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예능의 현실①] 광범위한 스펙트럼, '설민석 예능'이 보여준 예견된 패착

박정선 입력 2021. 1. 24.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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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예능의 유행, 스타 강사 모시기에 혈안
"방송사 섭외 구조와 인식 달라져야"
ⓒtvN, SBS

예능프로그램의 한 코너, 혹은 특집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을 통해 ‘재미’를 넘어 ‘정보’를 얻고자 하는 대중들의 욕구를 파악한 제작진은 본격적으로 교양 예능을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만들어냈다. 먹고, 듣고, 웃는 즐거움에 알고, 깨닫는 즐거움까지 더해진 것이다.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것이 인문학 콘텐츠였고, 많은 방송사에서 최근 몇 년간 꾸준히 관련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교양을 표방했다고 해도, 프로그램도 본질은 ‘예능’이다. 시청자들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면서도 진부한 주제로 일관할 시 외면당할 위험이 존재한다. 그렇다 보니 이들이 선보이는 교양형 예능의 스펙트럼은 매우 광범위해졌다. 재테크, 부동산, 역사, 음식, 도서, 미술 등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각종 정보를 다양하게 제공하면서 변주를 해온 것이다.


예능의 성질을 갖추기 위한 또 한 가지 방법은 정보를 전달하는 ‘지식 전달자’ 섭외다. 방송가는 오랜 내공으로 다져온 입담으로 딱딱한 정보를 쉽고 흥미롭게 다루는 인물들을 끌어들였다. 그렇게 학원가에서 인기를 끌던 유명 강사와 평론가들이 대거 방송가에 유입됐다.


물론 이런 예능의 트랜드 변화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점도 있지만, 문제점도 곳곳에서 드러났다. 가장 큰 문제는 특정 인물이 전문적인 내용을 방대하게 다루면서 정보에 오류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을 ‘지식 소매상’이라고 일컫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아무리 전문 분야라 해도 자칫 방심하면 실수가 나오기 마련인데, 그렇지 않은 분야에까지 손을 뻗치다 보니 논란은 예견된 수순이었다.


최근 tvN ‘설민석의 벌거벗은 세계사’는 첫 방송부터 이미 수많은 연구자들에 의해 부정된 바 있는 이야기를 사실처럼 전달하고, 전후관계의 오류를 범하는 등의 논란을 일으켰다. 두 번째 방송에서 다룬 이집트 클레오파트라 편도 마찬가지였다. 정확하지 않은 정보와 확인되지 않은 가십들로 가득했다. 방영 이후 전문가들은 오류를 지적했고, 일각에선 “터질 게 터졌다” “언젠가는 터졌어야할 문제”라는 반응이 잇따랐다.


ⓒtvN

설민석은 2016년에도 한 차례 논란을 겪었다. ‘장희빈이 사약을 마시기 전 아들 경종을 성불구자로 만들었다’는 신빙성 낮은 이야기를 마치 역사적 사실인 것처럼 말해 학계의 빈축을 샀다. 또 3.1운동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태화관을 ‘룸싸롱’이라고 말해 한동안 격한 비판을 받기도 했다. 당시 설민석은 “민족대표 33인을 폄훼할 의도는 없었다”고 사과했지만 유족회에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 설민석은 1400만원의 손해배상 판결을 받았다.


2016년 스타 강사 최진기 역시 논란에 휩싸였다. 그는 tvN ‘어쩌다 어른’에 출연해 오원 장승업에 대해 강의를 이어가던 중 전혀 다른 그림을 가져다 놓고, 이 그림을 오원 장승업의 ‘군마도’라고 소개했다. 논란이 일자 제작진은 오류를 인정했고, 프로그램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주의’ 조치를 받았다. 최진기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모든 방송에서 하차했다. tvN ‘알쓸신잡’에서도 유사한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2010년 후반, 본격적으로 교양 예능이 방송가에 들어선 당시부터 정보의 정확성에 대한 의구심이 동시에 불거진 것과 다름이 없다. 그로부터 벌써 5년여가 지났지만, 여전히 정보의 정확성에 대한 문제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논란이 점차 쌓여가면서 신뢰성이 점차 무너지고 있는 추세다.


물론 설민석과 같은 한 사람의 욕심, 혹은 전문성 부족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방송사의 부실한 제작 방식과 문제의식의 부재가 불러온 패착이라고 입을 모은다. 현재까지도 ‘선을 넘는 녀석들 리턴즈’ ‘벌거벗은 세계사’를 비롯해 ‘유 퀴즈 온 더 블럭’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등 많은 교양형 예능이 방영되고 있는 상황에서, 방송사의 섭외 구조와 인식이 개선되지 않는 한 이 같은 문제는 계속해서 불거질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데일리안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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