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현 "동맹은 자주국방 보조수단.. 북한은 분명히 변하고 있다" [인터뷰]

김찬호 기자 2021. 1. 24.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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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한반도 정세 전망

[경향신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인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이 1월 20일 인터뷰하고 있다. / 김기남 기자

한반도 정세를 둘러싼 운명의 1월이 지나고 있다. 북한은 제8차 당대회와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내부 정비를 했다. 미국은 바이든 행정부 출범과 함께 한반도문제를 다룰 실무진을 공개했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신년 기자회견을 통해 “언제 어디서든 김정은 위원장과 만날 용의가 있다”며 흔들리지 않는 대북 정책기조를 밝혔다.

남북한과 미국은 새로운 관계 설정을 위한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아직 본격적인 접촉은 없었다. 하지만 각자가 원하는 바는 조금씩 분명해지고 있다. 지난 1월 20일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을 만나 새롭게 형성될 한반도 정세를 들어봤다.

-김 위원장이 제8차 당대회에서 경제 실패를 인정했다. 어떤 의미인가.

“북한에는 ‘수령 무오류의 원칙’이 있다. 수령이 결정한 것은 모두 일리 있고 결과도 좋다는 것이다. 그런데 김 위원장은 이를 뒤집고 여러 차례 실패를 인정했다. 체제에 대한 자신이 없으면 이런 말은 못 한다.”

-김여정도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지위가 강등된 것인가.

“대남관계나 대미관계에 종사했던 사람들 전부 강등됐다. 하노이 노딜이나 남북관계 경색 같은 것을 인민에게 설명하기 위해서는 관련자들을 영전시킬 수 없는 것 아닌가. 김여정은 대남관계나 대미관계가 복원될 때 다시 기용하면 된다. 지금 북한에 대남비서, 국제비서가 없다. 이 자리로 김여정이 복귀할 수도 있다. 지금이야 대남비서를 시켜봐야 할 일도 없지 않나. 이 문제는 봄이 되면 땅속에서 싹을 틔워 올리게 씨앗을 묻어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조용원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이 당 비서로 선출되며 급부상했다.

“엄청나게 올라갔다. 더욱 놀라운 것은 금수산 기념궁전 참배할 때 보니까 김 위원장 바로 오른쪽에 있더라. 그럼 서열 3위인데 벼락출세를 한 셈이다. 원래 조직지도부라는 곳이 고위직부터 하위직까지 감시하는 곳이다. 간부 인사도 다 거기서 한다. 이 일들을 김 위원장 마음에 들게 한 것 아니겠나.”

-김 위원장 지위도 변했다. 당 총비서가 됐는데 어떤 의미인가.

“김일성·김정일이 총비서였다. 김 위원장은 조선노동당 위원장을 하다가 이제 할아버지·아버지 반열에 올라간 것이다. 북한은 당이 국가를 운영하는 개념이기 때문에 김 위원장 위상도 올라간 것이다.”

-김 위원장은 미국에 대해 ‘강대강, 선대선’ 원칙을 발표했다.

“미국에 얼마든지 외교로 풀 수 있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미국이 협상하겠다고 한다면 얼마든지 응하겠지만 대결을 선택한다면 물러서지 않겠다는 것이다. ‘강대강, 선대선’은 결국 미국이 결정하라는 뜻이다.

-동시에 ‘핵무력’도 강조했다. 대결 의지를 드러낸 것 아닌가.

“북한의 말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문맥과 어감을 반영하지 않고 오로지 단어로만 이해하면 단순히 국방력 강화를 말한 것 같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김 위원장 발언을 끝까지 보면 핵무력을 강조하면서도 ‘강력한 국가방위력은 결코 외교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옳은 방향으로 추동하면 성과를 담보하는 수단이 된다’고 했다. 외교적 해결 가능성을 밝힌 것이다.”

-북한이 외교적 해결에 나선다면 핵과 미사일을 포기할 뜻이 있다고 봐도 되나.

“김 위원장은 2018년 문 대통령과 도보다리를 걸으며 경제를 살리기 위해 핵과 미사일을 버릴 수 있다는 뜻을 밝혔다. 다만 경제가 아무리 중요해도 체제보장 없이 핵을 포기하기는 어렵다. 미국과의 수교와 평화협정이 이뤄져야 핵을 포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수교가 되면 평양에 미국대사관이 들어가고, 워싱턴에도 북한대사관이 생긴다. 평양에 와 있는 외교관 때문이라도 북한을 공격하지 못하게 된다. 북한 역시 더 이상 국방력 강화에 올인할 필요가 없다.”

-3월 한미연합훈련이 예정돼 있다. 외교적 해결이 어려워지는 것 아닌가.

“북한은 어느 때보다 한미연합훈련 중단에 대한 갈증이 심하다. 이는 제8차 당대회에서 채택된 새로운 경제발전 5개년 계획과 관련이 있다. 3월에 한미연합훈련이 시작되면 거기에 대응해야 하기 때문에 경제에 국력을 집중시키기 어렵다. 또 한미연합훈련 대비에도 많은 자원을 낭비하게 된다. 예를 들어, 기름이나 인력 낭비다. 북한 군대에는 싸우는 군인만 있는 게 아니라 건설현장에 투입되는 군인도 많다. 만약 훈련이 없다면 이런 자원들을 경제발전에 활용할 수 있다. 5개년 계획을 속도감 있게 추진해야 하는데 한미연합훈련이 시작되면 최소 4월까지는 멈춘다고 봐야 한다.”

-이와 관련해 문 대통령이 북한과 협의할 수 있다고 했는데.

