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공방 5년 '파타야 살인사건'.."태국 법정에서 한 증언도 증거되나"

전현진 기자 2021. 1. 25.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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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018년 4월 ‘파타야 살인사건’ 피의자 김모씨가 베트남에서 붙잡혀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경찰청 제공


지난 13일 오전 10시50분 서울중앙지법 523호 법정.

형사합의22부 재판장인 양철한 부장판사는 검사와 변호인, 암청회색 수의에 노란색 번호표를 가슴에 붙인 피고인 김모씨(37)의 출석을 확인했다. 김씨는 2018년 10월 살인 및 사체유기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오랫동안 이어진 재판이 마무리되고, 선고 예정일까지 일주일쯤 앞둔 시점이었다. “검찰과 피고인 쪽에서 의견을 개진해왔던 태국에서의 윤○○ 조사에 대해 증거능력을 부여하는 문제 때문입니다.” 양 부장판사는 변론재개를 결정한 이유를 설명했다.

살인 사건에 연루된 김씨와 윤씨는 2013년부터 알고 지낸 사이. 윤씨 형이 김씨를 ‘성남마피아’의 조직원이라고 소개시켜준 게 계기가 됐다. 윤씨는 태국에서 여행 가이드를 하거나 자동차 담보 대부사업을 했다. 충북 보은에서 태어났고 어릴 적에는 태권도 선수였다. 베트남에 있던 김씨가 태국에 있는 윤씨에게 전화를 했다. 태국에서 도박사이트를 운영할 것이라는 얘기였다. 김씨는 2015년 3월부터 도박사이트를 운영했다. 김씨는 태국 방콕의 수쿰빗이라는 곳에 오피스텔 여러 곳을 빌려 도박사이트 사무실과 관리사무실을 차렸다. 한국에서 프로그래머를 고용했다. 사이트 이름은 도박과는 어울리지 않는 ‘힐링캠프’였다.

김씨와 윤씨…이 두 사람은 잔혹한 폭행과 고문 흔적이 발견돼 공분을 산 ‘파타야 살인사건’의 공범이다.

검찰 공소 내용에 따르면, 김씨는 2015년 11월19일 오후 10시48분부터 다음날 오전까지 태국 방콕에서 파타야로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자신이 운영한 도박사이트의 프로그래머 고 임동준씨(당시 25세)를 야구방망이나 목검과 같은 길고 단단한 물체로 머리 부위 등을 때려 살해하고 파타야의 한 리조트 주차장에 방치한 혐의를 받는다. 임씨 시신에는 잔혹한 폭행과 고문의 흔적이 남았다. 이 차에 탄 건 운전한 윤씨와 임씨 그리고 김씨 세사람 뿐이다. 김씨의 폭행은 임씨가 도박사이트 정보를 빼돌리거나 사무실 위치를 노출시켰다고 의심하면서 벌어졌다.

윤씨는 이 재판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임씨가 사망한 직후 김씨는 다른 일당과 베트남으로 도피했고, 윤씨는 현지 태국 경찰에 자수했다. 태국 경찰 조사에서 윤씨는 김씨가 임씨를 폭행했고 자신을 잘못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태국 파타야주 법원은 그의 티셔츠에 임씨의 혈흔이 발견됐다는 점과 운전을 하면서 김씨를 충분히 말리지 않은 점 등을 토대로 그가 살인 사건의 공범이라고 판단했다. 윤씨는 징역 15년형을 선고받고, 2016년 10월부터 태국 방콩 클렁쁘렘 중앙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태국에서 진행된 윤씨의 수사·재판 기록은 김씨에 대한 공소 사실의 기초가 됐다.

지난해 11월 국제형사사법공조 제도를 통해 서울중앙지법에 접수된 윤씨의 증인신문 조서 번역본은 2020년 3월부터 8월까지 네 차례에 걸쳐 태국 형사법원에서 한 그의 증언이 담겼다. 윤씨를 증인으로 법정으로 불러 신문할 수 없어 형사사법공조 제도를 활용한 것이다. 검찰과 변호인 양측이 서면으로 신문사항을 제출해, 태국의 법정에서 증인신문이 이뤄졌다.

“파타야에 거의 도착했을 때 골프장 근처 비포장 갈대 숲 도로 길가에 차를 세웠습니다. 그때 피고인(김씨)은 차 뒤에서 막대 형태의 무기 3자루를 꺼내 왔고, 그 무기를 사용해서 피해자(임씨)의 신체를 폭행했습니다. 전술한 무기를 사용하여 무기가 굽어진 형태가 될 정도로 피해자의 신체를 폭행한 후에….”(윤씨 태국 법정 진술)

“파타야에 도착하기 전 피해자를 폭행하기 위해 여러 곳에 정차를 했고, 한 번은 피해자가 야구방망이를 사용하여 피해자의 머리 주변에 부상을 입게 하고 피해자가 의식이 흐려지는 증상이 생기도록 피해자의 신체를 강하게 폭행했습니다…증인과 피고가 함께 피해자에게 심폐소생술을 하였습니다. 증인은 손을 사용해서 심장이 뛰도록 피해자의 가슴 주변을 눌렀고, 피고는 입에 바람을 불어서 피해자에게 인공호흡을 했습니다. 피해자의 증상은 나아지지 않았고, 아직 살아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피해자는 횡설수설하였고 의사소통이 되지 않았습니다…(이후) 피해자가 사망한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윤씨 태국 법정 진술)

