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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첨 번호 알려주는 AI까지.. 로또 공화국 천태만상

백수진 기자 입력 2021. 01. 23. 03:08 수정 2021. 02. 08.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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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지난해 로또 판매액 역대 최고
지난 14일 서울의 한 복권 판매점 앞에 로또를 사려는 사람들이 줄 섰다. 지난해 로또 복권의 하루 평균 판매액은 130억원(잠정치)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뉴시스

대구에서 일하는 공무원 이모(37)씨는 로또 당첨 번호를 발표하는 토요일 밤만 되면 “첫사랑을 기다리듯 설렌다”고 했다. 그는 요즘 매주 1만원씩 로또를 산다. 당첨자를 대거 배출한 전국의 ‘로또 명당’도 줄줄 꿰고 있다. 이씨는 “부모님한테 기대지 않고선 저처럼 평범한 사람이 월급만 모아서 집을 살 수가 없지 않냐”고 한탄했다. “로또에는 유일하게 나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이 남아 있달까요. 100% 운이니까요. 점점 로또나 주식으로 사람이 몰리는 걸 보면 사회 구조가 기형적으로 변한다 싶긴 하죠.” 이씨는 당첨되면 “1억은 사회에 기부하고, 나머지는 집을 사겠다”고 했다.

코로나로 인한 불황 속에서 지난해 로또 복권 판매량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실이 기획재정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0년 하루 평균 로또복권 판매액 잠정치가 130억원에 달했다. 일평균 판매량은 1297만8093장. 단순 계산하면 국민 4명 중 1명은 하루 한 장씩 로또를 산 셈이다. 일평균 판매액 증가율도 2018년 4.8%(109억원), 2019년 8.2%(118억원), 지난해에는 10.1%(130억원)로 가팔라졌다. 크리스마스가 있던 943회 차(12월 20~26일)는 복권이 한 주에만 약 1001억원어치 팔려나갔다.

‘로또’로 검색하면 관련 애플리케이션(앱)만 250여 개 쏟아진다. AI(인공지능)가 역대 당첨 번호 데이터를 분석해준다거나 꿈에서 나온 단어들을 입력하면 이에 맞게 번호를 추출해준다는 로또 해몽 앱까지 나왔다.

AI를 이용한다는 한 앱은 “AI로 역대 당첨 번호의 상관관계를 분석하고, 산출된 번호는 수치화된 AI 점수로 표시된다”고 홍보했다. 역대 당첨 번호 중 적게 나왔던 번호가 이번에는 뽑힐 확률이 높다는 전제다. 이 앱에선 당첨금을 입력하면 세금을 떼고 실수령액을 알려주는 당첨금 계산기부터 현재 위치 주변의 로또 명당, 역대 당첨 번호 통계 등까지 제공했다. 또 다른 앱은 “꿈에서 나온 것들을 최대한 많이 입력하면 해당 단어와 연관 있는 숫자를 데이터에 근거해 산출한다”며 여섯 단어를 입력하라고 했다. 흔히 길몽이라 여기는 돼지·연예인·불·할머니·할아버지를 모두 넣어 숫자를 추천받았다. 가장 높은 AI 점수를 받은 번호와 길몽 번호로 서울의 한 ‘로또 명당’을 찾았으나 맞힌 번호는 단 하나였다.

“로또 1등의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는 로또 1등 체험 앱도 있다. 원하는 회차와 함께 ‘1등’을 선택하니 “축하합니다! 총 20억2538만4341원 당첨”이라는 메시지와 함께 가상으로 만들어진 당첨 화면이 떴다. 결혼을 앞두고 작년에 로또와 주식을 시작한 회사원 고모(29)씨는 “재미 삼아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로또 당첨 시 행동 강령’을 친구들끼리 공유하기도 한다”면서 “예전엔 복권 같은 걸 왜 사나 했는데 신혼집을 구하면서부터 일확천금이라도 바라는 심정이 이해되더라”고 했다.

유튜브에서는 기출문제를 풀듯 역대 당첨 번호를 분석하는 로또 강좌도 인기다. 당첨 번호 6개 중 홀수·짝수 비율부터 소수(素數) 개수, 숫자의 합계까지 표와 그래프를 동원해가며 분석한다. 통계 분석으로 적중률 높은 숫자를 추천한다는 한 로또 강좌를 들어봤다. 유튜버는 “최근 10회 차 동안 다섯 번이나 홀수와 짝수가 3대3으로 나왔기 때문에 반반에 걸면 안 된다”고 했다. “우리처럼 통계와 확률로 분석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가면 안 되죠. 지난주부터 다시 홀수가 우세해졌기 때문에 이 흐름대로 홀짝 비율을 5대1이나 4대2로 추천합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데이터 분석으로는 로또 당첨 확률을 높일 수 없다고 말한다. 김현중 연세대 응용통계학과 교수는 “지금까지 덜 나왔던 번호가 앞으로 더 많이 나올 것이라는 얘기에 혹할 수 있지만 전혀 일리 없는 주장”이라며 “현실에서는 각 번호가 같은 빈도로 나와야 한다는 조건이 없기 때문에 AI를 동원해도 과거 패턴 분석은 의미가 없다”고 했다. “숫자의 총합을 분석해 몇 점대가 유리하다고 하기도 하는데요. 그것도 높은 점수와 낮은 점수가 섞여 있기 때문에 평균을 내면 가운데로 수렴할 수밖에 없죠. 당첨 확률을 높이려면 많이 사는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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