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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검·경과 달리 박원순 전 시장 성희롱 인정한 인권위

입력 2021. 01. 25. 22:22 수정 2021. 01. 25.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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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국가인권위원회가 25일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피해자에게 행한 성적 언동은 국가인권위원회법에 따른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인정했다. 박 전 시장이 늦은 밤 피해자에게 부적절한 메시지와 사진, 이모티콘을 보내고, 집무실에서 네일아트한 손톱과 손을 만진 것을 명백한 성희롱으로 판단했다. 인권위의 이날 판단은 경찰과 검찰이 성폭력 사실을 밝히지 못한 가운데 국가기관으로는 처음 성추행을 인정한 것이다. “저의 마지막 희망은 인권위의 직권조사 결과 발표”라던 피해자의 간절한 호소에 제한적이나마 부응한 것은 다행스럽다.

인권위가 성희롱을 인정한 근거는 피해자의 휴대전화 디지털 포렌식 등 증거자료와 박 전 시장의 메시지를 직접 보았다는 참고인들의 진술, 피해자 진술의 구체성과 일관성 등이다. 지난 5개월 동안 직권조사해온 결과를 토대로 경찰보다 진전된 판단을 내렸다는 점은 평가한다. 그러나 인권위가 서울시 직원들의 성희롱 묵인·방조 의혹에 대해 객관적 증거가 부족하다고 본 것은 아쉽다. 이들이 박 전 시장의 성희롱 행위를 인지했다는 전제가 성립되기 어려워 묵인·방조 혐의를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들의 낮은 성인지 감수성으로 성희롱 행위 여부 자체를 몰랐다고 비판했다.

이날 인권위 결론의 또 다른 의미는 피고소인의 사망으로 방어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점을 감안해 인권위가 더욱 엄격하게 사실관계를 따진 가운데 나왔다는 점이다. 지난해 말 경찰은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사건에 대해 ‘공소권 없음’ 처리했다. 서울시 관계자들의 성추행 방임·방조 혐의도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기며 조사 과정은 밝히지 않아 소극적인 수사로 면죄부를 줬다는 비판을 받았다. 검찰은 성추행 정황을 간접 확인했을 뿐이다. 검경이 수사를 통해 성희롱을 밝혀내지 못한 지난 반 년 동안 피해자는 2차 가해를 당했다. 이날 결정은 피해자를 조롱하는 등 2차 가해를 막을 수 있는 확실한 근거가 될 수 있다. 이제 피해자 보호와 안전한 일상 복귀가 급선무다. 아울러 인권위가 밝힌 대로 우리 사회가 20년 전 성희롱 법제화 당시의 인식 수준에서 크게 나아가지 못했음을 통감해야 한다. 성희롱을 바라보는 관점을 개인 간의 문제가 아닌, 조직문화·위계구조의 문제로 바꾸고 다시는 같은 잘못과 상처를 반복하지 않도록 근본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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