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너와 나, 우리의 이야기

송지혜 기자 2021. 1. 24.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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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교회 앞 골목에서 너를 처음 봤다.' '너는 주차된 차들 곁을 지나며 자꾸만 창을 본다.' '서른아홉 되던 해에 나는 너를 다시 만났다.' 김혜진의 소설집 〈너라는 생활〉에 수록된 이야기는 모두 '너'를 중심으로 시작한다.

"너라는 2인칭에 대해 쓰고 싶었고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 소설들은 나로부터 출발하고 결국 나에게로 되돌아오는 이야기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너'의 이야기란 결국 '너와 나', 바로 우리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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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교회 앞 골목에서 너를 처음 봤다.’ ‘너는 주차된 차들 곁을 지나며 자꾸만 창을 본다.’ ‘서른아홉 되던 해에 나는 너를 다시 만났다.’ 김혜진의 소설집 〈너라는 생활〉에 수록된 이야기는 모두 ‘너’를 중심으로 시작한다. 2인칭이다. ‘나’라는 한계에서 보는 너, 가닿을 듯 절대 가닿을 수 없는 너, 갈수록 선명해지는 너와의 간극.

애초 원고 청탁을 받았을 때부터 작가는 ‘나’와 가장 밀접한 ‘너’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만들 거라고 생각했다. 단편 여덟 편이 한 소설집에 묶이고서 ‘작가의 말’에 이렇게 남겼다. “너라는 2인칭에 대해 쓰고 싶었고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 소설들은 나로부터 출발하고 결국 나에게로 되돌아오는 이야기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너’의 이야기란 결국 ‘너와 나’, 바로 우리의 이야기다.

〈너라는 생활〉의 첫 작품은 ‘3구역, 1구역’이다. ‘나’는 재개발이 추진되고 이주 문제로 주민 갈등이 빚어지는 곳에서 산다. 그러다 길고양이를 보살피는 ‘너’를 만난다. ‘너’는 적극적으로 길고양이를 구조하러 다니면서도 낡고 오래된 것들을 부숴야 한다고 믿는다. 선한 얼굴을 하던 ‘너’가 자본 앞에 드러낸 태도에서 ‘나’는 극복할 수 없는 불편함을 느낀다. ‘준비 없이 살아온 나’는 어떻게 해도 ‘너’라는 사람을 알 수 없겠다고 생각한다. 이제 나는 너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3구역, 1구역’은 작가가 재건축이 진행 중이던 서울 마포구 공덕1구역에서 거주한 경험을 바탕으로 썼다. 개발에 뒤얽힌 복잡한 관계를 이해하고 싶었다. 그저 가장 가까이 있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재개발 중인 광장을 배경으로 쓴 ‘팔복광장’, 안전한 주거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시도를 써낸 ‘아는 언니’ ‘동네 사람’ ‘자정 무렵’ 역시 현실에 밀착한 이야기다.

특히 위 작품에 등장하는 ‘너와 나’의 관계가 눈에 띈다. 모두 여성 커플이다. 이들은 어떤 적의나 혐오가 없는, 그러나 모욕적인 말을 듣는다.

“우리 사회가 ‘그런 사람’을 끌어안아야 한다며 열을 올리는데, 거기엔 너와 나도 포함되어 있는 것 같다(자정 무렵)”, “도대체 둘은 어떻게 알아본 거야? 알아보는 방법이 있어?(아는 언니)”라는 식의. 배려를 가장해 이들을 정상의 범주 바깥에 놓는가 하면 호의를 가장한 호기심을 드러내는 데에 숨김이 없다. 선량한 폭력이자 차별이다.

김혜진의 소설에는 성소수자, 노동자 등 ‘소수자’라고 불리는 이들이 자주 등장한다. 그렇다고 이편과 저편을 나누어 선과 악을 구분 짓거나 쉽게 공감하기를 허락하지 않는다. 다만 개별 인간을 주목할 뿐이다. 소설은 그저 목격하는 것, 산다는 것의 의미를 묻는다. 문장 앞에 자주 멈칫하겠지만 그렇기에 거짓 없이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송지혜 기자 so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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