿐인데, 정성스레 고객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는 메모가 과분하단 마음이 든다. 하지만 진실은 자영업 시장의 과잉 경쟁의 단면이다. 치킨 공화국도, 치킨 계급론도 자영업 비율이 과도하게 높은 이 나라의 그림자다. 치킨을 튀기는 자, 배달하는 자, 사 먹는 자, 그 누구도 요즘은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으니 말이다. 코로나로 자영업 시장의 피해가 극심하다. 코로나를 그저 맥주 이름으로만 알았던 시절이 아득하다. 야외에서 맥주에 치킨을 먹으며 모기 걱정이나 하던 그날은 또 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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