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후] "오늘이 어떤 날인데"..아버지에게 걸려온 전화에 흉기든 딸

사정원 입력 2021. 1. 2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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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14일 오후 경북 상주시의 한 사찰.

A(42·여)씨는 암 질환으로 사망한 어머니 49재를 지내기 위해 아버지 B(72)씨, 남동생 등 가족 친지와 함께 이곳을 찾았다.

어머니의 명복을 빌며 제사를 마친 A 씨와 B 씨는 이후 경남 양산시에 있는 아버지 B씨 집으로 이동해 저녁을 겸해 술을 마셨다. 이어 오후 8시 48분쯤 A씨는 친구인 C씨를 불렀고, 3명이 함께 술을 마시며 대화를 하고 있었다.

그때 아버지 B씨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오면서 술자리는 ‘풍비박산’이 나고 이들 부녀 사이에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난다.

아버지에게 전화를 건 사람은 아버지의 여자 동창이었다. 아버지 B씨는 이 동창과 웃으면서 통화했고 순간 A씨의 머릿속에는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했던 행동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며 분노가 솟아올랐다.

판결문에 따르면, A씨의 어머니는 급성 담낭암 진단을 받은 후 1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다. 당시 병원에서 어머니의 치료가 어렵다고 했고, 부녀지간에 어머니 치료를 두고 생각이 달랐다.

이와 관련 A씨는 검찰 진술에서 “저는 병원비가 제법 들더라도 중환자실에 더 있으면서 지켜봤으면 하는 의견이었지만, 아버지는 어차피 힘드니 요양병원으로 모시자는 의견이었다”고 진술했다.

여기에 A씨는 평소 아버지 B씨가, 부모를 봉양하는 자식에게 재산을 상속하겠다고 하다가 말을 바꿔 남동생에게 재산을 주겠다고 하는 등 자신과 남동생을 저울질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것에 대해서도 불만을 품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아버지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던 중 어머니 49재에 아버지가 다른 여성과 웃으며 전화통화를 하자 결국 A 씨는 폭발했다. A 씨는 아버지에게 “오늘이 어떤 날인데 그 여자가 전화하느냐”며 분노했고, 이에 아버지는 A 씨에게 “너는 왜 내 생활에 대해 일일이 간섭을 하느냐”며 화를 냈다.

두 사람은 언성이 높아지며 다퉜고 10월 15일 오전 1시쯤 사달이 일어나고 만다. 격분한 A 씨는 술상 위에 있던 흉기로 아버지의 왼쪽 가슴 부위를 한 차례 찔렀다. 병원으로 옮겨진 아버지는 다행히 흉기가 심장 등 주요 장기를 피해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결국, A 씨는 존속살해미수 혐의로 기소됐다. 재판과정에서 A 씨와 변호인은 “상해 사실은 인정하나, 술에 취한 상태에서 화가 나 우발적으로 찌른 것이지 살해할 고의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A 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살인죄에 있어서 범의는 반드시 살해의 목적이나 계획적인 살해의 의도가 있어야 인정되는 것은 아니”라며 “자기의 행위로 인해 타인 사망의 결과를 발생시킬 만한 가능 또는 위험이 있음을 인식하거나 예견하면 살인죄로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이어 “피고인이 이 사건에 사용한 흉기는 총 길이 24cm로 흉기의 길이와 형태 등에 비추어 볼 때 타격이 이루어진 부위나 타격의 정도에 따라 사람을 죽이거나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위험한 물건에 해당한다”며 “ 또 피고인은 검찰에서 흉기로 가슴 부위를 찌를 경우 사망할 수 있는 위험한 부위라는 것을 일반인들은 누구나 알고 있다는 수사관의 질문에 ‘맞다’고 진술했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이유 등을 근거로 울산지법 형사11부(박주영 부장판사)는 A 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의 범행 방법, 상처 부위 및 정도 등을 볼 때 피해자가 자칫 생명을 잃을 위험성이 있는 등 죄책이 무겁다”며 “친딸의 범행이라는 점에서 피해자가 신체적 고통뿐 아니라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겪었을 것으로 보여 죄질과 정상이 좋지 못해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면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다만 “피고인이 살해의 고의를 부인하기는 하나 자신의 행동 자체는 인정하고 반성하는 점, 피해자와 가족들이 피고인에 대한 선처를 탄원하는 점, 아무런 전과가 없는 점 등을 고려해 형을 정했다”고 밝혔다.

사정원 기자 (jwsa@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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