“연합훈련이기 때문에 미국의 양해 없이는 결정할 수 없다. 아마 미국과 사전 교감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미국도 새 정부가 출범하고 한반도문제를 다루는 팀이 완전히 꾸려지려면 최소 6개월은 걸린다. 한국 정부에 북한문제 해결을 위한 사전 작업을 맡겼을 수도 있다. 실제로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2017년 12월 19일 문 대통령이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미국 NBC 방송과 경강선 KTX 안에서 인터뷰를 했다. 그때 한미연합훈련을 올림픽 기간 동안 중단하는 것을 고려한다고 말했다. 이는 사전에 미국과 이야기가 된 것으로 알고 있다. 이 발언으로 김여정이 김 위원장 친서를 갖고 오게 됐고, 정상회담으로 이어졌다. 그때 상황이 지금과 굉장히 비슷하다는 느낌이 든다. 이번에도 그렇게 풀려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훈련이 중단되면 어떤 변화가 생기나.

“훈련을 그냥 중단할 수는 없다. 우리도 군사적으로 받아내야 한다. 문 대통령이 ‘남북군사공동위원회 회담을 통해 한미연합훈련 문제를 해결하자’고 한 만큼 회담이 열리면 받아낼 목록이 준비돼 있을 거라고 본다. 이런 식으로 순차적으로 풀어나가면 비록 군사회담으로 시작됐지만, 사회·문화 분야의 협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2018년 9월 19일 합의된 남북 군사 분야 합의서대로 접경지역의 군사적 긴장만 완화해도 좋다. 수도권 경제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북한문제를 어느 정도 우선순위에 둘 것으로 보나.

“대외문제로는 이란문제나 기후변화 문제가 우선이다. 하지만 그전에 국내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대통령 취임식도 삼엄한 경비 속에서 치러야 할 만큼 미국이 분열돼 있다. 앙금이 오래갈 것이다. 초기에는 국내문제 때문에 대외문제에 할애할 시간이 없을 수 있다. 그 이후에도 북한문제는 상대적으로 순위가 낮을 것이다. 사실 미국의 동북아정책에서는 중국문제가 제일 크다. 중국문제의 부속 문제로 북한을 생각할 수도 있다.”

-우리 정부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미국이 북한문제의 우선순위를 높이도록 설득해야 한다. 다행히 대북접촉·협상 경험이 있는 웬디 셔면이 국무부 부장관으로 지명됐다. 미국의 대북전략이 우리 입장과 일치할 수 있게 노력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에게는 아직 1년여가 남았다. 미국 조야를 설득하는 노력을 본격적으로 해야 한다. 다행히 정의용 신임 외교부 장관은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하며 북한을 여러 차례 상대해봤다. 북한의 숨은 뜻을 읽어낼 수 있는 경험이 있다. 통일부와 협력해 미국에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잘 설명할 것이라고 본다.”

-앞으로 북미 협상은 ‘비핵화’가 아닌 ‘군축’으로 바뀔 거라는 의견도 있다.

“너무 앞서가는 이야기다. 미국과 북한이 군축을 놓고 협상한다는 것은 균형이 안 맞다. 군축협상은 미국과 소련 정도가 하는 것이다. 미국이 핵탄두를 7000개 정도 보유했다. 북한은 많아야 30~60개 정도다. 규모 차이가 있는데 어떻게 상호주의 원칙이 적용되는 군축협상을 하겠는가. 그건 자가당착이다. 이런 주장을 하는 이들은 ‘북한은 절대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 차라리 북핵을 인정하고 통제하는 방향으로 가자’는 논리를 세운다. 주로 군산복합체 관계자들에게서 이러한 주장이 만들어진다. 한반도에 핵이 남아 있는 한 미국은 무기를 계속 팔 수 있기 때문이다.”

-국무장관으로 지명된 토니 블링컨이 ‘대북 접근법’을 재검토할 뜻을 밝혔는데.

“아직 어떤 재검토인지 단정할 수 없다. 다만 이게 비핵화가 아닌 핵과 미사일을 관리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는 의미일까봐 불안한 마음은 든다. 트럼프 때와는 달리하겠다는 것인데 트럼프는 북한의 요구를 들어주고 비핵화하는 방식이었다. 블링컨 입장에서는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한국이 미군은 나가라는 식으로 나올까봐 염려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관리 쪽으로 선회할 수 있다.”

-미국 입장에서 주한미군이 왜 중요한가.

“주한미군은 북한의 침입을 방어하는 것에서 중국을 견제하는 것으로 성격이 바뀌었다. 한미동맹도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는 인도·태평양전략의 일부로 바뀔 수 있다. 평택항의 주한미군은 태평양 전체를 미국의 내해처럼 만드는 최전방 감시 초소와 초병이다. 미국의 동북아 전략이 중국견제가 된 만큼 한반도에 군대를 두는 것이 필요하다.”

-미군이 북한의 침략을 막아준다는 시각도 있다.

“안보를 두고 우리 내부에서 발견되는 가치 전도 현상이다. 안보의 첫 번째 수단은 자주국방이다. 이것이 어려울 때 동맹으로 보충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거꾸로 동맹이 안보와 동의어이자 국가 목표가 돼 버렸다.”

-남북관계는 조금씩이라도 개선되고 있는가.

“분명히 변화하고 있다. 이번 당대회에서도 북한은 남쪽이 하는 만큼 상대하겠다고 했다. 이는 상호주의다. 전에는 모든 책임을 남쪽으로 떠넘기기만 했다. 북한이 상호주의로 남북관계를 풀어나갈 수 있다고 한 것은 큰 변화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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