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표 이익공유제, 왜 민심을 잡지 못하나

반기웅 기자 2021. 1. 24.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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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이름이 어떻게 붙든 코로나 시대에 돈을 버는 기업들이 피해를 입는 대상들을 돕는 자발적인 운동이 일어나고 그 운동에 대해서 정부가 강력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문재인 대통령, 1월 18일 신년기자회견) 문재인 대통령이 꺼져가던 이익공유제 불씨를 살렸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대통령 기자회견 당일 페이스북에 “대통령께서 저의 제안으로 민주당이 추진하는 이익공유제가 바람직하다고 평가하셨다”며 문 대통령의 재가를 강조했다.

대통령 사면론에 이어 이익공유제마저 실효성 논란에 휩싸이면서 지지율 하락국면을 맞았던 이 대표는 한숨 돌리게 됐다. 문 대통령의 발언 이후 민주당 내 이익공유제 논의는 속도를 내고 있다. 이르면 1월 안에 구체적인 로드맵을 공개한다는 방침이다.

여당의 움직임과 달리 여론의 반향은 미미하다. 이례적으로 문 대통령의 힘 싣기도 통하지 않는다. 이익공유제의 수혜 대상인 자영업자 사이에서도 기대감이 낮다. 코로나 이익공유제는 왜 민심을 잡지 못할까.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가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이익공유제 아닌 이익공유제

문 대통령은 코로나 이익공유제 발언에 앞서 ‘이름이 어떻게 붙든’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정세균 국무총리도 TBS 라디오 인터뷰에서 “나는 그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며 이익공유제에 선을 그었다. 왜 이익공유제라는 명칭에 민감할까.

2011년 이명박 정부에서 추진한 초과이익공유제와 2018년 문재인 정부의 협력이익공유제는 모두 ‘공동 사업을 하는 기업이나 집단’에 적용하는 성과 배분 방식이다. 다시 말해 이익공유제의 시행 대상은 공동 사업을 영위하는 대기업(원청)과 시장 위험을 공유하는 중소기업(하청)으로 한정된다. 예컨대 완성차 업체가 출시한 신차(최종재) 판매 실적이 예상치를 뛰어넘으면 초과 이윤을 협력업체와 나누는 개념이다. 뿌리 깊은 불공정하도급 문제의 근본 해결책으로 보기는 어렵지만, 원하청 기업 간 격차를 완화하는 보완책으로서는 의미가 있다.

그런데 코로나 이익공유제는 기존 이익공유제와 다르다. 기존 이익공유제의 틀로는 설명할 수 없는 정책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협력이익공유제를 설계한 홍장표 부경대 경제학부 교수(전 청와대경제수석)의 구상과도 거리가 있다.

코로나 이익공유제에서 지칭하는 코로나 피해집단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이다. 반대로 코로나19 ‘특수’를 누린 대표적인 집단은 네이버와 배달의민족과 같은 IT·플랫폼 기업이다. 은행 등 금융업종도 수혜 업종으로 분류된다. 그런데 코로나19로 타격을 입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은 플랫폼과 은행과 공동 사업을 영위하지 않는 별개 집단이다. 원하청 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실패에 대한 위험도 공동으로 부담하지 않는다. 남종석 경남연구원 연구위원은 “이익공유제는 사업 리스크를 공유하는 집단에 적용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며 “민주당의 ‘코로나 이익공유제’는 이익공유제로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남 연구위원은 “코로나19로 수익이 개선된 집단의 이윤을 피해집단에 지원한다는 취지라면 이익공유제가 아니라 별도의 방안을 만들어 추진하는 게 맞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코로나 이익공유제는 왜 이익공유제라는 명칭을 붙였을까. 코로나 이익공유제와 기존 이익공유제의 유일한 공통점은 자발적 참여다. 그런데 이 같은 자율 참여 방식은 기존 이익공유제가 실패한 주요 원인 중 하나다. 2011년 초과이익공유제 도입 논란 당시 국회입법조사처는 “이익공유제 도입 여부를 전적으로 대기업이 결정하고 제도로서 강제성도 없기 때문에 실행에 의문이 제기된다. 보다 실현 가능성이 높은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대·중소기업 협력이익배분제의 한계와 대안·박충렬)

경제 양극화를 표현한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착한 기업인 운동’의 한계

자발성을 강조하는 코로나 이익공유제는 착한 임대인 운동과 같은 캠페인 성격이 짙다. 두 정책 모두 자발적 참여를 전제로 인센티브를 내걸고 참여를 독려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코로나 이익공유제를 빗대 ‘착한 기업인 운동’이라고 비판한 이유다.

자영업자 사이에서도 코로나 이익공유제에 대한 반응은 냉담하다. 자영업자는 착한임대인 운동의 실패를 경험한 집단이다. 전국에서 임대료 인하 혜택을 받은 점포는 4만2977곳(지난해 10월 기준)으로 전국 700만 소상공인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다. 이 때문에 자영업자는 자발적 참여를 전제로 한 제도를 신뢰하지 않는다.

충북 청주시 청원구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변인성씨(가명·41)는 “이익공유제가 좋은 취지라는 건 알겠는데 그래서 언제 어떻게 우리를 지원한다는 건지를 모르겠다”며 “일단 자발적으로 뭘 한다고 하면 뜬구름 잡는 이야기처럼 들려서 신경 안 쓴다”고 말했다. 박지호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 사무국장도 같은 견해다. 박 사무국장은 “장사하는 분들은 이미 자발적 참여 방식이 현장에서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며 “실패한 정책과 똑같은 정책을 들고 나왔으니 반응이 좋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왜 ‘이익공유제’를 고집할까. 박상인 교수(서울대 행정대학원)는 코로나 이익공유제가 민주당의 이중성을 보여주는 정책이라고 본다. 자발적 참여를 전제로 책임은 회피하면서 이익공유라는 명칭을 붙여 진보적 정책의 상징성은 차용했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선거 앞두고 조세저항이 생기는 강한 재정정책은 펼 수 없으니 우회로로 택한 것이 코로나 이익공유제”라며 “효과가 없으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겉으로는 뭔가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보여주기용 정책”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코로나 이익공유제에 대해 긍정적이라는 뜻을 밝힌 뒤 민주당 내에서는 각종 이행방안이 쏟아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혼선도 빚어진다. 지난 19일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이 은행권의 이자를 제한해야 한다는 뜻을 밝히자 이낙연 대표가 ‘이자까지 정치권이 관여하는 것은 몹시 신중해야 한다’며 진화에 나서기도 했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재난 상황에서 국가 재정과 세제를 조악하게 만드는, 정치적으로 팬시해 보이는 지원책만 나오고 있다”며 “생산성 없는 논의로 골든타임을 놓칠 게 아니라 장애인고용촉진기금처럼 여력이 있는 재정을 활용한 실효성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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