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수에 농부까지, 결국 IT기술자가 된 의지의 청년

박유연 기자 2021. 1. 2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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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 출신의 IT 기술자 취업기

코로나 사태로 실물 경제가 큰 충격을 받고 있습니다. 그 어느 시기보다 힘든 고용상황이 이어지고 있는데요. 어려움 속에도 희망은 있습니다. 취업난을 극복하고 있는 청년들을 통해 희망을 전하는 ’2030 취업 분투기'를 연재합니다.

어려서부터 일관되게 같은 꿈을 좇는 사람들이 있다. 무척 운이 좋은 경우다.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평생 만나지 못하는 사람이 더 많다. 그저 일을 위한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햇빛일루콤 김형정 씨도 원하는 일을 일찍 찾지 못했다. 그러나 남들처럼 일을 위한 일을 하긴 싫었다. 김형정 씨를 만나 진짜 원하는 일을 찾은 비결을 들었다.

◇절망감 안겨준 첫 취업

김형정 씨 /본인 제공

천안에 있는 백석대학교를 나왔다. 영어를 전공했다. “영어에 자신이 없어 영어를 전공했습니다. 앞으로 무슨 일을 하더라도 영어는 할 줄 알아야 할 것 같아서요.”

군대를 다녀와 학교 졸업 후 취업했다. 하지만 평생 처음 들어간 직장에선 무력감과 모욕감만 느꼈다. “곧 퇴사했습니다. 적성과 성향에 전혀 맞지 않는 일이었거든요. 최악의 시기였죠. 정말 우울했고 울분만 쌓였습니다.”

김형정 씨 /본인 제공

취업 자체에 집착하기보다 맞는 일을 찾기로 했다. 평소 좋아하던 글짓기 교실에 등록했다. “큰 기대를 갖고 시작했는데, 쓸수록 한계를 느꼈습니다. 어떤 글을 쓰기에 제 지식이나 경험이 정말 부족하다는 사실만 알게 됐습니다. 뭐 하나 제대로 아는 분야가 없어서, 콘텐츠 있는 글을 쓸 수 없었던 거죠. 돌이켜생각하면 글짓기를 울분을 표출하는 도구로 삼았던 것 같습니다. 단순히 내 감정을 토로할 목적이라면 일기를 쓰면 되는데, 창작으로 접근했으니 제대로 될 리가 없었습니다.”

어떤 분야든 ‘제대로 아는’ 사람이 돼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비교육과정 중에 흥미로운 과정이 많다는 얘기를 들었다. ‘워크넷’을 살펴보다 전북대학교 고창캠퍼스의 한옥 목공 교육과정을 알게 됐다. “한옥의 친환경성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손으로 나무를 가공하는 법, 건축 구조물을 설계하는 원리, 컴퓨터 캐드프로그램 활용법 등 한옥을 짓기 위한 교육 과정을 정말 재밌게 이수했습니다.”

◇목수에 농업까지 오랜 방황

김형정 씨 /본인 제공

과정을 마치고 제주도에 내려가 한옥을 짓는 목수 일을 했다. 그런데 또 회의가 왔다. “배울 때는 분명 목수 일이 창작 활동이었는데, 현장에선 기술공에 불과했습니다. 물론 창의적으로 일하는 분도 많겠지만, 저에게 제시된 길은 무척 제한적이었죠. 결국 그 일도 그만뒀습니다.”

농협에서 농업교육을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드론 자격증 취득과 해외농업교육 등 4차산업혁명에 맞는 청년 인재를 양성하는 내용이라고 홍보하더군요. 귀가 솔깃했습니다. 당시가 6월 정도였는데요. 뭔가를 시작한다면 어차피 다음해부터 일테고, 남은 반 년을 애매하게 보내느니 농업교육을 받아보자. 생각했습니다.”

김형정 씨 /본인 제공

교육을 받으며 많은 것을 느꼈다. “스마트팜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과거의 농업과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이제 드론으로 농약을 뿌리죠. 기술 융복합 시대를 현장에서 본 겁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배운 걸 일로 연결시키지 못했다. 자금 문제 등이 이유였다. 오랜 시간을 헛되이 보냈다는 불안감이 밀려 왔다. “거의 3년을 벌이도 경력도 없이 보냈다는 자책이 들었습니다.”

