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애경 가습기 살균제는 왜 무죄인가

송윤경·김원진 기자 2021. 1. 23.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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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지난 12일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 기업인 SK케미칼과 애경산업의 전직 임원들이 무죄를 선고받았다는 소식을 듣고피해자 조순미 씨가 오열하고 있다. 연합뉴스


“피고인들은 각 무죄.”

지난 1월 12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 기업인 SK케미칼·애경·이마트에 대한 선고 공판이 열렸다. 기업 대표와 책임자 13명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피해자들은 “우리와 똑같이 6개월 써보라, 써보고 얘기하자”며 분노했다. 재판에 참여한 학자들은 “연구결과를 오해했다”(1월 19일 기자회견)고 비판했다.

가습기 살균제 기업 ‘옥시’는 이미 처벌받지 않았느냐고 묻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옥시·롯데마트 등의 가습기 살균제는 SK케미칼 등의 제품과 성분이 다르다. 이들 기업은 옥시에 비해 늦게 기소돼 이제야 1심 판결이 나왔다. 인과관계 연구가 더 까다로웠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을 들여 연구결과를 모았지만, 재판부는 가습기 살균제와 폐 손상·천식 간 인과관계가 여전히 확인되지 않았다고 봤다.

재판부도 사망자 약 1000명이 발생한 가습기 살균제 참사의 무게를 모르지 않았다. 재판장은 “다음 추가 연구결과가 나오면 (이 판결이) 역사적으로 어떤 평가를 받을지는 모르겠으나”라고 전제하면서 “현재까지 나온 증거를 바탕으로 형사사법의 근본 범위 내에서 판단했다”고 했다.

2021년 1월의 가습기 살균제 제조사 무죄 판결은 역사에 어떻게 기록될 것인가. 전문가들과 피해자, 검찰, 그간 확인된 연구결과를 토대로 쟁점을 짚었다.

■CMIT·MIT는 위해성이 없는가

산모 6명의 잇따른 사망으로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2011년이다. SK케미칼·애경·이마트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은 10년간 이중의 고통을 겪었다. 옥시 등의 제품 성분(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 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PGH)과 달리 SK케미칼의 성분인 클로로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CMIT·MIT)은 2011년 질병관리본부(현 질병관리청) 동물흡입시험에서 명확한 ‘폐 섬유화’ 증상이 나오지 않았다. SK케미칼·애경·이마트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하다가 질병을 얻었다며 피해 신고를 한 이들은 2000여명. 사망자도 250명이 넘는다. 정부와 전문가들은 동물실험을 통해 빠르게 인과관계를 인정받았던 ‘옥시 사례’를 생각하며, 지난 10년간 실험을 반복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10여건에 달하는 CMIT·MIT 동물실험을 단 한건도 인정하지 않았다.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 기업인 SK케미칼과 애경산업의 전직 임원들이 무죄를 선고받은 지난 12일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판결 이후 학자들 사이에선 여러 의문이 나왔다. 그중 하나가 ‘주요 실험결과의 누락’이다. 초기 실험의 시행착오는 인정하지만 최근 ‘CMIT·MIT 성분이 폐섬유화를 일으킨다’는 결과가 나와 재판부에 제출됐다는 것이다. 검찰도 재판부가 해당 연구결과를 누락했다고 본다.

이 연구는 실험용 쥐의 기도에 성분을 떨어뜨려(기도 점적) 폐섬유화 증상이 확인된 실험결과로, 지난해 5월 국제학술지 ‘Molecules’(분자)에도 실렸다.

“재판부는 3가지 단계를 제시했다. 첫 번째가 CMIT·MIT가 폐 손상을 일으키느냐, 두 번째가 흡입으로 폐까지 도달하느냐, 세 번째가 얼마나 축적되느냐였다. 재판부는 모든 실험이 첫 번째 단계조차 충족하지 못했다는 결론을 낸 것으로 보이는데, 적어도 폐 손상을 일으키는 물질임을 입증한 연구(국제학술지 게재 논문)는 이미 있었다.”(연구를 수행한 안전성평가연구소의 이규홍 박사)

이종현 독성학 박사는 판결문에 “CMIT·MIT의 폐섬유화와 관련된 인과관계를 입증할 수 있는 흡입독성 실험결과는 아직까지 없는 것으로 안다”는 증언을 한 것으로 적혀 있다. 이 박사는 “해당 논문(국제학술지 게재 논문)을 접하기 전 지난해 1월 증언으로, 이후에 증언했다면 완전히 다르게 말했을 것”이라고 했다.

