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휘칼럼] 바이든號 출범과 미국의 운명

남상훈 2021. 1. 24.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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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트럼프 실책 해결 등
새 대통령 가야할 길 '지뢰밭'
경기 부양·통합의 정치 급선무
새로운 '미국의 시간' 시험대

조 바이든 제46대 미국 대통령이 취임했다. 지난 4년간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미국을 뒤로하고, 바이든 선장이 이끄는 미국이 새로운 출항의 길을 나섰다. 그런데 새 대통령이 디디고 서있는 땅은 그야말로 곳곳이 지뢰밭이다. 한쪽으로는 코로나19 누적 사망자가 20만명을 넘어선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생명 위기가 놓여있고, 그 길을 가로지른 또 다른 쪽에는 2차 대전 이후 비교적 성공적으로 운영되던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각종 치명상을 입으면서 잔뜩 움츠린 국가들이 각자도생의 생존전략을 선택하고 있다. 또 그 위로는 전임자가 너무도 쉽게 까먹어 어떻게 추슬러야 할지 모를 지경인 미국의 국제적 위신이 보인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가시밭길 위에 재처럼 뿌려진, 인종·지역·세대·빈부 등 모든 기준에서 갈기갈기 흩어진 미국의 사회분열이 자리 잡고 있다. ‘큐어논’, ‘스리 퍼센터스’ 등으로 일컫는 일부 극우 분열주의자들 탓으로 돌리기에는, 특히 마지막 지뢰밭의 해결이 너무도 시급해 보인다.

서론이 너무 어두웠다. 그래도 조 바이든이 누구인가? 만 29세의 나이에 미국 역사상 다섯 번째로 최연소 상원의원 당선 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무려 36년 동안 상원의원으로서 또 20년이 넘게 상원 외교위원장을 역임하면서 미국 외교의 큰 거목으로 존중받았다. 오바마 행정부에서는 부통령으로서는 드물게 외교 이슈에 거의 전권을 가지고 관여한 자타가 인정하는 세계 최고의 외교전문가이다. 작년 11월 3일 선거일 직후부터 ‘외교의 힘’ ‘파리기후협약 복귀’ ‘미국이 돌아왔다’ 등을 알리며 본인의 전문 분야에서 차곡차곡 정치적 에너지를 비축하는 기민함도 보이고 있다. ‘미국 구제 플랜(America Rescue Plan)’이라는 이름하에 추가로 우리 돈 약 2000조원을 투여할 계획에서 알 수 있듯이, 미국인의 마음을 추스르는 일이 급선무임을 잘 알고 있고, 그러한 일들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미국의 전통적인 외교 역량과 국내 정치 사이의 간격을 좁혀 정치력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이 돋보이는 순간이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 국제정치학
국내외 많은 미국 전문가들은 이렇게 얘기하고 있다. “트럼프가 떠난 자리를 트럼피즘이 메우고 있다.” 단적인 예를 하나 살펴보자. 대선 직전이던 작년 10월 26일 미국 상원은 에이미 코니 베럿 대법관 지명자 안건을 통과시킨 바 있는데, 당시 투표 결과는 ‘52대 48’이었다. 상원을 차지하고 있던 민주당 소속 상원의원 47명은 전원 반대표를 던진 걸로 알려졌는데, 1869년 지금과 같은 연방대법관 승인 절차가 도입된 이래로, 야당으로부터 단 한 표도 받지 못한 최초의 대법관 인준으로 기록되었다. 미국 정치의 모든 어젠다가 정쟁(政爭)의 대상이 되었고, 타협과 조정의 미덕이 자리를 잡기 어려운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올 한 해 동안 미국에서는 천문학적인 돈이 풀릴 예정인데, 이렇게 풀린 돈이 인플레로 직결되지 않고 미국 경제의 활력소가 될 수 있을지, 부의 불평등이 좀처럼 해소되지 않는 미국의 시스템을 고려할 때 버거운 과제가 아닐 수 없다. 경기 부양책 추진의 결과로 부의 불평등만 더 악화된다면 바이든호(號)는 그야말로 감당하기 힘든 암초에 직면할 수도 있을 것이다.

1932년 11월 8일에 당선된 루스벨트 대통령은 다음 해 3월 4일로 예정된 취임식까지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악몽 같았던 대공황으로부터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었던 루스벨트는 이 시간 동안 많은 전문가들을 만나면서 구체적이고 콘텐츠 풍부한 계획들을 세우게 되는데, 그 유명한 ‘100일의 구상(the First 100 Days)’이 생겨난 배경이다. 루스벨트는 취임 이후 대통령 취임일을 1월로 바꿔버린다. 역시 악몽 같은 선거 후유증을 겪은 바이든 대통령도 100일까지는 아니더라도 인수위 기간이 유난히 길게 느껴졌을 것이다. 풍부한 경험을 갖춘 노련한 외교 대통령 바이든, 그가 이제 새로운 ‘미국의 시간’이라는 커다란 문(門)을 막 열어젖히려고 한다. 최근 4년 동안 매우 낯설게 여겨지던 미국의 운명이 다시금 시험대에 올라서는 순간이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 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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