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기다린 듯 '위안부 판결' 공세..한·일 외교 핵심으로 또 부상
한국 정부 '주권면제 불인정' 법원 판결 지지·배척 입장 못 내
[경향신문]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다시 한·일 핵심 현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이 지난 8일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승소판결을 내린 것에 대한 후폭풍이다.
서울중앙지법의 판결은 일본 정부의 항소 포기에 따라 판결일로부터 2주가 지난 23일 0시를 기해 최종 확정됐다. 일본은 판결 확정 직후 기다렸다는 듯이 정부 차원의 공세를 펴기 시작했다.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외무상은 23일 정부 담화를 발표하고 “이 판결은 국제법과 양국 간 합의에 분명히 위배되는 것으로 매우 유감스럽고 절대 용납할 수 없다”며 “일본은 다시 한국 정부가 국제법 위반 상황을 시정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즉시 취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일본은 국제관습법상의 ‘국가면제’(주권면제) 원칙에 따라 소송이 성립되지 않는다며 처음부터 재판에 불응했다. 항소 포기도 이 같은 태도의 연장선상이다. 일본의 공세에 대한 정부의 반응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언급한 대로 ‘곤혹스러움’이 묻어난다. 외교부는 이날 모테기 외무상의 담화에 대한 ‘입장문’을 내고 “정부는 위안부 피해자들과 상의하며 원만한 해결을 위해 끝까지 노력할 것이지만 일본 측 또한 스스로 표명했던 책임 통감과 사죄·반성의 정신에 입각해 피해자들의 명예·존엄 회복과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한 진정한 노력을 보여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 입장은 핵심 쟁점을 비켜간 것이다. 일본은 ‘주권면제’를 한국 법원이 인정하지 않은 점을 공격하고 있는데, 한국 정부는 이에 대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국제적으로 대세인 주권면제를 인정하지 않은 법원의 판결을 지지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법원의 판결을 배척할 수도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는 공식 입장 발표 이후 기자들과 만나 “국가면제 이론은 항구적이거나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국제질서와 함께 지속적으로 변화돼 가고 있다”며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국가면제를 제한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부가 입장문에 이를 포함시키지 않고 비실명 당국자 설명으로 대신한 것은 이 같은 입장이 공개적·공식적으로 기록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가 판결에 따른 손해배상을 이행하지 않을 것이 명백한 만큼 다음 수순은 국내에 있는 일본 정부 자산을 압류하는 것이다. 하지만 국내에 압류할 만한 일본 정부 자산이 있는지 불투명한 데다 있더라도 압류 실행 결정을 내리기는 어렵다. 일본은 향후 판결 확정에 대한 공세 수위를 높이면서 ‘한국은 국제법을 지키지 않는 나라’라는 점을 국제사회에 지속적으로 부각할 것으로 예상된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sim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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