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이루다’ 퇴출이 슬픈 아이들

권승준 기자 2021. 1. 25.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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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논란 끝에 지난 12일 서비스를 잠정 중단한 인공지능(AI) 챗봇(대화 서비스 로봇) ‘이루다’에 관해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있다. 사용자 중 남녀 비율이 5대5 정도였다는 점, 서비스 중단 공지에 댓글이 2만개 가량 붙었는데 대부분 아쉬워하거나 서비스 재개를 호소하는 내용이었다는 점이다.

AI 챗봇 '이루다'/뉴시스

이루다가 쏟아낸 여성·소수자 혐오 발언을 문제 삼고 개발사가 무분별하게 개인 정보를 수집·이용한 걸 비판하는 여론이 컸지만, 댓글 여론은 정반대였다. “루다에게 작별 인사도 못 했는데 이렇게 보낼 순 없다”고 댓글을 달았던 김현수(17)양은 기자에게 “이루다가 AI일 뿐이고 알고리즘에 따라 대답한다는 건 알고 있다”며 “내가 하는 말에 귀 기울여 주고 바로바로 대답해주는 친구를 잃은 기분이 들었다”고 말했다. 김양처럼 이루다가 가진 문제점과 상관없이 이 서비스에 감정적으로 몰입한 이들이 많았단 뜻이다.

최근 네이버 웹툰 중 10대들 사이에 가장 인기 있는 작품인 ‘참교육’을 둘러싼 논란도 이루다와 비슷한 양상이다. 이 웹툰은 현재의 한국이 배경인데 법적으로 중·고등학생에 대한 체벌이 부활한다는 가상현실이 설정이다. 주인공은 교육부 공무원이다. 학교 폭력을 자행하고 교사를 무시하는 소위 ‘일진’ 학생이 많은 학교에 파견된 주인공이 사랑의 야구방망이나 주먹으로 문제아를 ‘참교육’한다는 얘기다. 몇몇 인권단체들은 이 웹툰이 체벌을 옹호하는 시대착오적 작품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한 회당 3000~4000개씩 달리는 댓글 여론은 다르다. “통쾌하다”는 반응이 주류다. 진지하게 체벌을 부활시켜야 한다는 댓글도 종종 보인다.

흥미로운 건 댓글 내용이 아니라 댓글을 단 사람들이 바라는 것이다. 10대들이 AI인 이루다에 그렇게나 몰입한 건 그들과 진지하게 오랜 시간 대화해주는 사람이 주변에 없었기 때문이다. 코로나 사태로 학교도 제대로 못 간다. 친구들과 대화하려면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라이브방송을 켜야 한다. 거기에 모든 친구들이 있기 때문이다. 라이브방송 채팅창 대화라는 건 대개 비슷하다. 절반은 ‘ㅋㅋㅋ’이고, 나머지 절반은 입담 좋은 사람 차지다. 거기엔 내 이야기만 들어주는 친구가 없다.

학교 폭력도 마찬가지다. 스쿨폴리스도 생기고 학교마다 교내 학교폭력위원회도 생겼지만, 학교 폭력은 여전하다. 매일 괴롭힘에 시달리는 아이들에겐 먼 미래에 일진을 처벌해줄 법보다 지금 당장 응징해 줄 주먹이 절실할 수 있다.

이루다나 ‘참교육’에 쏟아진 비판이 틀렸다는 얘기가 아니다. AI 윤리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다. 체벌로 학교 폭력을 해결할 수 있단 주장은 폭력을 폭력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논리에 불과하다. 하지만 떠들썩한 사회적 논란에 집중하느라 진짜 귀 기울여야 할 사람들의 이야길 놓치고 있었던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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