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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만나러 겨울 청평사로 갑니다 [최현태 기자의 여행홀릭]

최현태 입력 2021. 01. 24.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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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속의 절’ 춘천 청평사 가는 길 / 구송폭포 빙벽변신 ‘멍때리기’로 마음정화 / 오봉산에 안긴 청평사 공주와 삼사뱀 전설 간직 / 삼악산 금강굴 지나 시간이 빚은 등선폭포 협곡 장관 / 승학폭포·백련폭포·주렴폭포 등선8경 빼어난 풍광 즐겨

구송폭포
오후 3시. 깊은 계곡을 따라 산사로 가는 길은 벌써 해가 높은 산 뒤로 숨어들면서 어둑어둑해진다. 마음은 바쁘지만 걸음을 자꾸 멈추게 만드는 고즈넉한 겨울 풍경들. 장쾌하게 흐르던 계곡 물은 꽁꽁 얼어붙었다. 이 세상의 모든 소리를 빨아들인 듯, 들리는 것은 내 숨소리뿐 아주 고요하다. 30분을 바삐 오르자 잘 차려 입은 매끈한 도시남자처럼 반듯한 수직절벽을 가르며 장쾌하게 쏟아지던 물줄기가 그대로 얼어붙은 폭포가 앞을 가로막는다. 마치 TV를 보다 리모컨 정지 버튼을 누른 것 같은 ‘현실감 제로’의 풍경. 순간, 초능력을 발휘해 모든 것을 멈춘 세상에서 나만 살아남아 움직이는 SF영화의 한 장면 속으로 밀어넣는다. 청평사 가는 길에 만난 경이로운 구송폭포. 모든 두뇌 작용을 잠시 중단하고 한동안 ‘멍때리기’에 빠진다.

#공주 만나러 청평사 갑니다

강원 춘천시의 천년고찰 청평사로 안내하는 오봉산길 도로는 매우 험하다. 간척사거리에서 차로 불과 10분 거리이지만 급경사인 데다 심할 때는 180도로 회전하니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 아찔하다. 더구나 급커브길에 눈과 얼음이 남아 핸들을 잡은 손에 땀이 줄줄 흐른다. 겨울 청평사 여행은 유람선 이용이 정답인 것 같다. 겨울에는 소양호 선착장에서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한 시간 간격으로 매시 정각에 출발한다. 돌아오는 배편은 청평사 선착장에서 매시 30분 정각에 떠나며 오후 4시30분이 마지막 배다.

청평사 가는 길 계곡
청평사 가는 길 계곡
청평사 가는 길은 ‘공주’를 만나러 가는길이다. 부용계곡 다리를 건너 빙어 등을 맛보는 음식점 거리를 지나면 벽화에 ‘청평사 공주와 상사(相思)뱀의 전설’이 빼곡하게 적혀있다. 푸른 옷의 공주를 초록뱀이 칭칭 감은 그림이 상상력을 자극한다. 스토리가 꽤 길다. 중국 당나라 태종은 아름다운 공주가 평민 청년과 사랑에 빠지자 청년을 사형에 처한다. 그날 밤 형장에 홀연히 나타난 뱀 한 마리는 공주 방으로 숨어들어 몸을 칭칭 감아 버렸다. 점점 야위어 가던 공주는 신라의 영험 있는 사찰에서 기도해 보라는 노승의 권유로 사찰을 전전했고 구송폭포 아래 작은 동굴에서 하룻밤을 지낸다. 다음 날 아침 들려오는 범종 소리에 공주는 절밥을 얻어 올 테니 잠시 풀어 줄 것을 요청한다.
공주와 상사뱀 조각상
공주와 상사뱀 조각상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는 공주. 결국 그녀를 찾아 나선 뱀이 절문을 들어서는 순간 벼락을 맞아 죽는다는 얘기다. 공주는 시원하면서도 애처로워 상사뱀을 정성껏 묻어 줬고, 당 태종은 기뻐하며 금 세 덩어리를 보냈는데 그중 한 덩어리가 청평사 뒤편 오봉산 어딘가에 아직 묻혀 있단다.10여 분을 오르면 얼음 계곡 한가운데서 공주와 상사뱀을 만난다. 바위에 앉아 뱀 머리를 오른손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애증의 눈길로 쳐다보는 공주의 표정에서 많은 사연이 읽힌다. 사실 별것 아닌데 리얼하게 조각상을 만들어 놓으니 전설이 실제인 듯, 그럴듯하게 다가온다.
거북바위
구송폭포
#아홉 가지 소리로 영혼을 정화하는 구송폭포

