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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년 시장통 찬모들에게 배운 '통영의 맛' 알리고 싶어요"

김경애 입력 2021. 01. 25. 00:46 수정 2021. 02. 01. 0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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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짬] 요리사 겸 사진가 이상희씨

통영음식문화연구소를 운영중인 이상희씨는 “미각에 앞서 손재주를 알아봐주고 잘 가르쳐 준 어르신들 덕분에 요리를 하게 됐다”고 했다. 강구안길에 있는 연구소의 벽에 그가 수집해온 전통 소반이 가득 걸려있다. 통영음식문화연구소 제공

경남 통영에서 40년 가까이 음식 관련 일을 하며 통영 음식에 대한 책을 두 권째 펴낸 이가 있다. 2013년 첫번째 책 <통영은 맛있다>(강제윤 지음·생각을담는집 펴냄)에서는 사진가로 이름을 올렸다. 아름다운 한려수도의 비경을 곁들인 그의 사진은 바다에서 갓 건져올린 싱싱한 해산물로 빚어내는 통영 음식의 풍성한 맛을 포착해냈다는 호평을 받았다. 최근 나온 <통영백미>(남해의봄날 펴냄)는 글·사진 모두 도맡아 정리해낸 단독 에세이집이다. ‘기다림 속에 찾아오는 사계절 바다의 맛’이란 부제처럼 월별로 달력처럼 통영에서 나는 제철 음식과 식재료 100여 가지를 소개해놓았다.

요리사 겸 사진작가인 이상희(57)씨가 그 주인공이다. 책만 보면 당연히 통영 토박이이자 대대로 음식을 해온 집안 출신일 것이라는 ‘추측성 예단’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는 충청도 조치원(세종시) 출신이고 음식은 서울에서 우연히 배우기 시작했단다.

지난 16일 통영의 동피랑에서 그를 만나 ‘통영 음식문화 전문가’가 된 사연을 들어봤다.

지역 토속음식 모은 ‘통영백미’ 펴내
손수 요리하고 사진 찍은 에세이집
1984년 ‘충무’ 찾아와 결혼하며 정착
마지막 요정문화 체험한 이력도 독특

암치료하며 자연식의 가치 깨달아
“고향은 충청도지만 이젠 통영사람”

<통영백미>에는 남해연안에서 잡히는 풍부한 해산물과 인근 섬에서 사시사철 나는 갖가지 나물들을 재료로 만드는 통영 토속음식과 그에 얽힌 이야기가 월별로 일목요연하게 담겨 있다. 남해의봄날 제공

“1984년께 ‘충무’로 불릴 때 처음 왔으니까 37년째네요. 음식을 배우면서 전국을 돌아다니던 때였죠. 어느날 낯선 도시에서 새벽 기차를 타려고 승차장에 서 있는데 ‘충무, 충무’ 소리가 들렸어요. 싣고 온 조간신문을 전해주려고 충무 지역 신문보급소 총무를 부르는 소리였어요. 그때 충무에 가봐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죠. 그뒤 25살 때 토박이인 아내를 만나 내내 살고 있으니 이제는 통영 사람이죠.”

하지만 그의 요리 이력은 중학교 3학년 때인 16살부터 시작된다. “방과후나 주말이면 친구들과 훌쩍 기차를 타고 서울이며 부산이며 종종 구경을 다녔어요. 그때는 통행금지 시절이어서 몰래 문을 여는 심야식당에서 심부름을 하면서 밤을 지새우곤 했죠. 한번은 남대문 옆 건널목에서 서울역 쪽에 있던 교자집에서 ‘알바’를 했는데, 주인이 만두 빚는 솜씨가 좋다며 붙들었어요. 나중엔 영등포에 분점을 내서 주방을 맡기기도 했어요.”

그렇게 자꾸만 ‘가출’을 하던 아이가 요리에 재능을 보이자, 조치원시장에서 ‘마켓’을 운영하던 외가에서 시장 안에 만두집을 차려줬다. “불과 18살 때인데다 이미 도시 바람이 들었으니 작은 식당에 진득하게 붙어있을 수가 없었어요. 다시 서울로 와서 그무렵 막바지 번성했던 ‘요정’에 들어갔어요. 몇몇이 어울려 전국을 몇달씩 돌아다니기도 했어요. 대구, 구미, 경주 등을 거쳐 내려왔다가 결혼까지 하게 되면서 통영에 정착을 하게 됐죠.”

