맏딸이 살림밑천? 서로를 증오한 부모 사이에서 난 외로운 중재자였다

홍여사 2021. 1. 23.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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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다방으로 오세요!]
[아무튼, 주말]
일러스트= 안병현

옛말에 첫딸은 살림 밑천이라던가요? 실제로 딸을 희생시켜 살림을 불릴 생각은 전혀 없음에도 그 말에 묘한 위안을 얻었다는 우리 어머니들. 그녀들은 본능적으로 알았나 봅니다. 어린 나이에 멋모르고 낳은 딸이 어쩌면 그녀들의 고달픈 이야기를 제일 많이 들어주고 오래 기억해 줄 사람이라는 걸.

제게는 두 살 아래의 여동생이 하나 있습니다. 생긴 것도 비슷하고, 자라온 환경도 다를 바 없는, 내겐 가장 가까운 존재이지요. 그런데 동생과 이야기해보면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의 양과 질은 저와 비교가 안 됩니다. 그 애가 기억하는 건 부모님이 자주 다퉜다는 것, 경제적으로는 어렵지 않았지만 텔레비전 속의 가족처럼 화목하지 못했다는 것 정도입니다.

그러나 저는 부모님이 어떤 표정으로 무슨 말을 퍼부으며 싸웠는지 세세히 기억합니다. 자다가 깨보니 엄마가 울며 가방을 싸고 있던 모습을 기억하고, 귀가한 아버지가 차갑게 방문을 닫아걸던 소리를 기억합니다. 심하게 다툴 때면 부모님은 우리 자매를 집 밖으로 내보내셨고, 우린 엄마가 쥐여준 1000원짜리로 과자를 사서는 집 근처 공터에 앉아 있곤 했죠.

한번은 여동생이 묻더군요. 언니, 우리 엄마 아빠 이혼해? 입에는 막대 사탕을 문 채로 이혼의 뜻을 아는지 모르는지, 천진하고 말간 표정으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지요. 위로 언니가 있다면 제가 묻고 싶은 말이 그 말이었습니다. 엄마 아빠 이혼해? 그리고 ‘아니'라는 대답을 간절히 기다렸을 겁니다.

그 시절 열 살쯤이었던 저는 이혼이란 단어가 머릿속에 묵직하게 자리 잡고 암덩이처럼 커져만가는 느낌이었습니다. 엄마 아빠가 날마다 다투고 서로 미워한다 해도 이혼만은 하지 않기를 바랐지요. 그런데 그 걱정을 동생에겐 숨겨야 한다는 이중고까지 겪고 있었습니다. 저는 고개를 저으며 ‘아니!’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서 듣고 싶은 말을 내 입으로 했죠. “엄마 아빠들은 다 싸워. 싸운다고 꼭 이혼하는 거 아니야.”

어렸지만 저는 그때 본능적으로 알았던 걸까요? 부모님의 불화는 이혼으로 나아가는 불화가 아니라 불행 속으로 서서히 가라앉는 불화라는 것을요. 그 시절로부터 삼십 몇 년이나 흐른 지금까지도 두 분은 이혼하지 않고 있습니다. 더욱 뿌리 깊은 미움과 냉랭한 경멸로 서로 비난하면서도 말입니다. 자식 때문에, 부모님 때문에, 체면 때문에, 실익이 없기 때문에….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며 이혼만은 미루어 왔지만, 결론은 하나입니다. 두 분 다 진심으로 이혼을 원치는 않았던 거죠. 이혼하지 않고 버티느라 힘들어, 더 많이 싸우고 더 많이 미워하며 살아야 하더라도 말입니다.

“차라리 엄마 아빠가 이혼했으면 좋겠어. 누구랑 살든 난 상관없으니까….”

청소년 시절에, 텔레비전 드라마나 외화에서 이런 말을 들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몸이 굳곤 했습니다. 당차게 그런 말을 하는 브라운관 속 아들 딸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거든요. 어떻게 상관이 없을까요? 물론 엄마랑 살아도 살 수 있고, 아버지랑 살아도 살아지겠지만, 두 분이 이젠 남남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견뎌낸단 말일까요? 부모님의 다툼이 지긋지긋했다면, 두 분의 이혼은 끔찍했습니다. 지긋지긋함을 잘 견뎌 끔찍함을 유예할 수 있다면,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죠.