계곡을 거슬러 오르며 공주의 스토리는 이어진다. 이번엔 거북바위. 물을 바라보게 되면 청평사가 크게 융성할 것이라는 전설을 지닌 매우 독특한 형상의 커다란 바위다. 그런데 아래서 올려다보면 거북이보다는 재물과 복을 상징하는 두꺼비 같다. 어느 동물이든 상관없다. 새해이니 좋은 기운을 듬뿍 받아가는 기분이다. 청평사 직전에 만나는 구송폭포에 공주의 흔적이 가득 남아있다. 구송폭포는 보는 순간 탄성이 저절로 나올 정도로 겨울 청평사 여행의 백미다. 높이 9m 정도로 아담하지만 선비처럼 단정한 수직 절벽을 따라 폭포수가 떨어지다 멈춘 모습이 진풍경이다. 겨울에 오길 잘했다.

구송폭포
구송폭포 공주굴
폭포수가 떨어지며 만어낸 소는 가운데로 갈수록 수심이 아주 깊은 듯하다. 가장자리부터 얼다가 폭포 앞에만 동그랗게 얼음이 얼지 않아 영롱한 에메랄드빛 속살을 드러냈다. 삼악산 등선폭포, 문배마을 구곡폭포와 함께 춘천의 3대 폭포로 꼽히며 폭포를 둘러싸고 소나무 아홉 그루가 있어 구송폭포라는 이름을 얻었다. 계절과 환경의 변화에 따라 아홉 가지 소리를 낸다는 뜻에서 ‘구성폭포’로도 불린다. 사계절 가물지 않고 많은 양의 물이 쏟아지며 물고기가 들여다보일 정도로 소의 물빛이 아주 맑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면 공주굴이 보인다. 공주는 오랫동안 상사뱀의 극락왕생을 빌며 이곳에서 머무르다 석탑을 세우고 돌아갔다고 한다. 그래서 청평사 삼층석탑은 ‘공주탑’으로 불린다.
청평사 선동교
청평사 회전문과 오봉산
‘신선이 사는 마을’로 이어준다는 선동교를 지나면 고려 광종 24년(973) 당나라 승려인 영현 선사가 세운 청평사가 모습을 드러낸다. 대웅전으로 가려면 회전문을 지나야 하는데 이곳이 상사뱀이 벼락을 맞아 죽은 곳이다. 봉긋하게 솟은 오봉산을 머리에 이고 있는 청평사의 겨울 풍경은 산수화가 따로 없다. 지금도 바람이 없는 날이면 직사각형 연못 ‘영지’에 인근 부용봉이 그림자처럼 비친단다. 기암괴석과 폭포 등이 어우러진 절경 덕분에 이제현, 김시습, 이황 등 많은 문인이 찾아 머무르며 글을 남겼다.
삼악산 등선폭포 금강굴
삼악산 등선폭포 협곡
#겨울이 조각한 삼악산 등선팔경 비경 

청평사 여행은 하루에도 벅차다. 무리하지 않고 다음 날 삼악산(656m) 겨울산행에 도전한다. 두 가지 코스가 있다. 의암매표소에서 시작해 상원사∼철계단∼삼악산 정상(용화봉)∼흥국사∼등선폭포∼삼악산매표소로 이어지는 등산로는 상급자 코스. 상원사를 지나면 아주 가파른 길이 계속되니 각오를 단단히 해야한다. 반면 등선폭포에서 시작해 정상까지 오르는 반대 방향 코스는 완만해 초보자도 그리 힘들지 않고 오를 수 있다. 특히 협곡과 아기자기한 바위 능선을 따라 등장하는 폭포 6개 등 ‘등선팔경’을 즐기며 산을 오르는 재미가 크다.

