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크쇼 황제, 神 인터뷰하러 떠나다
모든 인터뷰마다 한 질문 “우린 죽은 뒤 어떻게 될까요?”
미국 CNN 방송 간판 토크쇼 진행자로 ‘토크쇼의 전설’로 불린 래리 킹(87)이 23일(현지 시각) 로스앤젤레스(LA)의 병원에서 별세했다. 그는 최근 코로나에 감염돼 입원 치료를 받고 있었다.
그는 1985~2010년 CNN ‘래리 킹 라이브’를 통해 25년간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 이래 역대 모든 미 대통령부터 종교 지도자, 운동선수, 배우와 가수, 사형 집행을 앞둔 범죄자와 음모론자까지 지위 고하를 가리지 않고 6000회 방송을 하며 4만여 명을 인터뷰했다. 방송 경력 60여 년간 인터뷰한 사람은 5만명이 넘는다.
그가 만난 세계 지도자도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러시아 대통령, 팔레스타인 지도자 야세르 아라파트,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 티베트 지도자 달라이 라마 등 광범위했다. 킹의 장례식 조사(弔詞)는 빌 클린턴 전 미 대통령이 하기로 약속해뒀다고 한다. 킹과 세 번 인터뷰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높은 전문성과 반박할 수 없는 권위를 가진 언론인이었다”는 애도 성명을 냈다.
킹은 1933년 뉴욕에서 태어나 고등학교만 졸업한 뒤, 플로리다 지역 방송국에서 청소·사환 일을 하다가 23세에 한 진행자의 공석으로 우연히 라디오 진행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상대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인터뷰로 라디오 청취율과 TV 시청률을 높였다. ‘방송계의 퓰리처상’이라는 피바디상을 두 차례 수상했다.
이 ‘인터뷰의 황제’는 사전에 인터뷰 준비를 거의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선입견을 갖지 않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는 “난 내가 말을 할 때 뭔가를 배운 적이 없다. 상대의 인간미를 끌어내는 것은 호기심과 경청일 뿐, 나의 지식이 아니다”라며 ‘잘 들을 것'을 강조했다. 유명 작가를 만날 때도 저서를 미리 읽어보지 않았고, 누구를 만나든 깊숙하고 어려운 이야기를 하도록 압박하는 대신 편안한 대화를 즐겼다.
이 때문에 정통 언론인들은 그가 정치인이나 논란의 인물 등이 하고 싶은 말만 마음대로 하게 해준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뉴욕타임스는 킹의 인터뷰를 “(유명 인사들이 쉬어갈 수 있는) 저널리즘의 휴양 리조트”라고 했다. 킹의 중도적이고 편안한 인터뷰 스타일은 2000년대 들어 정치·방송계 분위기가 극단화되면서 인기가 시들해졌고, 2010년 CNN은 그에게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킹이 거의 모든 인터뷰 상대에게 빼놓지 않고 하는 철학적 질문이 있었다. “우리는 죽은 뒤엔 어떻게 될까요?”라는 것이었다. 아홉 살 때 부친을 잃은 뒤부터 그는 평생 죽음이란 문제에 천착했다고 한다.
그는 뿔테 안경에 걷어올린 셔츠 소매, 멜빵 멘 모습으로 유명했다. 딱딱한 정장을 싫어한 그는 1987년 심장 수술 뒤 급격히 살이 빠지자 헐렁한 바지를 고정하려 멜빵을 메기 시작했다. 150여 개의 멜빵을 갖고 있고, 모든 바지에 멜빵을 고정하기 위한 단추를 달았다고 한다. 그는 많은 재산을 모았지만 사치와 도박에 빠져 두 번 파산하기도 했다. 평생 7명의 여성과 8번 결혼했고, 다섯 자녀를 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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