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0억 챙긴 사이버 범죄 회장님, 그의 집엔 달러뭉치가 굴러다녔다

조철오 기자 입력 2021. 1. 24. 13:47 수정 2021. 1. 25.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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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서 불법 사이트 운영해 투자금 가로챈 50대에 징역 15년

동남아에서 불법 선물·주식거래 사이트 운영하며 국내 투자자들에게 1600억원을 받아 이 중 430억원을 가로챈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모(56)씨에게 법원이 중형을 선고했다. 이 남성은 20년 가까이 한국과 태국·베트남 등지를 옮겨가며 휴대전화 운세 무료상담 사기, 불법 도박사이트 개설, 외국 복권 구매대행 사기 등 돈 되는 사이버 범죄에 손을 댔다. 특히 태국의 강남으로 불리는 스쿰윗에서 약 40층짜리 콘도의 꼭대기 층 펜트하우스에서 살며 비서·가정부 등 5명의 개인 집사를 고용하는 등 호화생활을 이어갔다. 지하 주차장에는 BMW 7시리즈 등 여러 대의 고급 외제차가 주차돼 있었다.

경찰은 430억원 중 115억원가량을 몰수보전 조치했지만 나머지 약 300억원 이상을 썼거나 외국으로 빼돌렸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경찰은 이 돈으로 우크라니아 국적의 이씨 아내가 현지에서 농장, 건물 등을 사들인 것으로 보고 있다.

의정부지법 형사합의13부(재판장 정다주)는 구속기소된 피고인 이모(56)씨에게 “죄질이 상당히 나쁘다”며 징역 15년을 선고했다고 24일 밝혔다. 이씨에게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사기·횡령,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 국민체육진흥법 위반, 범죄수익 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등 총 13개 혐의가 적용됐다.

경기북부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는 2020년 4월 430억원대 규모 사이버범죄조직의 '대부'격인 총책 이모(56·가운데)씨를 인천공항에서 압송하고 있다. 경찰은 태국에서 입국한 이씨의 코로나19 감염 우려에 따라 두 수사관에게 방호복을 착용시켰다. /경기도북부경찰청

판결문에 따르면 이씨는 지난 2012년 5월 태국 방콕에서 무허가 선물·주식거래 사이트를 개설했다. 회사를 차려 총무, 개발, 프로그램 개발, 주식 운용 등 4∼5개 팀을 두고 자신은 이를 총괄하는 회장직을 맡았다. 처음에 1~2개로 시작된 이 무허가 사이트 수는 13개로 늘었고, 다수의 매체에 광고해 정상적으로 금융투자상품에 투자할 수 있는 것처럼 위장한 뒤 회원을 모집했다.

실시간 시세와 연동한 화면을 보여줘 회원들이 의심하지 않았다. 특히 회원들이 가끔 최소한의 수익을 내도록 정교한 체계를 고안, 운영하며 2017년 10월까지 이들 사이트를 유지했다. 이씨는 5년간 회원 231명에게 총 430억원을 송금받아 가로챘다.

또한 이씨는 2002년부터 지금까지 다양한 사이버 범죄에 손을 댔다. 처음엔 휴대전화 운세 무료상담 사기로 시작했다. 무작위로 문자를 발송하고 전화가 오면 아무런 안내도 하지 않은 채 시간만 흐르게 해 정보이용료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3500만원을 가로챈 뒤 베트남으로 출국했다.

2005년에는 베트남에서 이른바 ‘세븐포커’ ‘바둑이’ ‘고스톱’ 등 불법 도박사이트를 개설해 7개월 사이 10억원을, 2007년에는 태국에서 사설 스포츠 도박사이트를 2년 가량 불법 운영해 11억원을 각각 챙겼다. 2016년 베트남에서 외국 복권 구매대행 사이트를 개설해 81명으로부터 송금받은 7000만원을 빼돌리기도 했다.

이씨는 외국인 명의의 한국 계좌로 송금하고 나서 환치기 방법으로 다시 태국 계좌로 이체하는 수법으로 범죄수익 중 169억원을 국외로 빼돌렸다. 이씨는 검거 전까지 18년간 태국과 베트남에 머물며 고급 외제차를 타고 콘도 등에서 호화롭게 생활했다. 경찰이 2018년 이씨의 국내 주소였던 광주의 한 주택을 압수수색했을 당시 수백만원씩 입금된 통장 여러개와 100달러 돈뭉치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앞서 경기북부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는 지난해 4월 이씨를 태국에서 강제 송환했다. 이들은 장기간 도피 생활을 하며 경찰의 수사망을 피해왔다. 하지만 2016년 한 수사관이 우연히 받게 된 복권 판매 내용의 스팸 문자 한 통을 계기로 수사가 시작됐다. 경찰은 스팸 문자를 단서로 이후 약 2년 9개월간의 추적 끝에 국내 사이버범죄조직을 찾았다. 경찰 관계자는 “이들은 국내 사이버 범죄 조직의 시초격”이라고 설명했다.

경찰과 검찰은 이씨가 운영한 회사를 범죄단체조직으로 보고 기소했으나 재판부는 “직원들이 자유롭게 일을 그만둘 수 있었다”는 이유 등으로 무죄 판단했다. 또 피해자들이 손해배상청구 등 법적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범죄 수익 몰수나 추징을 명령하지 않았다. 이씨는 “사기 의도가 없었고 일부 혐의는 공소시효가 완성됐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대부분 받아들이지 않았다.

경기북부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에서 압수한 이모(55)씨 운영 사이버범죄조직의 수익금 일부. /경기도북부경찰청

재판부는 “피고인은 사회적으로 허황한 사행심을 조장, 불특정 다수의 피해자에게 막대한 경제적 손해를 끼쳐 죄질이 상당히 나쁘다”며 “사기 등으로 취득한 막대한 범죄수익을 국외로 숨겨 그 이익 대부분을 향유했다”고 말했다. 이어 “피고인은 잘못을 전혀 반성하지 않고 공범들에게 허위 진술을 독려했다”며 “피해자들에게 끼친 막대한 해악 등을 고려할 때 그 죄책에 상응하는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씨가 운영한 회사 임직원 일부도 검거돼 이미 징역 5∼6년이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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