삼악산 등선폭포와 협곡
등선폭포 위 계단에서 내려다 본 풍경
매표소에서 입장료 2000원을 내자 같은 금액의 지역 상품권을 내어준다. 춘천의 식당 등에서 현찰 대신 쓸 수 있다니 사실상 무료다. 작은 선물을 받은 듯한 기분을 안고 등선휴게소 건물 아래 작은 터널을 통과하면 금강굴 협곡이 등장한다. 약 25억∼5억7000만년 전 퇴적된 규암이 지각운동으로 가파르고 날 선 절리를 만들면서 보기 드문 협곡을 조각해 놓았다. 금강굴을 지나 다리를 건너면 두세 명 정도가 겨우 지날 정도로 더 좁은 협곡이 등장한다. 마치 신선의 세상으로 들어가는 길목인 듯 신비롭다. 그리고 그 사이로 드러나는 얼어붙은 등선 제1폭포는 압권이다.
승학폭포
밑에서는 잘 못 느낀다. 가파른 철계단을 올라 폭포 위쪽에 서면 낭떠러지 같은 아찔한 폭포와 협곡 풍경 때문에 심장이 방망이질을 한다. 오를수록 더 빼어난 비경이 계속 등장하니 감탄은 이르다. 승학폭포는 아담하지만 작은 소와 아기자기한 바위, 얼음폭포가 아름답게 어우러진다.산장같은 건물과 돌탑때문에 등산로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데 승학폭포 표지판을 보고 왼쪽 길로 들어서면 시크릿가든 같은 비밀스런 공간에 들어 선 느낌이다. 바위 위에 잠시 걸터 앉아 쉬어가기 좋고 폭포를 둘러싼 풍경이 예뻐 SNS용 사진이 잘 나오는 곳이다. 
백련폭포
주렴폭포
주렴폭포 위
흰 비단천을 펼친 듯한 백련폭포와 선녀가 목욕하던 옥녀담 등 곳곳의 비경 덕분에 오랜만에 눈이 즐겁다. ‘선녀와 나무꾼’의 전설이 깃든 비룡폭포를 지나면 마지막 주렴폭포다. 폭포를 가로지르는 아치형 다리 위에 서면 인생샷이 완성되니 반드시 흔적을 남기도록.

하지만 가장 멋진 풍경은 조금 더 올라 정상까지 2.1km 남았다는 이정표가 나온 뒤 등장한다. 마치 계곡을 굴러 내리다 물이 얼어붙으면서 멈춘 듯, 거대한 바위 덩어리가 아슬아슬 얼음폭포 위에 매달려 있다. 계곡물은 녹은 아이스콘처럼 흘러내리다 계단 모양 빙벽으로 멈춰 독특한 겨울정취를 선사한다.

삼악산 등산로
삼악산 등산로 ‘흔들바위’
이름은 없지만 이 얼음폭포가 오늘 산행의 으뜸이다. 정상까지 얼마 안 남았지만 산행을 포기했다. 올라 갈수록 길이 거의 빙판으로 변하더니 급기야 ‘절대주의 빙판길 구간’이라 쓴 펼침막이 앞길을 막는다. 설악산의 빼어난 암봉과 오대산의 웅장함을 모아놓은 듯한 삼악산 정상에 서면 의암호와 북한강이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풍경이 장관이라는데 아쉽다. 봄이 오면 다시 오리라. 아이젠을 챙기지 않은 초짜의 한계를 탓하며 발길을 돌린다.

춘천=글·사진 최현태 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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