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는 사람이 없으면 작곡은 의미 없다

이상원 기자 2021. 1. 24.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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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사이시 조라는 이름을 알게 된 건 지난여름 피아노를 배우면서부터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하울의 움직이는 성〉 등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삽입곡 대부분을 작곡한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다.

'이 시국에 일본 곡을?'이라는 심술 아닌 심술 때문에 히사이시 조의 작품을 배우지는 않았지만, 머릿속에는 선생님이 쳐준 그의 곡이 한동안 맴돌았다.

서문은 "나는 작곡가다"라는 첫 문장으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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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사이시 조라는 이름을 알게 된 건 지난여름 피아노를 배우면서부터다. 선생님이 추천한 곡 가운데 귀에 익은 곡들이 그의 작품이었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하울의 움직이는 성〉 등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삽입곡 대부분을 작곡한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다. ‘이 시국에 일본 곡을?’이라는 심술 아닌 심술 때문에 히사이시 조의 작품을 배우지는 않았지만, 머릿속에는 선생님이 쳐준 그의 곡이 한동안 맴돌았다. 이런 와중 펴본 책이 〈히사이시 조의 음악일기〉이다.

저자를 ‘애니메이션 삽입곡을 만든 사람’ 정도로만 알던 이라면 이 책의 톤은 예상과 꽤 다를 것이다. 서문은 “나는 작곡가다”라는 첫 문장으로 시작한다. 본문에서 유명한 애니메이션 수록곡 이야기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16~17세기 작곡가들의 교향곡 감상이나 현대음악에 대한 고찰, 일본 교육과 예술사조에 대한 우려 등 ‘음악일기’라고 묶기엔 무거운 주제들을 다룬다. 심지어 일본 헌법개정 논의와 집단자위권 발동 문제를 비판하기도 한다.

성공한 애니메이션 작곡가가 풀어놓는 뜻밖의 이야기는 널리 알려지지 않은 그의 이력과 맞닿아 있다. 학창 시절 히사이시 조가 빠져든 음악 분야는 현대음악. 특히 미니멀 음악(패턴화된 음형을 반복하며 조금씩 변형해 미묘한 차이를 즐기는 음악)이었다. ‘낡은 것은 부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클래식 음악과는 거리를 뒀다. 30대에 접어들자 그는 자신이 해온 음악이 청자를 고려하지 않고 공허한 논리만 내세웠다는 회의감이 들었다. 이즈음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을 만나 〈모노노케 히메〉 삽입곡을 썼다. 영화음악에 오케스트라를 쓰면서, 오케스트라의 전범인 클래식 음악을 새로 공부하게 됐다. ‘수단’으로 삼았던 클래식 음악이 지닌 의외의 감동에 그는 곧 빠져들었고, 정진하게 되었다. 책을 감수한 피아니스트 손열음은 현재 히사이시 조가 “수많은 오케스트라를 객원 지휘하는 입체적 음악가”의 경지에 있다고 평했다.

히사이시 조의 이력은 평생 ‘좋은 음악은 무엇인가?’라고 자문해온 결과이다. 그가 찾은 답은 대중. ‘많은 이들이 오랫동안 즐기는 음악’이 좋은 음악이라고 말한다. 반대로 대중을 개의치 않고 자기만의 세계에 침잠하는 음악에는 박한 평가를 내린다. 음악 외의 분야에도 그는 이 기준을 적용한다. 예컨대 ‘유토리 교육’은 학생을, 집단자위권 발동은 국가를 “자신의 껍질 속에 틀어박혀” 있게 만든다고 본다.

책에는 “듣는 사람이 없으면 작곡은 의미 없다”라는 서술이 여러 차례 반복된다. 순수예술이라고 불리는 분야에서도 이런 고민을 하는데 하물며 매스미디어는 어떠랴. 자꾸 “듣는” 대신 “읽는”이라고, “작곡” 대신 “기사”라고 읽혔다. 올해 나온 책 중 가장 가볍게 집어 들고 무겁게 놓은 책이다.

이상원 기자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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