방콕에서 파타야까지 김씨와 임씨를 태운 차를 운전한 유일한 사람인 윤씨는 직접 목격·가담한 증인이다. 윤씨가 잔혹한 범죄의 공범이냐, 김씨에게 죄를 덮어 씌우려는 진범이냐를 놓고 검사와 변호인은 법정에서 다퉜다. 김씨는 줄곧 살해 혐의를 부인해왔다. 김씨는 2018년 4월 도피 중이던 베트남에서 국내로 송환됐지만, 검찰은 윤씨의 태국 재판 기록을 넘겨받고 나서야 살인 등 혐의로 기소할 수 있었다. 김씨 측은 임씨를 이전에 폭행한 사실은 인정하지만, 그 사실이 임씨를 폭행해 살해했다는 직접증거가 될 수 없다고 했다. 야구방망이 같은 것으로 때리지 않았고, 오히려 다른 사망원인이 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무엇보다 윤씨 등 증인들이 자신에게 씌워질 혐의를 피하기 위해 피고인에게 불리한 진술을 한다고 했다. 윤씨는 태국에서 수감 생활을 마치면 다시 한국에서 재판을 받을 상황이다. 경찰 관계자는 윤씨에 대한 인터폴 적색수배가 아직 유효하고 체포영장도 발부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윤씨가 사건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자신이 임씨를 때려 숨지게 했음에도 김씨에게 덮어 씌우고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검찰은 김씨가 윤씨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고 보고 있다. 임씨를 지속적으로 폭행해온 것이 김씨이고 윤씨 진술도 신빙성이 있다는 것이다.

사건 발생 5년이 넘도록 법적 결론이 나지 않은 건 사법권이 미치지 않는 해외에서 벌어진 범죄이기 때문이다. 사건이 발생한 장소와 주요 참고인(윤씨)이 태국에 있다. 윤씨의 증언이 가장 유력한 증거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그를 신문하고 증언을 확인하는 기본적인 작업도 쉽지 않다. 윤씨의 진술의 증거 능력을 강조하려는 검찰과 그 신빙성을 배제하려는 변호인의 공방이 이어진 이유다.

“재판부는 지난번 재판을 종결하면서 태국에서 한 조사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취지로 결정했는데, 양쪽의 의견 등을 종합해보았을 때 증거능력을 일응(일단) 부여하고 그 내용까지 검토한 후에 판결을 하면서 이 자료의 증거능력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좋겠다는 입장을 정리했습니다.”

양 부장판사는 이렇게 말하며 재판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형사재판에선 증거로 채택되지 않으면 재판부가 그 내용을 살펴볼 수 없지만, 재판부 재량으로 조서를 살펴본 뒤 판결의 근거가 될 증거로 삼을 지 최종 결정하겠다는 의미다.

재판부가 검찰과 변호인에게 마지막 의견을 물었다. 공판검사는 “구형을 그대로 유지하겠다”고 했다. 김씨에 대해 검찰은 지난 결심에서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검사는 “사법공조를 통해 받은 윤씨 진술에 대해 검찰은 기본적으로 법관 면전에서 사용된 조서라는 입장입니다.” 다른 곳도 아닌 태국의 법정에서 한 진술이기에 한국의 법원에서 한 것과 같은 효력을 지녔다는 뜻이다.

김씨 측은 무죄를 주장했다. 김씨 측 변호인은 재판 후 기자와 만나 “증인 신문이란 것은 공판중심주의에 따라 재판부가 증인의 말투, 행동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심증을 형성하는 과정”이라며 “반대 신문 권리가 보장 받지 않았고, 진실성이 입증되지 않은 윤씨 진술이 증거로 채택되면 안 된다”고 했다. 1월 21일 예정됐던 이 사건의 판결은 한 차례 연기된 1월28일에서 다시 2월8일로 미뤄졌다. 앞서 김씨는 2019년 12월 다른 사건에서 공동감금·공동폭행 등 혐의가 인정돼 징역 4년6개월을 최종 선고받고 수감중이다.

태국 경찰의 조사 과정에서 2015년 11월20일 오전, 윤씨의 연락을 받고 리조트 예약을 도와준 한국인 가이드 이모씨의 진술이 있다. 임씨가 사망한 당일 직후였다. 이씨는 리조트에서 김씨와 윤씨 등 도박사이트를 운영한 이들의 모습을 분명히 기억한다고 했다. “(숙박 대금을 지불한 뒤) 윤씨는 차에 앉아 기다리고 있는 남성 2인에게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윤씨가 2명과 한국어로 대화하면서 ‘담배와 생수를 사러가자. 배고프다’고 (대화)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때 차 안에는 임씨가 이미 숨진 상황이었고, 이 리조트 주차장에서 시신이 발견됐다.

전현진 기자 jjin2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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