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일의 입] '나라 곳간'이 '네 집 곶감'이냐

김광일 논설위원 2021. 1. 25.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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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 물리는 ‘삼각 패싸움’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2021년도 한국판 삼국지연의를 읽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런 광경이 요즘 펼쳐지고 있다. 바로 이낙연 민주당 대표, 정세균 총리, 이재명 경기지사 얘기다. 여권의 차기 대선 주자들이면서 동시에 지금 당장 문재인 정권의 나라 살림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코로나 피해에 대해 경쟁적으로 해법을 제시하고 있는데, 그 규모가 너무 크고 방법도 급조된 것 같아 나랏돈을 마치 자기 호주머니 돈처럼 말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차기 대선과 올봄 선거를 노린 포퓰리즘이 정말 가관이라는 말도 나온다. 정부 재정을 마치 자기 집 벽장에 들어 있는 곶감 빼먹듯 하려는 것에 대한 지적이다. 그래서 오늘 제목을 “나라 곳간이 네 집 곶감이냐”하고 붙여 봤다.

먼저 이낙연 대표는 이익공유제를 들고 나왔다. 그는 “당 대표로 있는 동안 빨리 이익공유제의 틀을 만들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이 대표는 관련법 법제화에 시동을 걸고 있다. 정세균 총리는 자영업자를 위한 손실보상제에 공을 들이고 있다. 최대 규모로 잡았을 때 월 24조 원가량이 들 정도로 너무 방만한 것 아니냐는 비판과 함께 기재부에서 난색을 보이자 정 총리는 “이 나라가 기재부의 나라냐”하고 질책하기도 했다. 일견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 나라는 기재부의 나라가 아니듯 총리 개인의 나라도 아니다.

반면 이재명 경기지사는 정책 제안을 할 때 ‘기본’이란 두 글자를 붙이는 것에 재미를 들인 것 같다. 이번에도 민주당 내부에서는 부정적인 기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지사는 경기도민 1인당 무조건 10만원씩 재난기본소득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본인의 정책 브랜드를 계속해서 ‘기본 시리즈’로 굳히려는 전략처럼 보인다. 대선 막판에는 모든 국민에게 아파트를 한 채씩 주겠다는 ‘기본주택’ 공약이 구체화되어 나올 수 있다.

이낙연·정세균·이재명, 이 세 사람은 자기들 정책만 내놓는 게 아니라 상대편 정책에 대한 공격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래서 물고 물리는 싸움처럼 보이는 것이다. 이 대표는 이 지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왼쪽 깜빡이 켜고 우회전하는 것이다.” 코로나 때문에 거리 두기를 하고 있는데 돈을 줘서 소비를 하라고 하는 것은 왼쪽 깜빡이 켜고 우회전 하는 것이랑 비슷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비유가 조금 어색하다. 원래 이 표현은 좌파 공약을 했던 정치인이 보수적 정책을 펼 때 하는 얘기다.

아무튼 정 총리도 이 지사를 향해 직격탄을 날린 적이 있다. 바로 “단세포적인 논쟁에서 벗어나라”고 했던 발언이다. 이 지사의 재난지원금 보편적 지급 주장에 대해 “급하니까 막 풀자는 것은 지혜롭지도 공정하지도 않다”고 비판하던 끝에 ‘단세포’라는 말을 해버린 것이다. 평소 유연하고 부드럽게 말해오던 정 총리였기 때문에 단세포 발언에 다들 깜짝 놀랐다. 그러자 ‘이재명 계(系)’로 분류되는 민주당 정성호 의원이 정 총리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천박한 말로 자신의 품격을 떨어뜨리지 않도록 더 조심하자. 돼지 눈에는 돼지만, 부처님 눈에는 부처님만 보인다.” 시청자 여러분께서는 그저 어리둥절하실 것이다. ‘단세포’ 발언과 ‘돼지 눈에는 돼지만’ 발언 중 어느 쪽이 더 품격을 떨어뜨리는 발언인지 아리송할 뿐이다.

여기에 최근엔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도 끼어들었다. “일본은 코로나로 문 닫은 가게에 일정 기간 월 300만원을 지급한다는 보도를 봤다. 우리도 이런 수준까지 해야 한다.” 반일 캠페인으로 정치적 에너지를 모으곤 했던 문 정권 인사들이 언제부터 일본 사례를 본받아야 할 것처럼 우리나라 정책을 얘기했는지 모르겠다. 임 전 실장도 서울시장 출마를 공식 포기하면서 이제 차기 대선 후보로 보는 분석이 많다. 임종석 전 실장의 발언도 그런 차원에서 해석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런 돈 퍼주기, 현금 살포 정책들이 어떻게 귀결되든 상관없이 그것이 법제화 되는 순간 사태는 심각해진다는 점이다. 필요할 때마다 주는 재난지원금과 달리 이익공유법, 손실보상법, 사회연대기금법 같은 이른바 ‘상생 3법’을 법제화하면 수십 조 원의 재정을 반복적으로 쏟아부어야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야권에서는 “작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재난지원금을 띄웠던 것과 판박이”라면서 이번 상생 3법도 서울시장 보궐선거용이라는 비판을 하고 있다.

오늘까지 여권을 상대로 한 취재 결과를 종합해보면 코로나 피해 지원금은 보편지급·선별지급 양쪽을 병행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 같다. 작년 1차 재난지원금 때처럼 4차 재난지원금을 모든 국민에게 지급하고, 동시에 정부의 영업 제한 조치로 피해를 입은 소상공인에 대해서는 영업 손실 보상금을 별도로 지급하는 것이다. ‘선별·보편 패키지’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물고 물리는 서로 총질하기 싸움은 계속됐다. 돈 풀기를 놓고 갑론을박하고 있는 정치권 강자들의 틈바구니에 낀 홍남기 기재부 장관은 이렇게 말했다. “100조 규모의 자영업 손실보상법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자영업자 소상공인 피해 회복의 근본 해결방안은 코로나 19 상황이 마무리 되고 민간 소비가 활력을 되찾는 것이다.” 이에 대해 앞서 말한 것처럼 정세균 총리는 “이 나라가 기재부 것이냐”고 했고, 이재명 지사는 이렇게 말했다. “집단 자살 사회에서나 볼 수 있는 대책 없는 재정 건전성이다. 적게 쓰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총리와 경기지사가 기재부 장관을 공격하지 이번에는 집권당 대표가 역성을 들고 나왔다. 이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기획재정부의 곳간지기를 구박한다고 무엇이 되는 게 아니다.” “독하게 얘기해야만 선명한 것인가.”

여러분은 어떻게 보십니까. 웃고 싶으십니까, 울고 싶으십니까. 우리가 정치권 뉴스로 매일 접하고는 있지만, 이것이 현실입니다. 그리고 설 연휴는 며칠 앞으로 다가오고 있고, 서울시장 선거는 두 달 남짓 남았습니다. “돈 풀기는 돈 풀기이고, 투표는 투표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도 계시지만, 작년 총선 때도 여실히 증명됐듯이 선거 직전의 돈 풀기는 반드시 효과를 봅니다. 유권자가 나라 곳간인지 벽장 속 곶감인지 분간 못하면 우리는 또다시 어두운 터널을 견뎌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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