그가 처음부터 통영 음식의 매력에 빠진 것은 아니었다. “1990년무렵 신시가지가 개발되자 첫딸 아이 이름을 따서 ‘온이분식’을 차렸는데 기대 이상으로 잘됐어요. 아내가 애를 등에 업고 배달까지 해야 했으니까요. 너무 힘들어 횟집으로 업종을 바꿨죠. 2002년께 최고급 한정식집(서송정)을 차렸어요. 그때 통영 시장통에서 오래전부터 식당을 해온 ‘찬모 할머니’들한테 많이 배웠어요. 그런데 너무 확장했던 게 화근이었죠.”

운영난으로 수년간 고전했던 그는 겨우 안정을 찾을 무렵 더 큰 시련을 맞았다. 2007년 위암이 발병했던 것이다. 설상가상, 호사다마라고들 했지만 전화위복이 되기도 했다. “이듬해 미륵도의 외진 해변에 작은 한옥(휴석재)을 지어 은거하면서 항암 치료와 요양을 했어요. 차실을 꾸미고 수행하듯 자연식만 했더니 암이 사라져 5년 만에 완치판정을 받았죠. 찬모들이 만들던 토속 음식을 기록해놓고자 시작했던 사진 찍기에도 몰두해 큰 위안이 됐어요. 그래서 2012년엔 사진전도 열었죠.”

자연건강식의 가치를 온몸으로 깨달은 그는 지역 수협의 제안을 받아 특산물인 멍게 요리를 개발해 전문식당을 창업했다. “사실 미각은 저보다 아내가 뛰어나요. 대신 후각과 손끝의 감각은 내쪽이 남다른 편이고요. 그래서 메뉴를 개발하면 아내의 입맛을 반드시 통과한 다음에 공개하죠.”

1월의 통영백미로 꼽힌 ‘방풍탕평채’는 소매물도 특산인 방풍나물과 털게와 조개의 감칠맛이 어우러진 음식이다. 남해의봄날 제공
<통영백미>에는 1월의 음식 ‘방풍탕평채’를 1950년대 통제사 음식의 대가인 제옥례 선생의 사랑채에서 유치환, 윤이상, 전혁림, 김상옥, 김춘수 등 예술인들이 즐겨 먹었다는 일화와 함께 소개해놓았다. 남해의봄날 제공

요양 시절은 그에게 사진가이자 저자의 이름을 안겨준 계기이기도 했다. “휴석재를 개방해서 오가는 이들에게 차를 대접하곤 했더니 입소문이 났어요. 전국적으로 이름난 잡지에 명소를 기고중이던 조용헌 선생도 찾아와 알게 됐죠. 2010년께 조 선생이 동피랑 입주작가로 와 있던 강제윤 시인(섬연구소 소장)을 소개해줬어요.”

마침 비슷한 연배인 그와 강 시인은 금세 술친구가 됐고, 무엇보다 사계절 안줏거리가 넘치는 ‘통영 음식의 매력’에 공감했다. 그렇게 의기투합해서 <통영은 맛있다>를 함께 냈고, 그 덕분에 통영음식 전문가로 이름을 얻었다. 그는 통영음식문화연구소 대표로 2019통영문화재야행 만찬, 유네스코국제심포지엄 만찬 진행을 맡았고 <한국기행> 등 여러 음식 전문 프로그램에 자문위원 활동도 하고 있다. 지역 방송사에서 통영 특산 요리를 소개해 달라는 출연 제안도 들어와 <창원한국방송>(KBS)의 프로그램에서 1년 남짓 격주로 ‘밥상의 전설’을 소개했다.

“통영음식을 소개할 기회가 점차 많아지니 자연스럽게 더 공부를 하게 됐고 제대로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책을 내게 됐어요. 그동안 모은 자료와 사진들 중에서 오로지 통영에서만 맛볼 수 있는 토박이 음식들만 뽑았어요.”

그는 “내가 만든 음식을 여럿이 나누어 먹으며 맛있다고들 할 때 가장 즐겁다”면서 앞으로도 계속 통영 서민들이 지켜온 ‘토속의 맛’을 발굴해 널리 알리는 작업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통영/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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