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내세운 정의당의 추락.. 일부 지지자들 "당 해체해야"
정의당이 25일 공개한 김종철 대표 성추행 사건은 가해자가 현직 당대표, 피해자가 당 소속 현역 의원이란 점에서 정치권에 충격을 주고 있다. 진보 노선을 표방해온 정의당은 그동안 여성 인권과 양성 평등을 당의 핵심 가치로 내걸고 거대 양당의 성 비위를 강하게 비판해왔다. 이 때문에 이번 사건을 두고 정의당 지지자들 사이에선 “배신당한 심정이다. 참담하다”는 말이 나왔다. 당 일각에선 “존폐 기로에서 발전적 당 해체를 결단해야 할 시점”이란 말까지 나왔다.
실제로 정의당은 2018년 이후 국내에서 급속히 확산한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캠페인이 정치권을 강타하자 권력형 성폭력 사건에 대한 ‘비판자’와 ‘심판자’ 역할을 자처해왔다. 특히 의석 6석의 소수 정당이지만 더불어민주당의 안희정 전 충남지사와 오거돈 전 부산시장,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잇따라 성 비위 사건을 일으켰을 땐 ‘피해자 보호’를 앞세워 어느 정당보다 강하게 민주당을 비판했다.
김종철 대표는 작년 11월 민주당을 “성 비위를 저지른 정당”으로 지칭하며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 민주당이 후보를 내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의당은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피소 관련 내용을 박 전 시장 측에 유출했다는 의혹을 받는 민주당 남인순 의원을 향해서도 “여성 인권 운운하며 ‘가해자 감싸기’에 급급했다”고 했다.
정의당의 이런 기조는 소수자 보호와 양성평등 같은 진보 노선에 부합한다는 평가와 함께 정의당의 존재감을 뒷받침했다. 정의당은 당 강령에서 “여성과 장애인, 이주민과 성 소수자는 배제와 폭력의 가장 큰 희생자가 되고 있다”며 “대한민국의 좌표를 사람 우선, 생명 우선으로 과감하게 바꾸는 전방위적 혁신이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또 당규에는 ‘성차별·성폭력·가정폭력 등의 방지와 처리에 관한 규정’을 별도로 두고 있다.
하지만 정의당 내부적으론 과거 통합진보당 시절부터 성 비위 논란과 사건이 잇따랐다. 2012년 총선 때 경기 성남 중원을 야권 단일 후보로 공천받은 통진당의 윤원석 전 민중의소리 대표는 성추행 의혹이 제기돼 결국 사퇴했다. 윤 전 대표의 성추행 전력에도 통진당은 그를 야권 단일 후보로 밀어붙였다. 또 통진당은 당시 민노총 간부의 전교조 여성 조합원 성추행 사건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관련자 징계 수위를 낮춰 논란이 됐던 정진후 전 전교조 위원장을 비례대표 4번에 공천해 논란이 일었다. 진보 정치권 인사는 “과거에도 알려지지 않았을 뿐 당 조직 보호를 위해 쉬쉬하며 넘어간 성 비위 사건이 있었다”고 했다.
이번 성추행 사건은 발생 열흘이 지날 때까지 정의당의 핵심 간부들을 제외하고는 당직자 대부분이 아예 알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 관계자는 “피해자 보호를 위해 조용히 조사를 진행해왔다”고 했다. 정의당 측의 이런 설명에도 가해자인 김 대표가 성추행 사건 조사가 진행 중이던 지난 20일 신년 기자 간담회를 연 것은 의구심을 낳고 있다. 김 대표는 이 간담회에서 남성 아이돌을 성적 대상으로 삼아 논란이 된 ‘알페스’와 관련해 “성폭력으로 여성이 고통받고 있는 현실을 무마하기 위한 것으로 쓰여선 안 된다”고 했다.
정의당이 여성 인권과 성 평등 이슈를 선점하며 거대 양당과 가해자들에 대한 심판자를 자처해왔던 만큼 이번 사건으로 2012년 10월 창당 이후 최대 위기를 맞았다는 말이 나온다. 정의당은 민노당 출범 이후 정체성을 둘러싼 계파 간 대립에도 진보 정당의 적통을 잇는다는 자부심을 강조해왔다. 그러나 정의당 당원 게시판에는 이날 “당대표 사퇴로 끝날 사안이 아니다. 집행부 전부 사퇴해야 한다” “비참한 심정으로 탈당계를 제출하고 당비도 끊는다” “당을 해산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글이 올라왔다. 심상정 전 대표는 “가슴 깊은 곳에서 통증이 밀려온다”며 “당의 대표가 가해자란 사실은, 당의 모든 것을 바닥에서부터 재점검해야 할 일”이라고 했다. 다만 당 일각에선 “그래도 정의당이었으니 대표 직위 해제까지 한 거다. 정의당 식으로 처리했다”는 반응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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