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옥시 전 대표, 첫 옥중 인터뷰 "가습기살균제 sk케미칼 무죄 참담"

윤지원 기자 2021. 1. 23.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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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옥시에 독성 정보를 숨기고 가습기 살균제에 쓰일 흡입 독성 원료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을 공급한 혐의를 받은 최모 SK케미칼 연구팀장에 대해 지난 1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재판장 유영근)는 ‘무죄’를 선고했다.

가습기 살균제는 크게 PHMG 성분의 옥시 가습기 살균제와 클로로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CMIT)·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MIT)이 들어간 SK·애경의 가습기메이트로 나뉜다.

최창원 전 SK케미칼 대표이사가 2019년 8월 가습기 살균제 참사 청문회에서 피해자들이 앉아 있는 방청석 방향으로 고개숙여 사과하고 있다. | 연합뉴스


무죄 판단의 핵심은 판결문 속 한 문장 안에 함축돼 있다. “(SK케미칼에는) 옥시싹싹 가습기당번의 원료로 PHMG를 사용하는 것을 중지시킬 업무상 주의의무가 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 원료공급사는 인명피해를 방지해야 할 의무 자체가 없다는 얘기다.

SK·애경의 가습기 살균제 ‘가습기메이트 재판에 가려져 주목받지 못한 결과다.

검찰은 즉각 항소했다. SK케미칼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 중인 피해자들은 망연자실했다. 이번 재판결과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인사가 또 있다. 2018년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징역 6년형을 확정받고 수감 중인 신현우 전 옥시레킷벤키저 대표다.

■손해배상 소송 중인 피해자들 망연자실

경향신문은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교도소 면회와 수차례 서신 등으로 신 전 대표를 만났다. 그는 지난 20일 보낸 서신에서 “이 사건 본질은 SK케미칼이 PHMG가 흡입하면 위험하다는 것을 알았고, 가습기 살균제로 만들어질 것을 알았다면 흡입독성 실험을 해야 했다는 것이다. 재판부가 본질을 놓쳤다”고 했다.

2016년 진행된 첫 번째 가습기 살균제 검찰수사는 신현우 전 옥시 대표를 중심으로 진행됐다. 당시 검찰은 옥시제품에 PHMG를 공급한 SK케미칼은 기소하지 않았다. “가습기 살균제로 사용될 줄 모르고 원료를 납품했다”는 SK케미칼 측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2019년 시작한 2차 가습기 살균제 수사는 달랐다. 1998~2007년 SK케미칼 스카이바이오팀 연구실에서 PHMG 개발 업무 등을 총괄한 최씨 등이 가습기 살균제 원료로 PHMG를 옥시에 추천하면서 원료 분석자료에 독성 정보를 빼거나 누락한 정황을 확인했다. 서울남부교도소에서 수감 중인 신 전 대표도 옥중에서 검찰수사에 여러 차례 협조했다.

검찰은 옥시 가습기 살균제 문제가 불거진 지 8년 만인 2019년 SK케미칼 최씨 등을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이후 재판에선 원료공급사인 SK케미칼의 과실 등이 옥시 가습기 살균제 인명피해와 직접 연관이 있는지가 주요 다툼 쟁점이었다.

신현우 전 옥시 대표 | 서성일 기자


신 전 대표는 지난해 10월 최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SK케미칼이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해) PHMG가 유독물임을 알았더라면 옥시싹싹 가습기당번의 원료물질로 채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재판부는 SK케미칼 측이 원료 독성 정보를 누락하거나 허위 기재한 자료를 옥시에 넘긴 사실관계는 인정하면서도 이들의 잘못과 인명피해의 연관성은 인정하지 않았다. “(자료에) 부주의가 있더라도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사망이나 상해 결과에 본질적 기여를 해 업무상 과실치사상 공동정범으로서 죄책을 질 만큼 과실을 범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SK케미칼 측이 자신들이 넘긴 PHMG로 옥시가 가습기 살균제를 만들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는지에 대해선 “의견교환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정도로 판단했다. 그러나 “옥시싹싹 가습기 당번의 원료물질을 선정하고 그에 대한 구체적 배합비율을 적절하게 정하여 안전성을 갖춘 제품을 출시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옥시의 업무”라며 흡입 독성 여부를 판단할 주체는 원료공급자인 SK케미칼이 아닌 제조사 옥시라고 재차 강조했다.

