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택시기사 "이용구가 블랙박스 영상 지워달라고 했다"

김지원 기자 2021. 1. 24.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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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구가 폭행한 택시기사, 본지 동승 인터뷰
경찰은 '안본걸로 하겠다'고 한 뒤 내사종결
이용구 법무부 차관이 21일 오후 경기 과천시 정부과천청사 법무부를 나서고 있다./뉴시스

이용구 법무부 차관으로부터 폭행을 당한 택시기사가, 이 차관의 ‘영상을 지워달라'는 요청에 영상의 존재를 감춰온 것으로 24일 확인됐다. 줄곧 ‘영상을 확보하지 못했다'고 밝혀온 경찰은, 실제로는 기사의 영상을 보고도 ‘못 본 걸로 하겠다'며 사건을 내사 종결했다. 경찰은 이날 뒤늦게 진상조사단을 꾸리고 ‘이용구 폭행사건 진상 조사'에 착수했다.

◇택시기사 “이용구, 영상 지워달라고 요청”

이 차관으로부터 폭행을 당한 택시기사 A씨는 24일 본지와 차량 동승 인터뷰에서 “이용구 차관이 폭행 영상을 확인하고는 영상을 지워달라고 요청했다”고 말했다. 당초 A씨의 차량 블랙박스에는 폭행 영상이 녹화돼 있지 않았지만, A씨는 폭행 다음날인 작년 11월7일 서울 성동구의 한 블랙박스 업체를 찾아가 영상을 복원했다. 영상을 복원한 날, 이 차관은 A씨에게 전화를 걸어 사과의 뜻을 밝혔다고 한다. 그러자 A씨는 ‘반성하라'는 뜻에서 복원한 영상을 이 차관에게 전송했다. 그러자 이 차관은 “고맙고 미안하다”며 재차 사과했다.

이튿날인 8일 A씨가 합의를 위해 이 차관을 만난 자리에서, 이 차관은 “영상을 지우는게 어떻겠냐”고 요청했다. 이에 A씨는 “그게 무슨 지울 필요가 있냐, 안 보여주면 되지”라고 답했다고 한다. 합의 다음 날인 9일 서초경찰서의 1차 조사에 출석한 A씨는 “블랙박스 업체에 방문해 복원을 시도했으나 (폭행) 영상은 없다”고 진술했다. A씨는 이 차관과 이미 합의를 했기 때문에 이같이 답했다고 한다.

◇”이용구, 폭행 전 ‘XX놈의 XX’라고 욕”

경찰은 A씨의 진술을 토대로 블랙박스 업체들과 접촉하다, 한 블랙박스 업체로부터 영상의 존재를 확인했다. 이어 11일에 추가 조사에서 경찰이 “블랙박스 영상을 찍어 갔다고 들었다”고 하자, A씨는 그제야 폭행 장면이 담긴 30초 분량의 영상을 보여줬다. 이 영상에는 같은달 6일 택시를 타고 서울 서초동 자택으로 향하던 이 차관이 A씨의 뒷목을 움켜쥔 장면이 담겨있었다. 폭행 직전 이 차관은 A씨에게 “XX놈의 XX”라고 욕설을 했고, 이에 A씨가 “지금 저한테 욕하신 것이냐”고 하자 목덜미를 잡았다.

하지만 경찰은 영상의 존재를 덮었다. 이 차관 폭행 장면을 본 서초서 수사관은 “정차해 있는 상태”라며 “안본 걸로 할게요”라고 했다고 한다. 차량이 정차해 있는만큼 특가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 덮은 것으로 해석된다. A씨는 해당 영상에 계기판·미터기·기어 등 ‘운행 중’임을 증명해줄 단서는 없지만, 차가 움직이는 중인지 아닌지는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경찰 조사는 영상 확인 후 10분만에 끝났고, 따로 영상도 확보하지 않았다. A씨는 영상을 못본 체 하겠다는 경찰에 항의하거나 추가 조사를 요구하지 않았다고 했다.

서울 서초경찰서/조선 DB

◇속속 드러나는 경찰 부실수사 정황

경찰이 핵심 증거를 못본 체 했다는 사실이 추가로 드러나며, 부실 수사 의혹은 더욱 커지고 있다. 그간 경찰은 이용구 차관의 폭행 건이, 승하차를 위해 정차 중일 때라도 운전기사를 폭행하면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아도 입건되는 특가법 적용 대상 범죄임에도 ‘단순 폭행'으로 보고 내사 종결 처리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경찰은 ‘폭행 장면을 담은 영상을 확보하지 못했다'고도 주장해왔다. “블랙박스 영상의 존재를 경찰이 알았다”는 블랙박스 업체의 인터뷰에 대해선, 경찰은 “블랙박스 업체에 영상이 있냐고 물었더니 ‘없었다’고 했다며, 업체에 법적 대응을 할 것”이라고까지 했다. 경찰은 “A씨가 경찰조사에서 일관적으로 블랙박스 영상이 없다고 진술했다”며, 블랙박스 영상을 확인했다는 언론 보도 역시 부인했다. 이같은 경찰의 부실 수사 정황에 대해 검찰은 수사에 착수한 상태다. 24일 경찰은 자체적으로도 ‘진상조사단’을 꾸리겠다고 밝혔다.

택시기사 A씨는 “영상과 관련해 경찰에게 먼저 ‘없던 일로 하자’고 한 적 없다”며 “경찰이 나보고 허위 진술이라고 하니 억울한 심정”이라고 했다. 이어 “정차 중이더라도 기사가 운전석에 있을 때 손님이 폭행한다면 특가법으로 처벌할 수 있어야 운전자를 보호할 수 있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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