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The Column] 새 인물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는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2021. 1. 25.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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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쇠하고 안이한 야당
江山 바뀌었는데 서울시장 후보 10년 전 그대로
임시방편 외부 수혈, 끼리끼리 나눠 먹기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식으론 대선도 기대할 수 없어

서울과 부산 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분위기가 점차 고조되어 가는 것 같다. 여론이 출렁이고 있는 부산도 흥미롭지만 역시 정치적 상징성이 큰 서울에서의 선거가 보다 큰 관심 대상이다. 그런데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한 주요 후보들의 면면을 보면서 지난 10년간 한국 정치가 그 자리에 그냥 머물러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서울시청 청사/뉴시스

오세훈은 2006년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였고, 2011년 무리하게 주민 투표를 강행하다 물러나야 했다. 그로 인해 실시된 2011년 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는 나경원이었다. 당시 야권에서는 안철수 바람이 거세게 불었지만 출마하지 않았고 박원순에게 양보했다. 그 뒤 박원순은 민주당과 야권 후보 단일화를 위한 경선을 치렀는데 그때 경쟁자가 박영선이었다. 이처럼 오세훈, 나경원, 안철수, 박영선은 모두 10년 전 이미 서울시장 선거에 나선 바 있지만, 이번 선거에서도 유력한 후보로 여겨지고 있다. 그사이 강산은 바뀌었지만 인물은 의구(依舊)하다.

이처럼 지난 10년간 우리 정치는 닫혀 있었다. 이로 인한 문제는 국민의힘의 경우 더욱 심각하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아무리 높아도 야당에 대한 기대감은 크지 않다. 차기 대선 후보에 대한 여론조사에서 야권 후보 1위는 정치권에 있지도 않은 현역 검찰총장이다. 정권 교체를 갈구하는 이들이 많은 상황에서도 오죽하면 당 밖에서 인물을 찾을까. 지난 10년간 국민의힘은 사람을 키워내지 못한 것이다.

이렇게까지 된 데에는 박근혜 때의 두 차례 잘못된 공천의 영향이 크지만, 그 이후에도 새로운 인물을 키워내려는 노력을 보수 정당은 하지 않았다. 사실 이런 문제점은 정당을 의원들만의 당으로 만들어 버린 이른바 ‘원내정당화’가 시도될 때부터 예견되었다. 당 리더십이 약화되고 의원들은 각자도생만을 궁리하면서 당 전체의 미래는 누구도 고민하지 않았다. 눈앞의 선거만 바라보고 그때그때 내부적으로 공천을 ‘나눠 먹거나’ 일시적인 방편으로 외부 사람들을 데려다 쓰는 선거가 계속되었다.

이런 경향은 민주당보다 절박함이 덜하고 안이했던 국민의힘에서 두드러졌고, 정치적으로 바람 탈 일 없는 TK 지역 의원들이 다수가 되면서 더욱 강화되었다. 2000년 총선에서 ‘젊은 피 수혈’을 외친 김대중이나 2004년 열린우리당 돌풍을 주도한 노무현처럼 정치적 미래를 위한 투자를 보수 정당은 제대로 하지 않았다. 이번 보궐선거를 앞둔 국민의힘을 보면서도 이 정당이 ‘늙었다’는 걸 실감했다. 오세훈이 처음 시장에 출마한 2006년 그의 나이는 40대 중반이었다. 당시의 한나라당에 비해서도 지금 국민의힘은 노쇠했고 그때만큼의 젊은 후보를 발굴해 내려는 노력도 하지 않는다.

이번 보궐선거도 마찬가지지만, 새로운 인물을 만들어내려면 그들이 부상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2002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당시 분위기는 ‘어차피 대통령은 이회창’이었다. 그러나 새천년민주당은 국민 참여 경선이라는 이벤트를 고안했고, 노무현이라는 새 얼굴을 ‘스타’로 만들어냈다. 새천년민주당의 재집권은 새로운 인물들이 자신의 매력과 정치력을 대중에게 내보일 수 있는 기회를 적절하게 제공한 결과였다.

이번에 국민의힘은 경선 방식으로 100% 여론조사를 채택했다. 그동안 익히 보아온 대로, 여론조사는 지명도나 유명세에 크게 영향받는다. 새 얼굴보다는 이미 알려져 있는 인물에게 훨씬 유리한 방식이다. 최종 선정 과정까지 어떤 절차를 밟든지 이 방식하에서는 새로운 인물들이 자신의 역량과 비전을 대중에게 각인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대로라면 ‘아랫돌 뽑아 윗돌 고이는’ 형태로 경선이 마무리될 공산이 크다.

정치의 세계에서 중요하지 않은 선거가 어디 있을까. 게다가 눈앞으로 다가온 보궐선거는 그동안 연전연패해 온 국민의힘으로서는 모처럼 붙어볼 만한 싸움이다. 그렇다고 해도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방식으로는 미래를 도모할 수 없다. 보궐선거가 끝나면 곧바로 대선 국면으로 접어들 것이다.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이들에 더해 익히 알려진 기존의 몇몇 인사들이 참여하는, 딱히 감동을 느낄 수 없는 방식으로, 당 대선 후보 경쟁이 진행될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아무리 싫어도 그게 국민의힘을 지지해야 할 이유는 아니다. 스스로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국민의힘의 정치적 미래는 불투명하다. 새로운 인물은 하루아침에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다. 오늘에 매몰되어 미래를 향한 정치적 상상력이 사라진 국민의힘이 한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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