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허니문은 없다

김연호 미 조지워싱턴대 한국학연구소 부소장 2021. 1. 23.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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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조 바이든 미 대통령 취임식이 열리는 미국 워싱턴 내셔널몰에 성조기 19만1500여개가 걸려 있다. 성조기는 코로나19로 취임식에 참석하지 못하는 미국인을 상징한다. / AP연합뉴스

4년 전 미국 언론은 백악관의 새 주인이 예고한 예측 불가능성에 주목하며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계획을 파악하는 데 분주했다. 엄청난 변화의 폭풍이 수평선 너머에서 이미 미국사회를 흔들기 시작했다. 반면 2021년 1월 20일 조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은 ‘정상상태로의 회복’으로 가는 첫걸음이었다. 미국사회는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4년 동안 분열과 증오로 점철됐던 혼란을 끝내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주기를 바라고 있으며, 미 주류 언론도 이러한 기대를 숨기지 않고 있다.

순탄치 않은 화해와 치유의 행로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식은 기쁨과 환호보다는 긴장감과 엄숙함이 지배했다. 그만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와 2020년 대통령 선거는 미국사회에 깊은 상처를 남겼음을 의미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식 전날 워싱턴에 도착해 코로나19로 목숨을 잃은 미국인들을 추모하면서 리더십 재건의 첫발을 뗐다. 미 텔레비전 방송사들은 추모식을 생중계하면서 코로나19 시대에 새 미국 대통령이 맞이할 엄중한 상황을 전했다. 2만명이 넘는 병력이 투입돼 요새처럼 변한 의사당과 백악관 주변의 모습도 매일 보도됐다. 긴장감이 고조된 워싱턴 시내의 모습은 바이든 대통령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국민적 화해와 치유의 길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했다.

사실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지지자들이 줄곧 대선 불복을 외쳤지만, 1월 6일 의회의 대선결과 인증회의를 계기로 모든 논란이 종식되고 새 대통령 맞을 준비로 분위기가 바뀔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폭도들의 의사당 난입으로 상황은 돌변했다. 미 언론은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식 직전까지 폭도들의 의사당 난입과 관련 수사,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2차 탄핵소추를 보도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트럼프 시대의 마지막 2주는 미국의 정치지형이 큰 소용돌이에 빠져드는 대혼란의 시기였고, 민주당의 앞날보다는 공화당이 직면한 위기에 더 관심이 쏠리게 했다.

지난해 11월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의 패배가 사실상 결정된 이후에도 공화당 정치인 대부분이 트럼프의 ‘부정선거’ 주장을 섣불리 비판하지 못했다. 선거결과 트럼프 지지층이 매우 공고하고 충성도가 높다는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백악관을 떠난 뒤에도 공화당은 여전히 트럼프의 영향력 아래에 있을 것이고, 2024년 대선에 트럼프가 또다시 출마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폭도들의 의사당 난입 사건을 계기로 ‘탈트럼프’ 움직임이 공화당 내에서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지만, 엘리트 정치인들과 거리가 먼 풀뿌리 공화당원들 사이에서는 트럼프의 인기가 여전히 높다.

이 같은 공화당의 내분이 과연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밝힌 국민적 통합(unity), 화해, 치유에 득이 될지는 분명치 않다. 분열과 증오로 얼룩진 과거는 묻어두고 앞만 보고 달려가자는 메시지는 당장 트럼프 탄핵심판과 충돌한다. 트럼프의 정치적 후견인을 자처했던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마저 트럼프가 폭도들의 의사당 난입에 중대한 책임이 있음을 지적한 만큼 상원의 탄핵심판은 트럼프에게 매우 불리하게 흘러갈 공산이 크다. 그럴수록 트럼프 지지자들의 반발은 커질 것이고, 바이든 행정부는 임기 시작부터 정치적 소용돌이에 빠져들 수 있다. 바이든 대통령 입장에서는 새 행정부 고위관료들의 상원 인준과 경기부양, 코로나19 대응 등 시급한 국정 현안을 처리하기 위해서라도 탄핵심판 절차를 늦추기를 원할 것이다. 그러나 ‘과거사’ 처리에 대한 당내 반발 또한 만만치 않을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직후 트럼프의 정치적 유산을 제거하는 작업에 돌입했다. 4년 전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직후 행정명령으로 오바마 시대의 이민, 보건복지 정책을 뒤집었듯이 바이든 대통령 역시 행정명령으로 트럼프 시대의 기후변화협약, 이민정책을 되돌려 놓았다. 그러나 미국사회의 관심은 바이든 대통령이 코로나19 사태를 얼마나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수습할지에 쏠려 있다.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식 전날 미국의 코로나19 누적 사망자수가 40만명을 넘겼다는 사실이 상황의 심각성을 말해주고 있다. 미국의 첫 확진자가 나온 지 1년 만에 제1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전사자를 모두 합친 것보다 더 많은 미국인이 사망한 것이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부인 질 바이든 여사,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남편 더글라스 엠호프(오른쪽부터)가 1월 20일(현지시간) 워싱턴 국회의사당에 마련된 대통령 취임식장에 들어서기 전 손을 흔들고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코로나19 종식과 경기부양
현재 미국은 백신 접종을 통한 집단면역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검사와 추적, 치료 등 코로나19 사태의 초기대응에는 실패했지만, 백신의 대량 생산과 신속한 보급으로 코로나19 확산세를 꺾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백신의 유통과 접종에서 행정 난맥상이 드러나면서 지난해 말까지 2000만회 접종을 완료한다는 계획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연방정부와 주정부, 지방정부 간의 긴밀한 소통과 정보교환, 행정지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한곳에서는 백신 공급물량이 부족해 접종대상자들이 분통을 터뜨린 반면, 다른 곳에서는 백신이 남아돌아 대량 폐기하는 사태가 나타나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불구하고 바이든 대통령 측은 취임 직전에야 백신 공급물량과 유통에 관한 정보를 제공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권인수 과정에서 트럼프 측의 비협조로 정확한 상황 파악이 어려웠던 만큼 바이든 행정부 입장에서는 마음이 급할 수밖에 없다. 현재 1200만회에 머무르고 있는 접종속도를 어떻게 신속하게 끌어올리면서 취임 후 100일까지 1억회 접종 목표를 달성하느냐가 바이든 행정부 초반의 성패를 좌우할 것이다.

경기부양책은 바이든 대통령이 이미 1조9000억달러 예산안을 제시한 만큼 매우 공격적으로 이뤄질 전망이다. 민주당이 상하 양원을 장악한 만큼 의회의 협조를 받기도 수월해졌다. 그러나 국가부채의 급증을 둘러싼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며, 민주당 내 보수파들의 반발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폭스뉴스를 필두로 한 보수언론은 벌써부터 정부 역할의 지나친 확대를 경계하면서 비판의 날을 세우고 있다. 미국 내 보수와 진보 간의 긴장이 새로운 전선으로 옮겨가고 있다.

김연호 미 조지워싱턴대 한국학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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