일부 실험결과 해석도 논란이다. 살균제 성분이 공기 중에 얼마나 떠다녔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실험 사례가 대표적으로 거론된다. 판결문엔 실험결과에 대해 “NOEL값(0.34㎍/ℓ)의 25분의 1에 불과하다” “250분의 1 정도의 극히 낮은 수준이었다” “NOEL값에 훨씬 못미치는…”이라고 평가한 대목이 나온다. ‘NOEL값’ 그 자체를 기준으로 삼는 뉘앙스다.

그러나 동물에 아무런 영향이 나타나지 않았을 때의 용량을 말하는 용어 ‘NOEL’값은 인체에 적용할 때는 실험동물과 사람의 차이, 사람과 사람의 차이 때문에 대개 100(안전계수)으로 나눈다. 노출 시간이 길어지면 나눠야 하는 숫자는 더 커진다.

재판부가 성분 위해성 여부를 판단하면서 “CMIT-MIT 는 오래 전부터 (중략) 에어로졸과 같이 흡입이 가능한 제품의 경우에도 (0.0015% 이내의) 한도 내에서 사용되고 있었다”고 언급한 데 대한 지적도 나왔다. 에어로졸 제품은 스프레이 처럼 잠깐 분사하지만 가습기는 온종일 방안에 틀어놓는 방식으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이종현 독성학 박사는 “가습기살균제와 에어로졸 제품과는 노출 강도 면에서 너무나도 현격한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CMIT-MIT 성분은 가습기살균제 참사 후 2016년부터 ‘사용 후 씻어내는 제품’에만 사용되도록 규정이 바뀌었다.

■‘판단’ 중 동물실험 분량이 절반 이상

재판부가 동물실험결과에 지나치게 초점을 맞췄다는 문제 제기도 있다. 134페이지 분량 판결문 중 ‘판단’은 72페이지다. 그중 절반 이상이 동물실험을 다룬다.

‘동물실험 결정론’은 학계에선 경계 대상으로 꼽혀온 지 오래다. 박동욱 방송통신대 교수(환경보건학과)는 “외국 연구결과를 보면 동물실험이 인체에 대해 설명해줄 수 있는 부분은 36~50%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명예교수는 “쥐는 흑사병이나 유행성출혈열 바이러스에도 증상이 없고, 인체가 감당 불가능한 환경에서도 생존한다”면서 “쥐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했다.

동물실험의 한계를 일깨운 실례도 있다. ‘탈리도마이드’ 사건이다. 1958년 독일 그뤼넨탈사가 개발한 입덧방지용 수면제 성분인 탈리도마이드는 동물실험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한때 ‘기적의 약’으로 불렸지만, 1만여명의 기형아가 탄생했다.

이번 무죄 판결을 두고 그간 ‘동물실험 회의론’에 기울어 있던 학자들은 “더는 동물실험을 해선 안 된다”(박 교수)고 얘기한다. 반대로 추가 실험의 필요성을 보여준 판결로 해석하는 이들도 있다. 한정애 환경부 장관 후보자는 지난 20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기존 소형 동물실험이 아닌 중형 이상의 동물에 대해 동물실험의 원칙을 지켜가며 공소 유지가 제대로 될 수 있도록 보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SK케미칼·애경산업 전 대표들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것과 관련해 학자와 전문가들이 지난 19일 기자회견을 열었다. 연합뉴스


■각개격파 당한 연구결과

전문가들은 정부와 재판부 모두 동물실험보다 역학조사에 방점을 뒀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역학조사란 특정 질병이 발병한 사람을 추적해 질병의 원인과 발병 양상, 전파경로 등을 찾아내는 방법이다. 피해자들의 “몸이 증거다”라는 발언도 역학조사로 피해 입증에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과 맞닿아 있다.

지난 10년간 이뤄진 역학조사, 피해자 임상연구는 재판부에 어떻게 받아들여졌을까. 재판부는 이런 조사·연구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없다고 봤다.

대표 사례가 김재용 연세대 의대 연구교수팀의 ‘피해신고자 노출DB 분석 결과’다. 천식환자는 CMIT·MIT 성분 가습기 살균제 사용 전보다 사용 후 발병위험이 8.74배 더 높아진 결론이 나왔다.

