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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동연 회고록] 싸워줄 사람 필요했던 盧 "여당 미워서 유시민 장관시켰다"

염동연 입력 2021. 01. 24. 21:30 수정 2021. 01. 25. 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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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과 문재인 / 참여정부 창업공신 염동연 회고록] [3] 盧와 호남, 그리고 유시민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7년 2월 청와대에서 열린 ‘일과 가정이 함께하는 기업환경 조성보고회’에서 유시민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 등과 함께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잘 알려진 것처럼 노무현은 대통령직을 수행하면서 언행이 자주 문제가 됐다. 국민들에게 곧잘 “가볍다”는 얘기를 듣는가 하면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조차 “왜 저런 말을 하지?”라는 의구심을 자아내게 했다.

특히 청와대에서 광주 지역 일간지 편집국장들을 초청해 오찬을 하는 자리에서 “이회창이 싫어서 찍었지, 내가 좋아서 찍었어요?”라고 말한 것은 호남 사람들에게 큰 상처를 줬다. 아울러 부산파들이 청와대를 장악하면서 공직 인사에서 호남 출신 공무원들에게 불이익이 가기 시작했다. 청와대 내부는 물론이고 정부 부처 고위 공직자 인사에서 호남 출신들이 탈락의 고배를 마시고 급기야 공기업 임원직까지 호남 사람이 배제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진보 세력의 핵심 지지 기반은 호남이었다. 국회의원 후보는 호남 선거구나 수도권 선거구에서 당선을 기대한다면 우선 호남 사람들과 호남 출향민들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 역대로 그것이 현실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하지만 노 대통령의 가벼운 언사와 부산파의 인사 전횡은 결국 호남 지역과 수도권 호남 사람들에게 배신감을 느끼게 했고 그들이 노무현과 참여정부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는 계기가 됐다. 호남과 수도권 지역구에서 당선된 국회의원들은 날이 갈수록 자신의 지지 기반이 이탈하고 있다는 것을 체감하고 불안감에 휩싸였다. 의원총회가 열리면 여당(열린우리당)의 국회의원임에도 노 대통령을 성토하는 분위기가 점차 생겨났다.

나는 청와대에 들어가 대통령에게 “진정하시고 그런 가벼운 표현은 쓰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라며 언동을 좀 자제해 줄 것을 당부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이런 상황이 벌어질 때마다 자신을 위해 대신 싸워주길 바랐다. 대통령 대신 싸워주는 ‘공격형'인 유시민 같은 스타일을 좋아했던 것이다.

그러던 가운데 노 대통령이 복지부 장관직에 유시민을 내정했다. 그 직후 청와대에 들어갔더니 노 대통령은 묻지도 않았는데 내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당이 미워서 시켰어요!”

“뭘 말이에요?”

“유시민 장관 시킨 것 말입니다!”

그런데 노 대통령 말씀이 내 귀엔 마치 ‘내가 당신 미워서 시켰습니다’라는 얘기로 들렸다. ‘유시민은 막 싸우지 않소. 도대체 염 총장님은 뭐 하세요?’라고 면박하는 듯했다. 비록 국회의원이 된 당신의 최측근들은 문제의 의원들과 스킨십을 쌓으면서 전략적으로 설득해왔지만 노 대통령은 그런 측근들보다도 나름의 논리로 무장해 해당 의원들 면전에서 반박하는 유시민 같은 사람에게 더 마음이 갔던 것이다.

17대 국회의원 가운데 소위 ‘노무현 사람’이라는 캠프 출신은 나하고 서갑원, 이광재, 백원우 정도가 전부였다. 나와 이 세 사람은 의원총회에 직접 나서서 해당 의원의 면전에서 싸우기보다는 의원총회가 끝나는 대로 해당 의원을 만나 “집권 여당 의원으로서 할 도리가 아니다”라고 설득하며 다음에는 그런 성토를 못 하도록 조심조심 달래곤 했다. 하지만 이는 노 대통령의 바람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어느 날은 청와대에 들어가니 노 대통령이 무척 서운해하면서 이렇게 얘기하기도 했었다.

“아니, 염 총장님! 나를 위해 당내에서 싸워주지도 않고 그럴 수 있습니까?”

“대통령님 말씀대로 나처럼 (당신을 위해) 많이 싸운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고 하세요!”

“…많이 싸웠다고요?”

“저는 대통령님을 위해 저 자신과 엄청나게 싸운 사람입니다. 당장 그 사람 면전에서 소리 지르며 이놈 저놈 하면서 싸우고 싶지만 ‘그게 과연 대통령님과 이 정권을 위한 일일까’ 고민하고 ‘이건 아니다.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해서 대통령께 서운한 마음을 가진 사람과 함께 식사하고 소주 한잔 하면서 대통령님을 이해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노 대통령은 이런 얘기도 했다.

“호남 사람들이 도대체 날 싫어하는 이유가 뭡니까? ‘나 좋아서 찍었소, 이회창 싫어서 찍었지' 그런 말 했다고요? 아니 그런 얘기를 보도된 대로만 믿고 서운하게 생각하면 되겠어요? 정말 그 말의 참뜻을 이해 못 한단 말입니까? 그 기사는 내 얘기의 본말을 다 싹둑 자르고 썼잖아요?”

“한정된 지면에, 영상에 대통령님 말씀을 어찌 전부 하나도 남김없이 다 쓸 수 있겠습니까? 아무래도 언론은, 기자들은, 기사를 쓰면서 자극적인 부분만 추려 쓰는 것 아닌가요? 잘 아시잖습니까? 자제하셔야죠. 언행에 늘 신경을 쓰셔야 합니다.”

“아니, 염 총장님도 날 이해 못 한단 말이오? 지금....”

노 대통령은 불편한 심기를 결코 감추지 않았고, 다소 격앙된 목소리였다.

“저 솔직히 이해 못 한 것은 아니지만 그건 대통령님께서 실수했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그의 가벼운 언사를 둘러싸고, 노무현과 나는 이처럼 날이 선 대화를 주고받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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