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 코리아] 철거민이 일군 우리 동네가 자랑스럽다

김시덕 교수 2021. 1. 23.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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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 봉천·신림의 '승리촌'
도시화에 밀려난 이들, 철거 걱정 잊고 새 삶 개척
자랑스럽게 기억할 역사

2019년 8월 서울시 관악구에 관악문화재단이 설립되었다. 서울 각 지자체 문화 재단 중에선 최근에 만들어진 편이다. 지난해 말, 이 재단에서 ‘관악 문화예술 기초 자료집’ 집필을 의뢰받았다.

그간 공부하는 과정에서 “인문학자는 자기가 사는 지역에 대한 책을 쓸 수 있어야 한다”는 격언을 접해왔다. 이 격언대로 지난 8년간 거주한 서울 남쪽 관악구에 대한 책을 쓸 기회가 온 것이기에 감사한 마음으로 요청에 응했다.

서울에서 태어나 내내 관악구 바깥에서 살던 나는, 2013년 가을부터 관악구 안 직장에서 근무하며 처음 관악구에 살게 되었다. 직장은 신림동(대학동)에 있고, 집은 봉천동(낙성대동)이며, 남현동이 자리한 사당역 사거리를 거쳐 버스와 지하철로 서울의 다른 지역에 나가고는 한다. 관악구 세 법정 동에 걸쳐서 생활하다 보니 책을 쓰는 내내 친근감과 즐거움을 느꼈다.

1963년 이전까지 한적한 농촌이던 관악구 지역은, 한강 북쪽 서울 구도심에서 철거민과 수재민이 밀려들며 도시화를 시작했다. 1980년대 도시 빈민 문제를 다룬 중요한 연구서인 정동익의 ‘도시 빈민 연구’에는 “서울 발전의 선발대는 빈민들이었다”(16쪽)는 말이 적혀 있다. 이 말을 빌리자면, 관악구 발전의 선발대는 빈민들이었다. 수재민촌과 철거민촌으로 시작된 현대 관악구의 탄생은 재개발로 지워버리거나 감춰야 할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당당히 드러내고 계승해야 할 부분이다. 이런 의미에서 관악구의 진정한 출발은 1963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울시가 구도심 불량 주택을 재개발하며 그곳 주민들을 시 외곽으로 이주시키는 정착지 사업을 시작한 것은 1959년이었다. 1963년 경기도 시흥군에서 서울시 영등포구로 편입된 지금의 봉천동·신림동 지역에 생긴 봉신동사무소는 끝없이 밀려들어 오는 철거 이주민 지원이 주 업무였다. 바로 그해 10월, 남산 해방촌의 철거민 450여 가구가 봉신동사무소 근처인 도림천변 철거민 수용소에 들어왔다. 현재 지하철 2호선 신림역이 있는 신림 사거리 근처다. 또 비슷한 시기에는 이촌동 수재민 3600가구도 봉천동 산101번지 일대로 밀려들기 시작했다. 1980~81년에 인기를 끈 TV 드라마 ‘달동네’의 무대였다는 ‘봉천동 달동네’는 이렇게 탄생했다. 비단 관악구만이 아니라 강북·은평·강동구 등 새로이 서울시에 편입된 외곽 지역에서 공통적으로 일어난 일이다.

1967년의 신림사거리·도림천 주변 지적도. 관악구 최초의 철거민 정착촌인 일명 ‘승리촌’을 형성한 길쭉한 건물 45동이 보인다. /김시덕 서울대 규장각한국연구원 교수 제공

1967년의 신림사거리·도림천 주변 지도에는 길쭉한 건물 45동이 보인다. 이것은 관악구 최초의 철거민 정착촌인 일명 ‘승리촌’이다. “신림1동 1635,1636번지 일대 도림천변은() 1963년 서울시 보사국에서 시유지 4700여 평에 간이 주택 45동 450가구분을 건립하고, 그해 9월 용산 해방촌 철거민 239가구가 이주했던 곳이다. 입주자들은 이제까지의 철거라는 불안에서 해방되자 이곳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해 나가기 위해 이곳을 승리촌이라 불렀다.”(‘관악20년사’ 634쪽)

이것은 감추어야 할 부끄러운 과거가 아니다. 오히려 승리하는 약자들이 현대 관악구를 출범시켰음을 자랑스러워해야 한다.

도림천변 승리교 앞에서 바라본 옛 '승리촌' 자리에 세워진 아파트. 2021년 1월 촬영. /김시덕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교수 제공

승리촌은 1988년 재개발이 시작돼 1993년 신림동부아파트로 준공되어 그 모습이 사라졌다. 하지만 승리촌 앞 도림천에는 승리교라는 다리가 있고, 그 건너편에는 “도림천에서 용 나는 작은 도서관”이라는 관악구립도서관이 있다. 승리촌의 역사를 알고 지은 것인지는 모르지만, 이 지역의 본질을 꿰뚫은 이름이다.

가난하고 힘든 삶이지만 끝내 승리하리라 다짐했던 사람들이 일궈낸 지역에 사는 것이 기쁘고 자랑스럽다. 관악문화재단에서 자료집 제작을 의뢰받은 덕에 ‘승리촌’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관계자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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