원료공급사의 주의의무를 좁게 해석한 1심 판단이 확정될 경우 앞으로 화학제품에서 인체 피해가 발생했을 때 원료공급사의 형사적 책임은 묻기 어려워질 수 있다. 양성우 변호사는 “이번 판결은 원료를 판매하는 업자들이 독성물질을 판매할 때 유독성에 대해 제대로 알릴 의무가 없다는 식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신현우 전 옥시 대표의 자필 편지 | 본인 제공


■원료공급사의 주의의무 좁게 해석

신 전 대표는 원료를 소개한 과정뿐만 아니라 제조 과정에서도 SK케미칼의 과실이 있었다고 본다. 그는 옥중에서 SK케미칼의 제조 과정을 들여다보는 연구를 진행했다고 이번 인터뷰에서 처음 밝혔다. 신 전 대표는 2016년 함께 재판에 넘겨졌던 롯데 측 연구소 직원을 통해 가습기 살균제 판매 초기와 후기의 PHMG 분자량이 다르다는 주장을 접했다. 분자량이 적을수록 인체 폐 등에 깊이 침투하기 때문에 인체에 미치는 피해가 더 크다.

SK케미칼은 2005년부터 폐수처리업체 선경워텍에 PHMG 생산을 위탁했는데 위탁생산 과정에서 제조법이 달라져 분자량이 적어졌을 가능성이 있었다. 신 전 대표는 “2018년 확정판결 후 남부교도소로 이감된 뒤 외부 지인과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 연구를 시작했다”며 “외부 연구소에서 진행한 연구 비용은 모두 사비로 해결했다”고 말했다. 6개월이 걸린 실험은 선경워텍의 제조 방법 매뉴얼과 SK케미칼의 공식 제조 방식대로 각각 PHMG를 제조해 성분 및 분자량을 비교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연구결과, 선경워텍에서 임의 변경한 제조방식으로 만든 PHMG 평균 분자량이 SK케미칼 제조방식으로 만든 분자량의 절반 크기에 그쳤다.

신 전 대표는 이러한 연구결과를 지난해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에 제출했다. 그는 분자량에 따른 PHMG가 인체에 미친 독성 영향을 최종 확인하는 작업을 사참위에 요청했다. 사참위는 지난해 11월 남부교도소를 방문해 관련 내용을 조사했다고 한다.

사참위가 추가 연구를 통해 신 전 대표의 연구결과를 확인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난해 사참위 업무에서 가습기 살균제 진상조사를 제외하는 내용의 사참위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현재 진상규명 작업은 모두 중단됐다. 신 전 대표는 “2016년 첫 수사 때 검찰은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제조업체의 전적인 책임으로 결론을 짓고 거기에 맞춰 기소 범위를 결정했다”며 SK케미칼에 대한 수사가 너무 늦게 시작되면서 방대한 증거가 사라진 상황에 아쉬움을 나타냈다. 최씨에 대한 이번 판결문에서 재판부도 객관적 증거가 부족하다는 평가를 했다.

신 전 대표는 이달 기준 형기의 80%가량을 마쳤다. “내가 무죄를 받았다면 SK케미칼을 조사할 생각은 못 했을 것이다. 재판 과정에서 SK케미칼이 거짓말을 한다는 확신을 했고, 수감 이후 시간과 사비를 투입해 연구를 진행했다. 출소 이후에도 계속 진실을 규명하겠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이것이 내가 피해자에게 속죄하는 방법이다.”

윤지원 기자 yj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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