저는 우리 집이라는 험한 세상 안에 걸쳐진 작은 다리 같은 존재입니다. 엄마의 기슭과 아빠의 기슭에 걸쳐진 외나무다리요. 아버지가 아버지의 기슭에 완강히 버티고 있다면, 어머니는 늘 다리 위에서 불안하게 서성이고 있지요. 엄마에겐 저뿐인 듯했습니다. 불행하다 말할 사람도, 불행의 이유를 들어줄 사람도, 그 진짜 이유를 이해하는 척해줄 사람도….

다리의 역할은 지금도 여전합니다. 엄마는 늘 나를 붙잡고 이혼하고 싶다 말하죠. 너도 알지? 기억하지? 네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물론 나는 기억하고, 알고 있습니다. 아홉 살쯤부터 엄마에게 들어왔으니까요. 아버지는 그저 무심하고, 무감각한 남자일 뿐입니다. 아버지가 이혼하지 않는 이유는, 굳이 그럴 가치조차 없기 때문일 겁니다. 결혼하지 말았어야 할 사람이 아버지라면 이혼하면 더 잘살 사람도 아버지일 겁니다. 아버지는 엄마에게 무관심할 뿐 아니라 바라는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엄마는….

“언니는 엄마한테 가스라이팅을 당한 거야. 착한 딸, 어른스러운 맏이가 되어 엄마의 히스테리를 받아주고 동생에겐 보호막 역할까지 해주길 바랐던 거지. 명백한 아동 학대야.”

어느덧 나보다 키가 크고 똑똑해진 여동생은 요즘 그렇게 가차 없이 말하곤 합니다. 이미 엄마 전화를 피하는 그 애는 이혼이 모든 걸 해결해줄 것처럼 말합니다. “두 사람 빨리 이혼하라고 해. 더 이상 자식에게 불행을 생색내거나 전시하지 말고.” 그리고 저를 탓합니다. “언니가 자꾸 들어주고 중간에서 해결해주니까, 그걸 연료 삼아 더 싸우는 거야. 무시하고 차단해, 제발.”

동생 눈에는 제가 바보로 보이나 봅니다. 그럼에도 그 애는 저를 차단하지는 못합니다. 저를 통해 엄마 아빠 이야기를 전해 듣고, 열을 내고, 혀를 차고,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동생. 그러고도 다음에 만나면 또 궁금해합니다.

가스라이팅을 당한 건지, 트라우마로 머리가 이상해진 건지 모르겠지만 저는 도저히 엄마를 차단할 수가 없습니다. 엄마는 부족한 사람이 맞습니다. 이혼하고 싶다고 평생 말해왔지만, 그건 행복하지 않다는 비명일 뿐입니다. 엄마는 결혼이라는 틀을 벗어나 행복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행복해야 한다는 집착이 너무 강하고, 행복의 질감과 형태에 대한 고정관념이 강력한 사람입니다. 다른 식의 행복을 찾아갈 줄도 모르고, 남이 주지 않는 행복을 만들어낼 재주도 없습니다. 아마 이혼한다면, 엄마는 눈앞에 안 보이는 아버지만 생각할 겁니다. 나더러, 과거의 유령과 함께 싸우자고 하겠죠.

그래서 저는 오늘도 진심 반 거짓말 반 엄마를 달랩니다. 엄마 말이 맞고, 엄마 심정 충분히 이해하지만, 엄마가 조금만 참으라고요. 엄마 덕에 우리 자매가 바르게 크지 않았느냐고요. 그러면 엄마는 안심하고 흡족해합니다. 가스라이팅의 결과인지, 학대의 후유증인지 혹은 엄마의 영원한 ‘인생 밑천’인 건지 모르겠지만 저는 이 역할을 앞으로도 계속 할 것 같습니다. 내게는 나 같은 맏딸이 없다는 것을 감사해하며….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사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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