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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칼럼 The Column] 文정부, '20년 전 외교 참사' 되풀이할 텐가

윤덕민 한국외대 석좌교수·前 국립외교원장 입력 2021. 01. 23. 03:20 수정 2021. 01. 23.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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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김대중 정부, 탄도탄미사일조약 러시아 입장 동의해 부시 정부 '뒤통수' 쳐
지금 美 워싱턴 조야는 '싱가포르' 집착 文정부를 中의 '그림자 국가'로 본다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온·오프 혼합 방식으로 열린 '2021 신년 기자회견'에 참석해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뉴시스

20년 전 일이다. 평소대로 조간신문을 펼친 순간 깜짝 놀랐다. 김대중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이 한·러 정상회담에서 미사일 방어를 제한하는 ‘탄도탄요격미사일제한조약’(ABM)이 전략적 안정의 초석이며 이를 보존·강화하기로 하는 데 동의했다는 것이다. 당시 국제사회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는 ABM조약을 둘러싼 미·러의 각축이었다. 미국은 북한 등 핵확산 위협에 직면해 미사일방어(MD)를 추진하여 알래스카에 요격미사일을 배치하려 했으며, 이를 위해 ABM조약을 폐기하고자 했다. 러시아는 이를 반대했다. 그런데 동맹국 한국이 공개적으로 러시아 편을 든 셈이었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것도 김 대통령이 새로이 출범한 부시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을 불과 1주일 앞둔 상황이었다.

놀랍게도 당시 우리 정부에는 노벨상을 수상한 거물 김대중 대통령이 국제 무대에서 애송이인 부시 대통령을 만나기만 하면 모든 것이 풀릴 수 있다는 낙관적 분위기가 있었다. 김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에게 햇볕정책을 설파하고 특히 클린턴 전 정부의 대북 정책을 계승해야 한다는 점을 설득하고자 했다. 조명록 군총정치국장이 방미하여 미북 사이에 서명된 미북 코뮈니케를 바탕으로 미북 대화를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장 동맹국 한국이 미국의 군사적 라이벌인 러시아와 ABM조약을 유지·강화하기로 한 것은 MD를 추진하려는 미국 신정부로서는 뒤통수를 맞은 격이었다. 게다가 김 대통령은 클린턴 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었던 부시 대통령에게 이를 계승하라고 했다. 미 정보 당국은 북한이 제네바 합의로 영변의 플루토늄 생산시설이 동결된 상황에서 파키스탄과 비밀협정을 통해 고농축우라늄(HEU)으로 전환하여 핵무기 개발을 지속하고 있음을 파악하고 있었고, 부시 정부는 대북 정책의 전면적 재검토를 생각하고 있었다. 정상회담 결과는 최악의 외교 참사였다.

최근 문재인 정부가 보이는 모습은 바로 20년 전의 데자뷔다. 20년 전 ABM조약을 둘러싼 미·러 갈등에서 러시아 편을 들었던 것과 유사하게, 중국의 지역 패권 도전에 직면한 미국의 전략에 한국은 동참하려 하지 않고 중국에 경도된 입장이 개진된다. 미국이 추진하는 인도태평양전략에도 쿼드 플러스에도 크린 네트워크에도 동참한다는 입장을 보이지 않는 반면, 중국에 대해서는 미사일방어도 사드 추가 배치도 한미일 군사협력도 하지 않겠다는 소위 ‘3불 약속’을 했다. 워싱턴 조야에서 한국은 중국에 경도된 그림자 국가로 보는 시각이 많다.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바이든 신정부가 트럼프 정부에서 이루었던 성과를 계승·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하면서 트럼프와 김정은 사이의 싱가포르 선언을 대화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마치 20년 전 김대중 대통령이 부시 대통령에게 클린턴의 대북 정책을 계승하라고 한 것과 유사한 패턴이다. 바이든 대통령과 외교안보팀 인사들은 트럼프의 대북 정책을 맹비난해왔다. 이벤트성 만남과 리얼리티 쇼를 통해 지난 3년간 비핵화의 진전은커녕 북한 핵전력만 강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본다. 과거 북한과 협상했던 풍부한 경험을 갖고 있는 그들은 트럼프 정부의 정책을 계승하라는 문 대통령의 지적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지금 문 정부가 추진하고자 하는 방향은 20년 전 외교 참사 코스다. 바이든 정부는 지정학적·군사적·경제적 측면에서의 중국 도전을 최대 위협으로 보고, 이에 대응하는 핵심 전략으로 동맹 네트워크와 민주주의 연대를 강화하고자 한다. 바이든 정부는 중국을 겨냥한 동맹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데 있어서 한국을 가장 약한 고리로 보고 있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을 동맹보다 ‘미국 우선주의’ 차원에서 다루었다. 한미 동맹에 대한 가치 부여가 적었기 때문에, 문 정부의 중국 편향적 태도에 대해 이렇다 할 입장 표명이 없었다. 그러나 바이든 정부는 한미 동맹을 중시하고 한국의 역할에 대한 기대가 있는 만큼 한국에 확실한 입장을 구할 것으로 판단된다.

20년 전 외교 참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김여정이 하명하는 대로 아무리 법을 만들고 인사를 해도 북한은 문 정부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지 않을 것이다. 북한이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하고 삶은 소대가리, 특등 머저리라고 맹비난하고 있는 까닭은 역설적이지만 하노이 회담 실패에서 문 정부가 미국에 전혀 영향력이 없다는 점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현실성 있는 대북 인식과 함께 동맹으로서 신뢰감을 줄 수 있을 때, 바이든 정부의 귀를 잡을 수 있을 것이고, 북한의 전향적 움직임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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