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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재의 필름위의 만찬] 전쟁도 잠시 잊게 한 달콤새콤한 '램버트'의 맛

이용재 음식평론가 입력 2021. 01. 23.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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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영화 '1917′과 체리의 세계
영화 '1917'에서 블레이크 일병은 버려진 집 마당 체리나무에 핀 꽃을 보며 고향의 체리를 떠올린다./스마일이엔티

“체리나무네. 램버트 체리야. 듀크 같기도 하고. 열매가 없어서 모르겠네. 사람들은 한 종류인 줄 알지만 종류가 많아. 커스버트, 퀸 앤, 몽모란시, 달콤한 거, 시큼한 거. 엄마가 과수원 하거든. 이맘때쯤이면 눈이 내린 것 같아, 사방에 꽃이 피어서. 그리고 5월이면 체리를 따야 돼. 나랑 조가 하루 종일 따.”

영화를 보다 보면 전조(前兆)임이 확실한 순간들이 있다. 이제 곧 나쁜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조짐 말이다.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7년 4월 6일, 영국군 소속 스코필드와 블레이크 일병에게 전령 임무가 맡겨진다. 모든 통신망이 파괴돼 최전선의 데본셔 연대에 발로 뛰어 공격 중지 명령을 전해야 한다. 1600명의 목숨이 걸린 두 병사의 움직임에 긴장이 잔뜩 서려 있다.

아닌 게 아니라 블레이크의 말처럼 체리는 종류가 엄청 다양하며 크게 ‘달콤한 것과 시큼한 것’으로 나뉜다. 그가 읊은 것 가운데는 램버트(Lambert)와 퀸 앤(Queen Anne·혹은 로열 앤)이 달콤한 것에 속하는데, 아무래도 대표 품종은 빙(Bing) 체리다. 짙다 못해 검은색에 가까운 적갈색에 반질반질 윤기가 도는 빙 체리는 외국산은 물론 국산으로도 맛볼 수 있다.

일단 지금, 즉 12~2월은 칠레나 뉴질랜드 같은 남반구에서 제철을 누리고 있다. 봄이 찾아오는 5월부터 8월에는 북반구의 미국 캘리포니아 및 워싱턴주에서 본격적으로 수입된다. 국산은 기후 조건에 따라 경남, 특히 경주 일대에서 가장 많이 재배되는데, 5~6월이 제철이다.

빙만큼 대세는 아니지만 체리를 좋아한다면 역시 봄에 잠깐 스치고 지나가는 레이니어(Rainier)를 놓쳐서는 안 된다. 빙 체리보다 달면서도 맛의 표정이 훨씬 사근사근하고 섬세하다. 새들도 좋아해 재배량의 3분의 1을 새들이 먹어 치운다. 그 바람에 가격도 빙보다 높다. ‘과일을 이 가격에 사 먹어도 되나?’라며 주저할 정도로 비싸 보이지만 제철은 짧고 맛은 월등하다.

달콤한 것의 대표가 빙이라면 시큼한 건 몽모란시(Montmorency)다. 인터넷 오픈마켓에서 ‘체리’를 검색했을 때 말린 제품으로 가장 많이 등장하는 품종이다. 파리에서 북서쪽으로 15㎞쯤 떨어진 동네 이름을 딴 몽모란시는 잼으로도 흔히 가공된다. 파이용 체리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마라스키노(Maraschino)도 유명하다. 케이크나 칵테일에 단골로 등장하는, 말간 빨간색 혹은 녹색을 띤 체리다. 크로아티아가 원산지인 마라스카 체리를 리큐어에 담가 만들었다. 유럽에서도 왕이나 귀족의 별미로 취급받을 만큼 귀했던지라 19세기 미국 유입 후 다른 품종을 써 만들기 시작했다.

오늘날은 로열 앤이나 레이니어를 염지액에 담갔다가 이산화황이나 염화칼슘 등으로 탈색한 뒤 식용색소로 물들인다. 색깔 탓에 싸구려 취급을 받지만 원조인 룩사르도(Luxardo) 제품은 여전히 물들이지 않은 마라스카 체리를 시럽에 절여 만든다. 포털 사이트에서 ‘룩사르도 체리’로 검색하면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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