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한국일보

[삶과 문화] 정인이, 그리고 '괴물위탁모'의 기억

입력 2021. 01. 24.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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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새벽의 응급실이었다.

최선의 처치를 받은 아이는 응급실을 떠났다.

죽음에 이르러서야 아이는 응급실에 도착했고 수술 후 며칠 뒤 사망했다.

같은 응급실에서 사망한 두 사건은 많은 것이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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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2018년 10월, 새벽의 응급실이었다. 한눈에도 상태가 좋지 않은 18개월 아이와 엄마가 왔다. 우리는 급박하게 아이를 중환 구역에 눕히고 상태를 파악했다. 아이가 의식이 없었고 자극에도 반응이 없었다. 경기가 멈추지 않아 왔다고 했다. 게다가 탈수가 심해 온몸이 삐쩍 말라 있었다.

어머니가 털어놓는 사연은 딱했다. 남편과 이혼하고 경제적 부담을 짊어진 채 다른 세 아이까지 양육한다고 했다. 아이를 제대로 돌볼 수 없는 환경으로 보였다. 장염이 너무 심한 아이는 잘 먹지 못했고 설사를 많이 했으며 힘이 없어 넘어졌던 것 같다고 했다. 엄마는 아이가 걱정되었는지 큰 소리로 울고 있었다.

일단 탈수를 교정하고 각종 검사를 시행했다. 머리를 촬영한 CT에서 후두부에 미세한 골절과 뇌출혈이 발견되었다. 내과적인 문제도 심했지만 두개내압이 높아 감압술을 받아야 했다. 대단히 위중하고 사망 가능성이 높은 아이였다. 신경외과 및 소아과와 치료를 진행하며 수술에 대해 상의했다. 마침 병원에 중환자실이 없었다. 수술이 즉시 가능한 병원을 알아봐서 다행히 전원을 보낼 수 있었다. 최선의 처치를 받은 아이는 응급실을 떠났다.

급박하게 진행된 일이었다. 그들이 떠나자 당장 아이의 죽음을 막았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하지만 새벽 내내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고단한 삶과 구구절절한 사연이 있음에도 아이를 아동학대로 간주할 수 있냐는 의문이었다. 하지만 고민은 길지 않았다. 원칙상 방임 또한 학대였다. 미리 병원에 찾아오지 않았던 것 또한 의료 방임이었다. 모든 것을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했다. 나는 미심쩍은 기분이었지만 아이의 어머니를 아동학대로 신고했다.

이 신고가 일명 '괴물 위탁모' 사건의 시작이었다. 일단 그녀는 어머니가 아니었다. 인터넷에서 모집한 아이를 맡아주는 사설 위탁모였다. 아이 또한 실제 15개월이었고 접수된 건 다른 아이의 신원이었다. 조사를 시작하자 스마트폰에서 학대의 증거가 나왔다. 6개월 된 다른 아이를 뜨거운 물에 넣어 질식시키는 영상이었다. 내가 진료했던 아이는 더 끔찍했다. 구타는 물론이었고 양육비가 밀리자 기저귀값이 아까워 식사를 제대로 주지 않았다. 탈수가 심해 경기를 했음에도 하루가 넘도록 아이는 방치되었다. 죽음에 이르러서야 아이는 응급실에 도착했고 수술 후 며칠 뒤 사망했다.

그전에도 아이에게 아동학대 신고가 몇 차례나 있었다. 집에서 아이 우는 소리가 너무 많이 들린다는 것 등이었다. 하지만 수사는 항상 종결되었고 그때마다 아이들은 방치되었다. 죄 없는 아이가 죽어서야 비로소 학대는 멈추었고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방임 또한 학대라는 원칙을 적용하지 않았으면 처음부터 밝혀지지 않을 수 있었을 사건이었다. 새벽의 한 고민이 앞으로도 학대받을 아이를 구했지만, 의심해야 가까스로 밝혀지는 진실 앞에 참혹한 마음이었다. 그리고 가해자는 '살인'이 아닌 '아동학대치사'로 15년형을 받았다.

그 후로 정확히 2년 뒤, 양부모 밑에서 자라던 정인양이 사망했다. 같은 응급실에서 사망한 두 사건은 많은 것이 닮았다. 죄 없는 아이에게 가해진 폭력과 무마된 신고, 공권력의 방관과 사망에 이르러서야 진상이 밝혀지게 되는 모든 게 말이다. 그 사이 우리는 얼마나 달라져 있었는가. 이 사회는 언제까지 아이들을 죽일 것인가.

남궁인 응급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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