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리재에서] 늦어도 너무 늦었다

정은주 입력 2021. 1. 25.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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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48호 표지이야기 '코로나19 낙인 이후 이태원 르포' 기사와 함께 실린 자영업 지원 해외 사례 소개 기사를 교열기자가 읽다가 물었습니다.

'(캐나다 정부의 임대료 지원을 받으려면 자영업자의) 연간 총수입이 2천만캐나다달러(약 174억원)보다 적어야 한다'는 부분을 보고는 캐나다 정부가 임대료의 50%를 지원하는 대상이 넓어서 확인을 요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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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재에서]

한겨레21 1348호

“이 수치가 맞나요?”

제1348호 표지이야기 ‘코로나19 낙인 이후 이태원 르포’ 기사와 함께 실린 자영업 지원 해외 사례 소개 기사를 교열기자가 읽다가 물었습니다. ‘(캐나다 정부의 임대료 지원을 받으려면 자영업자의) 연간 총수입이 2천만캐나다달러(약 174억원)보다 적어야 한다’는 부분을 보고는 캐나다 정부가 임대료의 50%를 지원하는 대상이 넓어서 확인을 요청한 것입니다.

국회 입법조사처의 ‘코로나19 임대료 정책 해외 사례’ 보고서를 보면, 놀랄 만한 부분이 더 많이 나옵니다. 우리나라는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자영업자의 손실을 보상하기 위한 정책을 이제 막 국회에서 논의하기 시작했지만, 유럽·북미 국가들은 2020년 3월부터 관련 법률을 제정했습니다. 예컨대 독일은 매출이 감소한 기업과 자영업자에게 임대료와 인건비 같은 고정운영비의 최대 90%까지 지원하고, 스위스는 자영업자의 소득 손실 80%까지 보상합니다. 독일(9.6%), 캐나다(8.2%) 등 주요 선진국의 자영업자 비율이 우리나라(24.6%)의 절반이라서 자영업자 피해 지원책을 상대적으로 과감하게 펼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도 정부의 추진력이 눈에 띕니다. 충분하지는 않지만 봉쇄 조처에도 유럽·북미의 자영업자들이 생존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반면 임대료 지원도, 소득 보상도 없는 우리나라 자영업자들은 어떨까요? 서울 이태원 거리에서 만난 상인들은 고통 속에 휘청이며 하루하루를 견뎌내고 있었습니다. 2020년 5월 이태원 클럽 방문자가 코로나19 확진자로 확인되면서 ‘이태원발 코로나19’라는 낙인이 씌워졌습니다. 이후 클럽 등 유흥업종 영업정지 등 ‘보상 없는 기본권 제한’이 이어졌지만 그들은 숨죽이며 코로나19 종식을 기다렸습니다.

그렇게 보낸 1년, 막다른 골목에 몰린 이들부터 하나둘 쓰러집니다. 2019년 4분기 19.9%이던 이태원1동 중대형 상가 공실률은 2020년 2분기 29.6%로 올랐고, 2020년 3분기 이태원 관광특구 주점들 추정 매출액은 한 해 전보다 66.5% 떨어졌습니다. 2021년 1월9일 이태원 상인들은 기자회견을 열어 더는 버티기 어렵다고, 방역 지침을 합리적으로 조정해달라고 호소했습니다. 그리고 밤 9시로 영업을 제한하는 것이 합리적인지 묻습니다. “밤 9시에 사람들이 몰려나오는 걸 보면서 이게 더 위험하겠다고 생각했어요.”(이태원 폐업 식당 업주 배상국씨) “1년을 지냈는데도 초기 방역 방식이 업그레이드되지 못한 것 같아요.”(술집 ‘화합’ 운영하는 DJ코난)

구체적 해법도 말합니다. “코로나 확산에도 불구하고 코로나 덕분에 돈 번 기업이 있으면 세금이 들어오잖아요. 지금 걷히는 세금은 코로나 방역에 희생한 사람들을 위해 써야 하는 거 아닌가요?”(오시난 ‘케르반 레스토랑’ 회장) 미래도 걱정합니다. “이태원 빈 가게가 채워질지도 모르죠. 다만 힘든 시기이니 어느 정도 자본이 있는 사람만 들어올 수 있을 것이고, 그럼 상권은 객단가가 높은 술집이나 큰 자본을 가진 대기업 중심으로 꾸려지지 않을까요.”(배상국씨)

자영업 지원 대책 마련은 더디기만 합니다. 여야 국회의원들이 이제서야 자영업자 손실액을 보상하거나 임대료를 감면하는 입법안을 내놓았는데 기획재정부는 난색을 표했습니다.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은 1월20일 “손실 보상을 법제화한 나라는 찾기 어렵다”며 “(해외에서도) 일반적인 지원 원칙을 가지고 프로그램을 적기에 마련해 지원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나라 정책 사례와 비교해보면 우리나라의 지원책은 늦어도 너무 늦었습니다. 임대료를 보증금에서 깎으며 “너무 힘들게, 힘들게 버티는” 자영업자들에게 남은 시간이 없습니다. 적기는 지금입니다.

정은주 편집장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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