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명높고 끔찍한 범죄자" 트럼프 사면에 검찰이 항명한 인물

정지섭 기자 2021. 1. 23.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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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세에 시장직에 올랐던 미 정치권 샛별
차세대 흑인 정치 지도자로 주목
부패, 비리, 불륜 등 추문 터지면서 추락
징역 28년 선고받고 복역중 트럼프 임기 막판 사면으로 출소

“이 추악한 전직 디트로이트 시장에 대한 내 입장은 바뀐게 없다. 그는 악명높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범죄자다.”

콰메 킬패트릭 전 디트로이트 시장 /AP 연합뉴스

20일 퇴임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이임 직전 측근 등 143명에 대해 무더기로 사면·감형을 단행하자, 미시간주 디트로이트 동부 연방지검 매슈 슈나이더 검사가 내놓은 공식 성명의 첫 문장이다.

뇌물과 공금 유용 등 24개 혐의로 기소돼 징역 28년을 선고받고 복역중이었던 콰메 킬패트릭(51) 전 디트로이트 시장이 사면 대상에 포함된 것에 대한 항의성명이었다. 이 성명은 대통령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트럼프의 마지막 임기인 20일 미 법무부·연방검찰을 통해 발표된만큼 엄밀히 말하자면 최고통수권자에 대한 항명이었다. 트럼프의 임기가 계속됐다면 파문을 몰고 왔을 수도 있던 사안이었다.

슈나이더 검사장은 성명에서 “콰메 킬패트릭은 디트로이트 시민들을 상대로 그가 저지른 끔찍한 범죄의 대가를 하루하루 치르고 있었다”며 “그는 자신이 저지른 24개의 범죄에 선고받은 형량 중 고작 4분의 1만 복역하고 있을 뿐”이라며 트럼프 전 대통령의 결정을 질타했다.

미 주요 언론들도 이번 사면에 킬패트릭이 포함된 점을 집중 부각하며 연방 교도소에서 출소한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집중 보도하고 있다. 흑인인 킬패트릭은 서른 한 살 나이에 미국 자동차 산업을 상징하는 디트로이트 시장에 당선되며 일약 미국 정치계의 신데델라로 떠올랐다. 그러나 집권 도중 고위 공직자가 저지를 수 있는 거의 모든 부패범죄에 연루되면서 속절없이 추락했다. 특히 그가 물러난 뒤 디트로이트가 전례 없는 도시 파산 사태를 겪으면서 킬패트릭은 “디트로이트를 쫄딱 망하게 한 주범”으로 비난받았다. 콰메 킬패트릭은 어떤 인물이었을까.

트럼프 대통령의 퇴임 전 사면으로 연방교도소에서 석방된 콰메 킬패트릭 전 디트로이트 시장이 공항에서 친지들과 포옹하는 장면을 촬영한 동영상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확산됐다. /인스타그램 동영상 캡처

1970년생인 그는 스물 여섯살이던 1996년 미시간주 주의회 하원의원으로 당선되면서 정치에 입문했다. 그의 어머니는 주의원 16년·연방 하원의원 12년을 지낸 베테랑 정치인 캐롤린 킬패트릭이다. 연방 의원 출마를 위해 주의회 도전을 포기한 어머니로부터 지역구를 물려받았다. 정치인 2세라는 덕도 본 셈이다. 그러나 혈기왕성한 젊은 모습에 귀고리를 즐겨 착용하는 개성넘치는 모습이 대중들에게 어필하면서 인기가 급상승했다.

주의회에서 승승장구하던 그는 디트로이트 시장 선거까지 출마해 2002년 불과 31세 나이로 역대 최연소 시장에 오르면서 미시간주 뿐 아니라 미국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됐다. 2003년 흑인 잡지 에보니 매거진은 ‘올해 가장 관심 끄는 흑인 58인’ 가운데 한명으로 그를 선정하면서 ‘다이아몬드 귀걸이로 치장하고 랩뮤직을 듣는 시장’ 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2008년 법정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콰메 킬패트릭 전 디트로이트 시장. /AFP 연합뉴스

그러나 좋은 시절은 오래 가지 않았다. 차세대 흑인 정치 지도자로 각광받던 그는 측근들에게 각종 이권을 배분하고, 뇌물을 수수하고, 공금을 사적으로 유용하며, 호화 별장에서 럭셔리 파티를 열었다는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연금·세금 등의 분야에서 시 재정을 감안하지 않는 무모한 정책을 남발해 안 그래도 자동차 산업 공동화로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시 재정을 파탄으로 몰아넣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불륜 스캔들까지 터졌다.

유력 정치인이 연루될 수 있는 온갖 스캔들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그는 우여곡절 끝에 재선에 성공은 했지만, 고구마 줄기처럼 불거지는 의혹을 주시한 연방수사국(FBI)이 수사에 착수하고 비위의 전모가 속속 드러나면서 2008년 시장직에서 물러났다. 정치 입문전부터 그를 도왔던 여성 핵심 참모와 불륜을 저질렀다는 폭로가 터진 것이 결정타였다. 그는 퇴임 후에도 재임 중 저지른 비위와 관련한 강도 높은 검찰 조사를 받아 기소됐고, 2013년 10월 미시간주 연방지법은 그에게 적용된 24개 혐의를 대부분 유죄로 판단하며 징역 28년을 선고했다.

디트로이트시 파산 문제를 심층 보도한 당시 타임지 표지. 폐허가 되다시피한 도시 중심가 전경 사진이 담겨있다. /타임 홈페이지

킬패트릭에 대한 대중적 분노가 높았던 것은 그의 부패 스캔들과 디트로이트 시의 재정적 악화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멀쩡했던 도시를 말아먹은 부패 시장”이라는 비판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법원 판결이 나온 2013년 디트로이트는 미국 대도시 사상 전례없는 파산을 선언했다. 그러나 법원은 “디트로이트의 경제 상황 악화는 여러 제반 사항을 감안하면 손쓸 수 없었던 측면이 있다”며 시 파산에 대한 킬패트릭의 직접적인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다.

현지 언론들은 백악관 관계자 등을 인용해 “킬패트릭의 감형에 대한 디트로이트 지역 사회의 지지 여론이 있었으며, 그는 복역 중 동료 수감자등을 상대로 조리 있게 말하는 법을 가르치거나 성경공부를 주도했다”고 전했다.

그의 사면에 반발한 매슈 슈나이더 검사의 공식 성명은 이 같은 말로 마무리된다. “감사하게도 미시간주 법에 따라 그는 유죄 판결 후 20년 동안 연방정부나 주 차원의 어떤 공직도 맡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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