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 제공자도 마이크를 쥐어봤던가

김영화 기자 2021. 1. 24.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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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은 의료계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았던 해다.

"귀지를 파면서도 나는, 교통사고를 예방하는 중이라고 스스로 생각한다." 장애인, 노인, 만성질환자들은 청력이 저하되면 자동차 경적이나 엔진 소리를 잘 듣지 못해 교통사고에 쉽게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집에 방문해서 사람을 돌보고, 안부를 묻는 일이 중요한 이유는 아픈 몸들을 고립에서 벗어나게끔 하기 때문이다.

의학이 병을 낫게 해도, 삶을 회복시키는 건 그런 종류의 돌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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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은 의료계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았던 해다. 방호복을 입은 채 땀을 식히고 있는 간호사의 얼굴을 보았고, 정례 브리핑마다 병상이 얼마나 남았는지, 역학조사는 어떻게 이뤄지는지 묻고 답했다. 보건소는 선별진료소가 되었고, 공공병원은 감염병 전담병원이 되면서 ‘공공의료’의 존재가 새삼 가까워졌다. 의사 정원 확대에 반발하는 의사들의 집단 휴진 사태를 겪으면서 ‘의사란 무엇을 위해 존재하나’라는 뜨거운 논쟁의 시간도 가졌다.

동시에 코로나19는 그 자체로 ‘사회적 사건’이었다. 청도대남병원, 신천지, 콜센터, 쿠팡물류센터 등등 집단감염이 발생했던 장소는 사회의 가장 약한 고리였다. 여성들은 독박 돌봄에 갇혔고, 장애인과 노인, 노숙인 등 감염 취약계층은 고립되었다. ‘아프면 3~4일 쉬기’나 ‘마스크 착용’ 같은 방역정책이 닿지 못하는 현실이 산재했다. 전례 없는 감염병 재난은 의학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의학이 병을 치료한다면, 예방하는 것은 돌봄이었다. 단순하게는 매일 소독하는 것부터 감염 취약계층에게 마스크를 나눠주고, 자가격리 대상이 된 장애인을 돌보며, 더 나아가 독거노인들의 밥을 챙기고, 누구든 고립되지 않도록 안부를 묻는 일. 사소하지만 전혀 사소하지 않은 ‘돌봄’들이 모여 일상을 가능하게 했다. 우리 사회는 의학에 대해 알게 된 만큼, 돌봄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을까? 의사에게 질문했던 것만큼 돌봄 제공자들에게도 마이크를 쥐여줬던가?

저자는 국내 최초 여성주의 병원인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살림의원’의 원장이다. 자전거를 타고 왕진 가는 동네 주치의로 알려져 있다. 어떤 날은 혈압 체크만 하고, 어떤 날은 기저귀만 갈고 오기도 한다. “귀지를 파면서도 나는, 교통사고를 예방하는 중이라고 스스로 생각한다.” 장애인, 노인, 만성질환자들은 청력이 저하되면 자동차 경적이나 엔진 소리를 잘 듣지 못해 교통사고에 쉽게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환자들을 만나면서 성매매 피해 여성들에게 칫솔질을 가르치고, 노인들의 발톱을 깎고 귀지를 파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된다. 설령 그것이 ‘의사스러운 행위’가 아닐지라도 말이다.

의료는, 의학은, 의사는 왜 존재하는가. 코로나19가 묻고 있는 질문이다. 병환을 다루는 의학용어는 많아도, 아픈 몸으로 존엄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언어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저자는 주치의로 일하며 한 사람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주는 것에서 시작한다. 누군가의 집에 방문해서 사람을 돌보고, 안부를 묻는 일이 중요한 이유는 아픈 몸들을 고립에서 벗어나게끔 하기 때문이다. 의학이 병을 낫게 해도, 삶을 회복시키는 건 그런 종류의 돌봄이었다. 코로나19 시대를 지나는 우리가 놓치고 있는 현실은 아니었을까.

김영화 기자 you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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