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경항모' 함재기 10대뿐.. 中·日 '표적함' 될라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입력 2021. 1. 23.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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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해역서 생존성 취약 .. 대북 전략자산으로도 가치 없어
한국형 경항공모함 개념도. [사진 제공 · 해군]
모든 나라의 군대는 무기체계를 도입하기에 앞서 주변 안보환경을 분석한다. 적의 대외정책과 군사전략, 무기체계를 종합적으로 분석한다. 이를 바탕으로 앞으로 보유할 무기체계의 성격과 성능을 규정해 획득 사업에 나선다. 무기체계를 획득하는 정상적 의사결정 과정은 연역적(deductive)이어야 한다. 철저한 사전 준비는 물론이다. 

국군도 법과 규정상으로는 이런 절차를 따른다. 국군은 어떤 무기체계를 도입할지를 결정할 때 시간이 많이 걸리기로 악명 높다. 의사결정 과정이 복잡하기 때문이다. 군 고위 인사와 정치권, 방위산업체의 이권이 맞물려 정상적인 의사결정을 방해하는 경우도 적잖다.

결론 정해놓고 근거 제시한 '한국형 경항모' 사업

현재 국군이 추진하는 '한국형 경항공모함(경항모)' 사업은 어떨까. 결론을 이미 정해놓고 근거를 제시하는 귀납적(inductive) 방식으로 추진되고 있다. 군은 1990년대부터 '경항모'라는 목표를 정해놓았다. 그동안 군 안팎의 항모 관련 연구들은 한반도 안보환경에 경항모 도입이 적합하지 않다고 결론 내렸다. 그럼에도 군은 경항모라는 목표를 상정한 후 경항모가 필요한 이유를 제시했다. 

군이 항모를 갖겠다며 본격적인 연구를 진행한 것은 2015년. 당시 '차세대 첨단함정 건조 가능성 검토 연구' 프로젝트가 추진됐다. 필자는 해당 프로젝트의 책임연구원으로 참여했다. 한국형 항모가 왜 필요한지 분석했다. 북한과 주변국의 군사적 위협은 어떤 수준이고, 이에 대응하기 위한 한국형 항모의 조건은 무엇인지 따져봤다. 

당시 연구는 지극히 상식적 수순으로 진행됐다. '지피지기(知彼知己)'식의 연역적 방법이었다. 북한과 주변국의 안보 위협 심각성을 객관적 자료로 데이터화했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형 항모가 갖춰야 할 제원(諸元)을 제시했다. 

한국형 항모는 북한이라는 안보적 변수를 떼어놓고 얘기할 수 없다. 유사시 북한은 탄도미사일과 대구경 방사포로 전후방의 공군기지를 가장 먼저 타격할 것이다. 북한의 대규모 화력 투사로 육상 공군기지가 무력화될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한국형 항모는 지상 공군기지를 대신할 '바다 위 공군기지'로서 대(對)화력·탄도탄전을 수행해야 한다. 개전 초기 항공 전력의 임무는 대화력전과 대탄도탄전이다. 대화력전은 북한 장사정포·방사포 진지를 파괴하는 것이다. 북한 하늘 깊숙이 침투해 탄도미사일 발사 차량을 파괴하는 등 대탄도탄전도 수행한다. 

북한군의 방사포와 이동식 미사일 발사차량은 갱도 진지에 숨어 있다. 이에 맞서 우리 군 전투기는 기체 내부 무장창에 적 지하 진지를 파괴할 '벙커버스터(bunker buster)'를 탑재해야 한다. 북한의 방공망을 극복해 적진 깊숙이 침투할 수 있는 우수한 스텔스 능력도 필수다. 이런 조건을 고려하면 항모에서 발진하는 전투기는 2000파운드급 'BLU-109' 계열 폭탄을 내부 무장창에 탑재할 수 있어야 한다. F-35 계열 전투기 중 육상 공군기지 발진형인 F-35A와 정규 항모 탑재형인 F-35C만 조건을 충족한다. 

문제는 우리 군 계획상 한국형 경항모의 함재기는 F-35B라는 것. F-35B는 벙커버스터를 탑재할 수 없다. 갱도를 파괴할 화력이 부족해질 수밖에 없다. 경항모에 전투기를 더 많이 실어 화력을 강화하는 방법은 어떨까. 경항모(4만t)의 특성상 실을 수 있는 전투기는 10대에 불과하다. 육상 공군기지 수준의 소티 생성률(sortie generation rate·일정 시간 내 전투기의 출격 가능 횟수)을 구현할 수 없다. 한국형 경항모는 유사시 육상 공군기지를 대체할 수 없는 것이다. 북한의 위협을 억제·격퇴하는 대북 전략자산으로서 가치가 없다.