◇마지막이란 각오로 로봇전자 교육

폴리텍대 재학 시절 김형정 씨 /본인 제공

이번에도 돌파구는 공부였다. 폴리텍대 남인천캠퍼스 로봇전자과 모집 공고를 봤다. 농업 교육을 받으며 느꼈던 ‘기술 융복합 시대’에 어울리는 공부란 생각이 들었다. “로봇전자 분야에 대해 가르쳐주면서 자격증 취득을 돕고, 취업까지 연계해준다고 하더군요. 거기에 교육비는 물론 기숙사비, 식비까지 무료고. 도리어 훈련장려금을 준다기에 ‘이번이 마지막’이란 각오로 도전하기로 했습니다.”

-문과 출신인데 기술을 배운다는 데 두려움이 있지 않았나요.

“기초부터 응용심화까지 체계적으로 교육한다고 해서 지원했습니다. 눈높이 교육을 해준다고 해서 믿었죠.”

폴리텍대 재학 시절 한 TV프로그램에 출연한 김형정 씨 /본인 제공

-교육 과정에서 가장 도움이 됐던 게 뭔가요.

“기본이 되는 전자이론 부터 회로설계, 프로그래밍, 2D 및 3D 디자인 까지 로봇개발과 관련한 모든 것을 배웠습니다. 실습시설이 가장 큰 도움이 됐습니다. 개인 별로 필요한 장비가 제공되고, 캐드나 3D프린터 같은 공동으로 쓸 수 있는 고가 장비도 많았습니다.”

◇대학교 로봇경진대회에서 동상

-폴리텍대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경험이 뭔가요.

“전국 대학교 스마트로봇 경진대회 무인운반로봇 분야에서 동상을 받은 게 무척 뜻깊습니다. 사실 대회 공고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아 준비 기간이 짧았습니다. 자격증 취득을 3개나 진행하던 상황이라 시간을 내기 어려웠는데요. 너무 나가고 싶은 대회라 출전을 강행했습니다. 다른 학생들과 겨뤄서 제 실력을 객관적으로 파악해 보고 싶었거든요. 모든 걸 직접 해결해야 해서 단기간에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판단했습니다.”

로봇경진대회 준비를 하는 김형정 씨 /본인 제공

-어떻게 준비했나요.

“과감히 자격증 시험준비를 중단하고 팀을 모았습니다. 프로그래밍을 맡아 2주 동안 몰두했죠. 매일 아침 학교문이 열리자마자 등교해 밤 8~10시까지 프로그래밍만 했습니다. 프로그래밍에 따라 로봇이 정해진 궤도로 이동하면서 색을 인식하고 화물을 구별할 때의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수많은 시험 가동과 수정 같은 반복 작업이 지루하고 힘들 때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그 어느 때보다도 흥미로운 시간이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이제야 적성을 찾았다는 기쁨을 느꼈었던 것 같습니다. 로봇대회를 통해 제가 가야 할 진짜 경로를 찾을 수 있었고, 수상을 통해 자신감도 얻었습니다.”

◇자동차 광학장비 개발 회사 취업

-취업 과정을 들려주세요.

“교수님에게서 폴리텍을 졸업한 선배가 다니고 있다며 지금 다니고 있는 ‘햇빛일루콤’을 추천받았습니다. 한 눈에 마음에 들었습니다. 자동차 광학장비를 개발하고 제조하는 회사인데요. 면접 때 사장님께서 ‘4차산업혁명 시대를 선제적으로 대응하면서 기술개발을 끊임없이 추구해나갈 계획’이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요. 그 얘기를 듣고 무척 고무됐습니다. 최종적으로 제가 제출한 포트폴리오를 좋게 봐주셔서 무사히 입사할 수 있었습니다.”

김형정 씨 /본인 제공

아직 입사 초반이라 적응기를 지나고 있다. “일단 회사 생활에 빠르게 적응해야 합니다. 아직은 생소한 게 무척 많은데요. 미래가 무척이나 기대됩니다.”

-일찍 영어 대신 공학을 전공했으면 좋았겠다는 후회가 들지 않나요.

“아뇨. 로봇 기술은 계속 새로운 게 나옵니다. 해외 동향을 파악하려면 영어가 필수죠. 대학 때 영어를 열심히 배워둔 게 지금 많은 도움이 됩니다.”

작년 햇빛일루콤에 입사한 김형정씨 /본인 제공

-앞으로 계획은요.

“제가 맡은 분야에서 전문성 있는 인재가 되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아직 집이 없어 임시지만 고시원에서 생활하고 있는데요. 회사 생활을 열심히 해서 연봉을 많이 받아 좋은 집으로 이사를 가고 싶습니다.”

-취업 준비생들에게 해줄 조언이 있다면요.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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