재판부는 김재용 교수가 ‘호흡기계통 질환에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인과적 관련성이 의심된다’고 쓴 대목을 언급하며 “인과적 관련성이 있다고 볼 여지가 있는 정도의 연구결과에 불과하다”고 봤다. 피해집단 규모가 작고, 통계적 유의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덧붙였다. 김 교수는 “쉽게 단정짓지 않는 과학의 언어를 재판부가 이상하게 해석했다. 과학자는 새로운 반례가 나올 가능성을 고려해 확정적인 표현을 쓰지 않는다. 연구자로서는 명백하게 인과적 관련성이 있다는 주장을 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재판부가 동물실험, 역학조사, 임상연구의 의미와 한계점을 ‘종합’하기보다는 각 연구·조사의 ‘불완전성’에 주목해 마치 하나씩 격파하듯 논리를 전개한 것도 특징이다. 재판부는 각 연구와 실험을 언급하며 “인과성이 떨어진다”, “연구 방법이 엄격하지 못하다”고 했다. 박태현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과학자들은 개별 연구의 약점과 강점을 고려하면서 증거의 가중치를 두지만, 판사들은 개별 증거를 하나하나 따져본 뒤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가습기 살균제 천식 조사·판정전문위원장이었던 정성환 가천대 길병원 교수는 “100% 완전한 과학은 없다”면서 “가습기 살균제 노출 이후 시간이 많이 지나 몸에 성분 잔여물은 없고 후유증만 남은 상황이다. 대부분의 연구가 제한적인 조건에서 이뤄질 수밖에 없는 한계도 감안해야 한다”고 했다.

재판에 증인으로 나왔던 권정환 고려대 교수도 “늪에 빠진 느낌이었다”고 했다. SK·애경 변호인단은 세부 과학적 쟁점을 일일이 다투며 과학기술 논쟁으로 재판을 끌어갔다. 권정환 교수는 “학계에서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과학적 쟁점에서 검찰과 변호인이 서로 다른 수치나 자료를 두고 다투면 재판부는 ‘불확실하다’고 판단한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과학적 쟁점은 변호인 측에 유리하게 작용한다. 통상적 형사재판에서 요구하는 엄격한 증거를 내놓으라고 하면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해결이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이마트 가습기 살균제 사용 후 13년간 인공호흡기를 달고 투병을 해 온 박영숙씨는 지난해 세상을 떠났다. 2019년 그가 창 밖을 바라보는 모습이다. 연합뉴스


■새로운 접근 방법 택할까

1심 재판결과가 나오자 정부 책임론도 나왔다. 환경부는 흡입독성 근거를 뒷받침하는 연구 책임 역할을 맡았고, 검찰은 수사와 공소유지를 담당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환경부가 발주한 일부 연구가 ‘구상권 청구’를 위한 수준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피해자에게 정부 예산에서 의료비 등을 지원한 뒤 기업에 민사소송으로 구상권을 청구해왔다. 민사소송은 형사소송보다 입증 요구 수준이 약하다. 뒤집어 말하면 형사소송에 대비한 연구에는 소홀했다는 의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해 신고자들이 가습기살균제 제품명과 사용기간 등을 명확하게 기억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초기 대응 ‘실패’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재판부는 2017년~2018년 진행된 연구를 언급하면서 “피해 인정 신청자들의 10년 전 경험에 기반한 진술에 의존한 연구이므로 이른바 ‘회상 비뚤림’ (중략) 가능성도 존재한다”고 했다. 정부는 2011년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확인됐을 당시 적극적으로 피해 신고를 받을 적기를 놓쳤다. 정부가 참사 초기 피해자들에게 사용제품 등에 관한 면밀한 정보를 축적해 놓았다면 피해자의 ‘기억’은 재판의 쟁점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검찰의 노력도 미흡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가습기 살균제 공판팀이 별도로 꾸려졌지만 구성원이 자주 바뀌었고, 2~3명의 검사만 공판에 투입됐다. SK·애경에선 광장, 태평양, 지평, 대륙아주 등 대형 로펌 여러곳이 힘을 합해 변호에 나선 것과 대조적이다.

항소심은 어떻게 전개될까. 검찰이 공소사실을 변경할 가능성이 있다. 1심에서는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폐 손상과 천식 피해만 다퉜다. 일부 전문가들은 상기도 질환까지 피해질환의 범위를 넓혀야 한다고 주장한다. 1심 재판부도 CMIT·MIT 성분이 상기도에서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은 어느 정도 인정했다. 다만 공소사실을 변경하면 재판에서 근거로 쓰일 추가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가습기살균제 피해 어린이 박모양의 어머니가 2016년 서울 종로구 신문로 환경보건시민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 중 눈물을 닦고 있다.김정근 기자 jeongk@kyunghyang.com


공소사실이 변경되면 재판부가 ‘소수’라고 지적한 피해자 규모도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재판부는 SK케미칼·애경·이마트 가습기살균제만 단독으로 사용해 피해를 입은 이들이 4명(공소시효 지난 피해자까지 포함하면 11명)으로 너무 적다고 봤다. ‘11명’은 지난해 3월 가습기살균제 특별법 개정 전까지 정부가 인정한 피해자들의 숫자다. 현재 CMIT·MIT 단독 사용자 피해 규모는 225명(사망자 27명)으로 늘어났다. 다른 가습기살균제와 ‘복합 사용’한 공식 피해자는 1188명(사망자 229명)에 이른다.