美 이지스함도 생존 어려운 한반도 해역

일본 해상자위대 소속 이즈모(いずも)급 호위함. 사실상 항공모함으로 평가된다. [AP=뉴시스]
한국형 경항모는 유사시 우리나라 해상교통로와 해양 이권을 지킬 수도 없다. 군사 전문가들이 '차세대 첨단함정 건조 가능성 검토 연구'에 대한 세미나 등을 통해 여러 차례 경고한 바 있다. 군은 이를 모두 무시한 듯하다. 

미국 해군의 '해역별 함정 생존성 평가'에 따르면, 한반도 주변 해역은 군함의 생존 · 작전수행이 극히 어려운 곳이다. 미군은 유사시 서해에서 자국의 고성능 이지스 구축함조차 생존하기 어렵다고 점친다. 제주남방해역과 동중국해, 남중국해도 중국군의 대함타격 자산이 집중돼 있다. 당장 경항모를 실천 배치하면 한반도 인근 해역의 중국·일본 항모 전단에 대비해야 한다. 교전 상황이 발생할 경우 양국 함모 전단은 물론, 지상 기지에서 전투기가 발진한다. 우리 함재기는 적기와 공중전을 벌이고, 경항모는 대함미사일 공격에 대비해야 한다. 

대비책은 무엇일까. 우선 일정 수량 이상의 전투기를 항상 '전투공중초계' 상태로 유지해야 한다. 항모 전단 소속 전투기와 실시간 데이터링크로 연동된 조기경보기(초음속 대함미사일 투발 거리 반경 400~600km 탐지)도 필요하다. 적의 대함 공격에 대비한 최소한의 자구책이다. '차세대 첨단함정 건조 가능성 검토 연구' 연구팀은 한국형 항모가 한반도 주변 해역에서 생존하려면 최소 32대의 함재기가 필요하다고 산출했다. 일본, 중국 등 주변국과 교전을 상정한 시뮬레이션 결과다. 

일본의 이즈모(いずも)급 개량 항모는 20여 대 안팎의 F-35B를 탑재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일본 해상자위대는 지상 발진 E-2D 조기경보기와 협동교전(CEC) 능력도 갖추고 있다. 일본 항모와 대적하려면 동수 이상의 F-35 전투기를 탑재해야 한다. 중국의 항모 랴오닝(遼寧)함과 산둥(山東)함에는 각각 J-15 전투기 36대가 탑재된다. 일본, 중국의 육상 발진 폭격기도 견제해야 한다. 

대우조선해양과 한국해사기술 등 조선업계는 전투기 32대를 탑재하려면 최소 7만t급 중형 항모가 필요하다고 본다. 항공기 크기와 중량, 해외 항모들의 공간 설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과다. 조선업계가 추산한 중형 항모 건조 비용은 척당 5조4200억 원 정도였다. 여기에 F-35C 전투기(정규 항모 탑재형) 40여 대 도입 비용을 포함해 경항모 도입 사업의 총비용은 12조 원을 상회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이 같은 결론을 받아 든 해군 수뇌부의 반응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해군 측은 연구팀에게 연구 결과를 '3만t급 STOVL(단거리 수직이착륙)형 경항모'로 맞추라고 요구했다. 전문가들은 그 정도 체급의 경항모는 작전 요구 성능을 충족할 수 없고 생존성도 극히 취약하다고 우려했다. 그럼에도 해군 수뇌부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비용이 너무 많이 들면 사업 자체가 좌초한다"는 것이었다.

정치권 '안보 포퓰리즘'과 해군 수뇌부 '무지'

중국 인민해방군 소속 항공모함 ‘랴오닝(遼寧)함’에서 이륙하는 J-15 전투기. [AP=뉴시스]
당시 해군 수뇌부는 F-35B와 F-35C의 차이가 무언인지 이해조차 못 한 듯하다. '거대한 선체에 개방형 비행갑판을 올리고, 거기서 전투기만 뜨면 다 똑같은 항공모함'이라는 정도로 생각한 것이다. 

F-35B는 성능에 비해 획득·유지 비용이 많이 든다. 이런 함재기만 실은 경항모는 합리적 선택이 될 수 없다. 애써 건조해도 주변국의 '표적함'으로 전락할 위험성이 높다. '높으신 분'들에게 경항모는 하나의 사업에 불과했다. 자기 임기에 도장 몇 번 찍어 치적으로 삼을 사업 말이다. 앞으로 진급에 활용하거나 전역 후 관련 업체에 재취업할 수 있는 발판이기도 했다. 한국형 경항모가 실전에서 격침되면 소중한 우리 장병 수백 명은 불귀(不歸)의 객(客)이 된다. 우리 역사의 첫 항모를 만들고자 쏟은 국민 혈세 수조 원도 수장된다. 정치권의 '안보 포퓰리즘'과 해군 관계자의 '무지'가 결합했다. 한국형 경항모는 위험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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