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남자 손을 거치면 장난감도 예술이 된다
“어릴 때부터 작고 귀여운 장난감을 좋아했어요. 한마디로 철이 좀 덜 들었죠. 열여섯 마음으로 지금까지 살았더니 사람들이 ‘성덕(성공한 덕후)’이라 부르더군요.”
독일의 유명 장난감 ‘플레이모빌’을 전문적으로 커스텀(자기 취향대로 디자인 등을 바꾸는 것)하는 작가 김태식(50)씨는 플레이모빌 수집 동호인들 사이에서 ‘금손 친구’로 불리는 유명 인사다. 특히 자신이 좋아하는 자동차, 커피, 햄버거, 스포츠용품 등 브랜드 로고를 완벽하게 새겨넣어 ‘기업이 공식적으로 만들어 파는 상품 같다’는 극찬을 받아왔다. 요즘 유명 커피 체인 스타벅스가 독일 플레이모빌 본사와 협업해 젊은 층 사이에서 소위 대박이 난 ‘피겨 세트’도 그가 디자인 초기 단계에 참여했다. “스타벅스에서 제 작품을 좋게 보고 먼저 연락을 줬어요. 시제품을 만들고, 직접 독일에 가서 아이디어를 주고받은 끝에 지금의 완성작이 나오게 됐죠.” 이 한정판 피겨를 사기 위해 새벽부터 수십명이 전국 각지의 스타벅스 매장 앞에서 줄을 서는 ‘진풍경’까지 벌어졌다.
지난 19일 경기도 용인의 작업실에서 만난 그는 “명화나 클래식만 예술인가요? 사람들이 보고 즐거우면 그게 곧 작품”이라며 “장난감도 얼마든지 예술 작품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건국대 산업디자인과를 졸업하고 산업 디자이너로 활동했다. 프리랜서로 일하며 5년여 전부터 장난감 커스텀에 본격 몰두했다. 2018년 맥도날드 사진전에 커스텀 피겨 사진을 출품해 1등 했다. 부상으로 미국 시카고 맥도날드 본사에 초청됐다. 2019년엔 그의 작품이 여행책 ‘론리플래닛’에 실렸다. 마카오 정부 관광청 요청으로 피겨를 만들고, 그걸 마카오 주요 관광지에서 촬영해 책자에 담는 작업이었다.
여행 가는 곳마다 중고 장난감 가게를 찾아가 샅샅이 뒤진다. “다른 사람들도 예쁜 장난감을 보고 웃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런던에서만 파는 피겨를 150개 사다가 친구들에게 나눠줬다. 손톱보다 작은 부품을 구하려고 울며 겨자 먹기로 5만원짜리 피겨를 산 적도 있다.
왜 하필 플레이모빌이냐 물으니 “항상 웃는 얼굴이잖아요. 다 같이 웃으면 좋으니까요” 하며 덩달아 웃었다. “여행을 가도 제 얼굴 대신 피겨를 놓고 사진을 찍어요.” 손가락만 한 피겨를 카메라에 담으려다 보니 관광지에 드러눕다시피 하는 경우가 많아 지인들은 늘 ‘저 형 뭐해?’라며 놀린다.
“아내가 정말 싫어하죠. 그런데 이젠 포기한 것 같아요, 하하. 돈 벌려고 만드는 게 아니니까. 제가 좋아하는 일이니 초심을 지켰을 뿐이거든요.” 그는 “피겨를 모으느라 얼마나 많은 돈을 썼는지 헤아릴 수도 없을 정도이지만, 나날이 발전하는 내게서 기쁨을 느낀다”고 했다. ‘어떤 피겨를 모으면 좋으냐’고 물으니 “새로 출시된 거 사세요”라고 했다. “오래되고 희귀한 것도 좋지만, 새롭고 예쁜 게 계속 나와요. 오늘 내가 즐거우면 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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