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종선의 올드무비㉗] '아노말리사', 애니로 보는 어른들 세상

홍종선 2021. 1. 24.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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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찾아오는 순간 ⓒ이하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우선 얼른 뜻이 들어오지 않는 제목부터 풀고 가자. 아노말리사, Anomalisa는 남자 주인공 마이클 스톤이 여자 주인공 리사에게 붙여 준 별명이다. 스톤은 유명 작가로 ‘고객을 어떻게 대할까’라는 책을 썼고, 고객 응대법에 대해 강연하기 위해 신시내티로 출장을 갔는데 거기서 애독자이자 팬인 리사를 만난다. 리사는 스톤이 책에서 쓴 표현, 스톤이 만든 말인 ‘Anomal’이라는 단어가 너무 좋다고 말한다. a+normal, ‘표준의’(normal)라는 단어 앞에 ‘반대’를 뜻하는 접두어(a)를 붙인 것으로도 볼 수 있고, ‘변칙의’를 뜻하는 anomalous라는 단어의 변형쯤으로 봐도 무방하겠다. 따라서 anomal은 ‘표준은 아닌’ ‘변칙적’ 정도의 뜻이 된다.


마이클은 독특한 리사, 수다스러운 동시에 부끄러움을 많이 타고 활발한 동시에 자신감이 결여된 리사의 이름 앞에 anomal을 붙여 Anomalisa라고 칭한다. 리사가 풍기는 전체적 느낌을 하나의 조어로 표현, 호감을 표한 것인데. 리사는 자기가 너무 좋아하던 단어가 자신에게 붙여진 것에 감격한다. 책을 읽을 때도 자신과 닮았다고, 자신을 설명하는 단어라고 생각했는데 다른 누구도 아닌 그 책의 저자가 자신에게 그 단어를 선물하는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아노말 리사, 평범하지 않은 리사와 마이클의 얘기를 들여다볼까.


인생, 현실과 공상 사이에서의 줄타기 ⓒ

마이클은 고객 마케팅 전문가다. 연예인은 아니지만 미국 동부 신시내티의 프레골리호텔에서 얼굴만 보고도 알아보는 이가 있을 정도의 유명세를 지니고 있다. 과자 회사 마케터인 리사에게는 스타다, 직장 동료와 휴가를 내 마이클의 강연을 들으러 올 만큼. 또, 한밤중 갑작스레 방문을 두드린 타인임에도 감격해 마지않을 만큼.


겉으로는 성공 가도를 걷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마이클의 내면은 외로움에 찌들어 있다. 일방적 강연이 아닌 제대로 대화 나눌 누군가가 필요하다, 마케팅 얘기 말고 자신의 얘기를 하고 싶다. 이러한 바람은 현실의 틈바구니에 환상인 듯 망상인 듯 멈칫멈칫 끼어들어 우리에게 드러난다. 그런 마이클에게 영혼의 남매 같은, 아니 닮지 않아도 상관없고 타인의 얘기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여자가 운명처럼 찾아온다. 리사다.


N극과 S극 ⓒ

사실, 둘은 서로를 알아봤다. 내 외로움을 끝낼, 이 사람과 함께라면 결혼생활도 다를 수 있고 인생이 아름다울 것을 마이클은 알았다. 8년의 솔로 라이프를 끝낼, 아니 나이 든 할아버지의 짝사랑을 받아 준 8년 전 데이트 말고 드디어 진짜 사랑을 하게 될 것을 리사는 알았다. 하지만 마이클은 유부남이고, 리사는 그 사실을 잊지 않을 만큼 도덕적이고 배려가 깊다. 머뭇거리던 두 사람은 자석처럼 끌리고 부끄러움과 도덕심을 떨치고 하나가 된다. 그리고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소위 원 나이트 스탠드, 언젠가 좋은 기회로 만날 것을 기원하면서. 두 사람의 사막 같은 인생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했고 한 번이지만 마셨으니 행복일까, 목을 축여 봤기에 앞으로의 목마름이 더욱 고통스러울까. 두 사람은 정말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아노말리사’는 애니메이션이지만 청소년 관람 불가 영화다. 성기 노출이 있어서만도 아니고 하룻밤의 정사가 있어서만도 아니다. ‘존 말코비치 되기’ ‘이터널 션사인’의 각본을 쓴 찰리 카우프만이 각본을 쓰고 연출한 만큼 인생과 사랑의 본질에 깊이 들어간다. 어른이 되어 직접 온몸으로 체감하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인생의 고독과 갈증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서 청소년에겐 적당치 않다. 드라마 ‘커뮤니티’에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에피소드를 연출한 듀크 존슨이 공동 연출한 덕에 ‘아노말리사’는 실사가 아니라 애니메이션이어서 가능한 수위까지 카메라를 들이민다. 어른들을 위한 애니메이션이라기보다는 어른의 세상으로 깊숙이 들어간 애니메이션이다.


갈림길…나 홀로 '노말', 그와 함께 '아노말' ⓒ

영화를 보노라면 한동안 어리둥절할 것이다. 남자도 여자도 남자가 목소리 연기한다. 그것도 한 사람(배우 톰 누난)의 목소리다. 오로지 마이클과 리사에게는 고유의 목소리가 있다. 마이클은 영화 ‘해리포터’ 시리즈의 루핀 교수, 데이빗 듈리스가 맡았고 리사는 연기파 배우 제니퍼 제이슨 리가 연기했다. 운명의 상대 외에는 모두 같은 소리, 엄밀히 말하면 내 심장까지 닿지 않는 목소리들임을 이런 방식으로 표현한 게 아닐까. 정답은 여러분 각자에게 있다.


영화 ‘아노말리사’(2015)를 보며 스스로 얼마나 편협한가를 새삼 절감했다. 마이클의 목소리로, 그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를 보며 초반에는 남자의 계속된 일탈 시도가 이기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이내 남자가 아닌 어른으로 살아가는 인간의 고독이 보였고 공감이 시작됐다. 세상의 흔하고 뻔한 틀로 마이클의 말과 행동을 재단한 것에 미안함이 밀려 왔다. 그것은 마이클의 이야기도, 남자의 이야기도 아니었다. 척박한 세상살이에 마음 한 조각 기댈 곳 쉽지 않은 우리의 이야기다. 제72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이유가 있다.

데일리안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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