개별 피해자에 초점을 맞춰 재판 전략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피해자 개인별로 임상·병리학적 분석, 유전력, 환경 요소 등을 기록한 데이터베이스(DB)를 만들어, 가습기 살균제가 발병의 결정적 원인임을 드러내자는 취지다.

박동욱 교수는 “1심 재판부가 개별 피해사례의 인과는 평가하지 않았다”고 지적하면서 “직업적 노출이나 나이가 있어야 걸릴 수 있는 폐손상 질병을 서너살 아이들이 걸린 원인은 가습기 살균제 밖에는 없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신생아 시절 3~4달간 가습기살균제에 노출된 후 한살 때 ‘폐섬유화’ ‘기흉’ 진단을 받은 쌍둥이 자매 얘기다. 이들은 서너살 때까지 목에 튜브를 꽂고 살아야 했다. 박 교수는 “항소심에선 각 피해사례의 인과관계가 구체적으로 다뤄지도록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판부가 SK·애경의 무책임한 제조·판매 과정 따져줬어야”

이은영씨(44)는 SK케미칼·애경산업의 가습기 살균제 ‘가습기메이트’ 단독 사용 피해자다. 이씨와 이씨의 자녀는 2009년 3월에서 약 2년간 가습기메이트를 썼다. 이씨와 이씨의 자녀는 이번 재판 피해자 명단에서 빠졌다. 이유는 SK·애경 책임자들에게 적용된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 공소시효(7년) 때문이었다. 이씨는 “정부의 가습기메이트 피해자를 뒤늦게 인정하면서 법에서 인정받는 피해자 규모가 줄어든 것”이라고 했다.

이씨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 대응에 가장 적극적인 피해자 중 한명이다. 이씨는 가습기 살균제와 관련된 해외 특허를 직접 찾아냈다. 가습기메이트에 들어간 클로로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CMIT)·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MIT) 성분을 다룬 전문 서적도 직접 봤다. 이씨가 PDF 파일로 갖고 있는 가습기메이트 자료만 수천쪽에 달한다.

이씨는 정부의 비협조가 법원의 무죄 판단으로 이어졌다고 봤다. 판결문에는 시간이 많이 흘러 피해자의 기억을 신뢰하기 어렵다는 대목이 나온다. 이씨는 “판결문에 피해자 기억이 정확하지 않았다는 대목을 보고 정말 화가 났다. 정부가 2011년부터 피해자 조사를 했다면 상황이 달랐을 것”이라고 했다. 이씨는 “검사내용·검사소견은 병원의 기록 보존 기간이 법상 최대 5년이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기록은 정부가 별도로 보존해달라고 의견을 낸 적 있는데 환경부가 거절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법원에서 다뤄진 가습기메이트 피해 범위가 폐 손상과 천식에만 국한된 점도 억울하다고 했다. 이씨는 “2014년부터 질병관리본부(현 질병관리청) 직원에게 CMIT·MIT 피해자 중에는 호흡기 질환 피해자도 많다고 얘기했지만, ‘더 이상 얘기하지 말라’는 대답만 들었다. 정부가 사건 초기부터 피해 범위를 확대하고 피해 입증을 위한 연구를 진행했어야 했다”고 했다.

이씨는 재판부의 판단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재판부가 언급한 가습기메이트 사용 농도나 동물실험 위주의 판단이 대표 사례다.

이씨는 “판결문에는 실험이 고농도로 이뤄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런데 가습기메이트 제품 어디에도 정량을 사용하라는 주의 문구가 없다. 오히려 향이 나지 않는다며 더 많은 가습기메이트를 가습기에 넣어 썼다는 소비자들의 후기가 인터넷 게시판에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동물실험에서도 부작용이 안 나올 수 있어 신약 개발 때 사람 대상으로 임상을 한다. 동물실험은 부차적인 것인데, 판결문을 보면 동물실험의 결과를 주로 길게 나열했다”고도 했다.

이씨는 SK·애경의 무책임한 제품 제조·판매 과정을 따지지 않은 재판부를 비판했다. SK·애경은 안전성 검증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가습기메이트를 제조·판매한 혐의를 받는다. 이씨는 “흡입독성 입증이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기업의 제조 과정에 대한 판단은 아예 배제됐다. 법리적으로 문제가 없다 하더라도, 공판에서는 제조 과정도 많이 다퉜기 때문에 판결문에서 언급해줬어야 했다. 그래야 정부만이 아니라 기업에는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알 수 있는 것 아닌가. 지금은 마치 기업에 완전한 면죄부를 준 꼴이 돼 버렸다”고 말했다.

송윤경·김원진 기자 ky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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