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세계일보

[곽금주의공감산책] 자녀학대 대물림 막아야

남상훈 입력 2021. 01. 25. 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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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아들 울음만으로 외부와 소통
지나친 양육 스트레스 폭력 불러
학대 받은 경험 있으면 더 심해
경각심 갖고 예방·근절책 세워야

최근 자녀학대에 대한 기사가 끊이지 않고 있다. 그 어린아이가 작은 몸으로 겪었을 극심한 공포를 생각하면 너무나 가슴 아프다. 2013년 칠곡에서 만 8세 아이가 의붓엄마로부터 폭력을 당해 죽음까지 이른 사건 이후로 자녀학대는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지난해에는 어린 아들을 몸을 완전 구부려야만 들어갈 수 있는 가방에 넣고 그 위에서 마구 밟아 죽음에 이르게까지 한 사건도 일어났다. 제대로 방어할 수 없는 어린아이에게 벌어진 잔인한 범행들을 보면, 과연 정상적인가 싶다.

영아를 대상으로 한 학대도 빈번하다. 2016년 홍성군에서 엄마가 9개월 된 세 쌍둥이를 폭행하다가 둘째 아이가 숨진 ‘홍성군 영아 폭행치사 사건’도 있다. 2019년에는 생후 3개월 된 딸을 학대해 두개골, 흉부, 고관절 등 부위에 골절상을 입힌 혐의로 구속된 엄마도 있다. 2020년에는 태어난 지 47일 된 남자아이가 두개골 골절과 뇌출혈 등으로 숨진 사건이 6개월이 지나서야 뒤늦게 알려지기도 했다. 16개월 된 정인이 사건도 전국민에게 분노를 일으킨, 비참하고 잔인한 죽음 중 하나이다.
곽금주 서울대 교수·심리학
인간은 아무 준비 없이 어느 날 이 세상에 태어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엄마도 출산 고통을 겪지만 아기도 고통을 경험한다. 산소 호흡과 같은 생리적이고 신체적인 변화도 있지만 무엇보다 세상에 대한 불안감이 크다. 그래서 생후 1년간 인간에게 중요한 것이 신뢰감 형성이다. 세상이 믿을 만한 곳이라는 기본적인 신뢰감을 가지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은 믿을 곳이 아니고 믿을 사람 하나 없다는 불신감이 이후 전체 삶에 영향을 주게 된다. 그래서 이 시기 부모의 영향은 매우 크다. 불안해하는 아이를 잘 적응하게 해주고, 언제든 옆에서 도와줄 그 누군가가 있다는 믿음을 갖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시기 아이가 할 수 있는 소통 도구는 울음뿐이다. 울음은 아이의 건강상태를 나타내는 지표이기도 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우는 것은 건강하게 태어났다는 신호다. 너무 울거나 전혀 울지 않는 것과 같은 비정상적인 울음이 계속되면 아이 건강에 이상이 없는지를 의심해봐야 한다. 특히 이러한 비정상적 울음은 신체적 고통뿐만 아니라 호르몬, 신진대사, 염색체 이상 등의 문제 때문일 수도 있다. 그래서 엄마는 본능적으로 아이 울음에 민감할 수 밖에 없다. 한 연구에서 여러 아이들의 울음소리를 들려주었는데 엄마는 자기 아이의 울음소리를 즉각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때 아이의 울음소리는 엄마의 뇌, 특히나 안아주고 도와주려 하는 육아행동과 관련된 뇌 영역이 활성화되었다. 웃기와 같은 긍정적 표현이나 감정 표현이 아직 발달되지 않은 아기에게 울음은 외부세상과 소통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며 생존 수단이라 할 수 있다. 갓 태어난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서는 아이가 보내는 울음이라는 신호에 민감해야 한다. 아이 울음에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을 포함한 자율신경계가 반응하여 아이에게 신속하게 대응할 수가 있다. 아이가 괴로워하는 걸 보는 엄마의 자율신경계 또한 반응하는 자율신경 전이(autonomic contagion) 현상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울음이 반드시 긍정적인 기능만을 하는 것은 아니다. 영아의 울음소리는 아주 다양한데 매우 고음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속적이고 끊임없는(비정상적인) 울음은 아기의 스트레스를 나타내는 지표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지속되는 고음은 듣는 사람의 심장박동이나 피부전도도 등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때로 이런 비정상적인 울음이 아동 학대나 폭력 심지어 살인과 같은 양육자의 공격적 행동 등 부정적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육아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경우 지나친 아이의 울음으로 지치고 힘들어져서 공격 반응을 보였다는 경우가 많다. 바로 ‘영아 울음 역설(early crying paradox)’ 이다. 영아의 울음이 긍정적인 동시에 부정적일 수 있다. 울음소리가 부모가 자신을 돌보도록 유도하여 영아의 생존율을 높이지만 부모로부터 위협적인 반응을 유도할 수도 있다. 특히 양육자의 자율신경계 반응이 과하거나 또는 지나치게 억제되면 아이에 대한 반응이 정상적이지 않을 수 있다. 아이의 울음이 양육자에게서 비정상적 자율신경계 과민반응이 일어나는 경우에 피로감, 짜증, 더 나아가 아이에 대한 폭력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반면 양육자의 자율신경계 반응이 지나치게 억제되면 아이의 울음에 별다른 반응이 일어나지 않아 방치나 방임에까지 이를 수 있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이런 자율신경계 반응은 엄마 자신이 어릴 때 학대를 받은 경험이 있는 경우 특히나 더 심했다. 자칫 아주 어릴 때 자신이 받은 학대가 자신의 아이에게까지 대물림될 위험이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어린아이에게 가해지는 학대에 대해 좀 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이를 초기에 찾아낼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추어져야 한다. 또한 이렇게 학대받는 아동을 보호할 수 있는 보호장치도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 지나친 양육 스트레스와 소진이 학대로 연결되지 않도록 평소 면밀하게 살피고 예방하는 것도 필요하다. 결국 아동학대가 대물림되어 장기적인 부정적 영향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지금 이 아이에게 이루어지는 학대 근절이 가장 중요한 예방책이기 때문이다.

곽금주 서울대 교수·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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