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연 PD의 방송 이야기] 방송국 보물 1호

이수연 입력 2021. 1. 23.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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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국의 ‘보물 1호’는 무엇일까? 누구는 비싼 방송 장비라 말하고, 또 누군 유명 연예인이라 할 것이다. 근데 여기 아주 유력한 ‘보물 1호’ 후보가 있다. 하루에도 수십 시간씩 만들어지지만,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의 산물(産物)’. 바로 영상과 음원 자료다.

하루 24시간 방송되는 프로그램을 제작하려면 그 몇 배에 달하는 촬영 영상이 필요하다. 인터뷰나 브리핑만 해도 방송엔 단 몇 분만 쓰이지만, 실제 촬영 원본은 몇 시간이 훌쩍 넘는 경우가 많다. 이 방대한 영상들은 훗날 역사의 기록으로 큰 가치를 가진다. 따라서 방송국은 보석만큼이나 소중하게 영상 자료를 모아두는데, 이를 ‘아카이브(archive·기록 자료)’라 한다.

과거엔 영상 자료 보관 방식이 도서관과 비슷했다. 커다란 방에 테이프를 가득 채워놓고 일일이 목록을 검색해 영상을 찾았다. 또 편집하려면 테이프 대출을 해야 하는데, 만약 내가 써야 할 영상을 다른 팀이 먼저 빌려 가면 그들을 찾아내려고 온 편집실을 뒤지기 일쑤였다. 제작진은 영상 자료를 더 많이, 더 먼저 차지하기 위해 산더미 같은 테이프 수레를 끌고 다니는 일이 다반사였다.

테이프 수레가 없어진 건 ‘디지털 아카이브’ 세상이 열리면서부터다. 모든 영상 자료를 말 그대로 디지털로 저장하게 되면서, 앉은 자리에서 컴퓨터로 영상을 불러내고 바로 편집도 할 수 있게 됐다. 몇 사람이 같은 영상을 동시에 사용해도 되니, 제작진에겐 ‘테이프 쟁탈전’을 끝낼 천지개벽이 일어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디지털 아카이브는 새로운 형식의 프로그램도 만들어냈다. 최근 1990~2000년대, 일명 ‘탑골가요’ 영상을 모아 다시 보여주는 ‘아카이브 프로그램’들이 속속 선보여지고 있다. 신규 촬영은 적고 자료 영상을 엮어 제작하는 형식이니, 가성비 만점이라 할 수 있다.

영상 자료의 가치가 커지는 만큼 몸값도 높아지고 있다. 방송국 간엔 ‘몇 초에 얼마’ 가격을 정해놓고 거래도 한다. 역사가 오래돼 풍부한 아카이브를 가진 방송국들이 두둑한 곳간을 가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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