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내세운 정의당의 추락.. 일부 지지자들 "당 해체해야"

안준용 기자 2021. 1. 26.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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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핵심가치 저버린 성추행

정의당이 25일 공개한 김종철 대표 성추행 사건은 가해자가 현직 당대표, 피해자가 당 소속 현역 의원이란 점에서 정치권에 충격을 주고 있다. 진보 노선을 표방해온 정의당은 그동안 여성 인권과 양성 평등을 당의 핵심 가치로 내걸고 거대 양당의 성 비위를 강하게 비판해왔다. 이 때문에 이번 사건을 두고 정의당 지지자들 사이에선 “배신당한 심정이다. 참담하다”는 말이 나왔다. 당 일각에선 “존폐 기로에서 발전적 당 해체를 결단해야 할 시점”이란 말까지 나왔다.

정의당 젠더인권본부장인 배복주 부대표(왼쪽)가 25일 국회 소통관에서 김종철 대표의 성추행 사건 관련 긴급기자회견 도중 눈물을 닦고 있다. 오른쪽은 정호진 대변인. /연합뉴스

실제로 정의당은 2018년 이후 국내에서 급속히 확산한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캠페인이 정치권을 강타하자 권력형 성폭력 사건에 대한 ‘비판자’와 ‘심판자’ 역할을 자처해왔다. 특히 의석 6석의 소수 정당이지만 더불어민주당의 안희정 전 충남지사와 오거돈 전 부산시장,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잇따라 성 비위 사건을 일으켰을 땐 ‘피해자 보호’를 앞세워 어느 정당보다 강하게 민주당을 비판했다.

김종철 대표는 작년 11월 민주당을 “성 비위를 저지른 정당”으로 지칭하며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 민주당이 후보를 내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의당은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피소 관련 내용을 박 전 시장 측에 유출했다는 의혹을 받는 민주당 남인순 의원을 향해서도 “여성 인권 운운하며 ‘가해자 감싸기’에 급급했다”고 했다.

여권 인사들의 성추문 논란

정의당의 이런 기조는 소수자 보호와 양성평등 같은 진보 노선에 부합한다는 평가와 함께 정의당의 존재감을 뒷받침했다. 정의당은 당 강령에서 “여성과 장애인, 이주민과 성 소수자는 배제와 폭력의 가장 큰 희생자가 되고 있다”며 “대한민국의 좌표를 사람 우선, 생명 우선으로 과감하게 바꾸는 전방위적 혁신이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또 당규에는 ‘성차별·성폭력·가정폭력 등의 방지와 처리에 관한 규정’을 별도로 두고 있다.

하지만 정의당 내부적으론 과거 통합진보당 시절부터 성 비위 논란과 사건이 잇따랐다. 2012년 총선 때 경기 성남 중원을 야권 단일 후보로 공천받은 통진당의 윤원석 전 민중의소리 대표는 성추행 의혹이 제기돼 결국 사퇴했다. 윤 전 대표의 성추행 전력에도 통진당은 그를 야권 단일 후보로 밀어붙였다. 또 통진당은 당시 민노총 간부의 전교조 여성 조합원 성추행 사건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관련자 징계 수위를 낮춰 논란이 됐던 정진후 전 전교조 위원장을 비례대표 4번에 공천해 논란이 일었다. 진보 정치권 인사는 “과거에도 알려지지 않았을 뿐 당 조직 보호를 위해 쉬쉬하며 넘어간 성 비위 사건이 있었다”고 했다.

정의당 김종철(오른쪽) 대표가 지난 4일 당 대표단 회의에서 장혜영 의원과 함께 참석한 모습. 정의당은 25일 기자회견을 열고“김 대표가 지난 15일 장 의원을 성추행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이날 당 대표직 사퇴 의사를 밝혔다. /국회사진기자단

이번 성추행 사건은 발생 열흘이 지날 때까지 정의당의 핵심 간부들을 제외하고는 당직자 대부분이 아예 알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 관계자는 “피해자 보호를 위해 조용히 조사를 진행해왔다”고 했다. 정의당 측의 이런 설명에도 가해자인 김 대표가 성추행 사건 조사가 진행 중이던 지난 20일 신년 기자 간담회를 연 것은 의구심을 낳고 있다. 김 대표는 이 간담회에서 남성 아이돌을 성적 대상으로 삼아 논란이 된 ‘알페스’와 관련해 “성폭력으로 여성이 고통받고 있는 현실을 무마하기 위한 것으로 쓰여선 안 된다”고 했다.

정의당이 여성 인권과 성 평등 이슈를 선점하며 거대 양당과 가해자들에 대한 심판자를 자처해왔던 만큼 이번 사건으로 2012년 10월 창당 이후 최대 위기를 맞았다는 말이 나온다. 정의당은 민노당 출범 이후 정체성을 둘러싼 계파 간 대립에도 진보 정당의 적통을 잇는다는 자부심을 강조해왔다. 그러나 정의당 당원 게시판에는 이날 “당대표 사퇴로 끝날 사안이 아니다. 집행부 전부 사퇴해야 한다” “비참한 심정으로 탈당계를 제출하고 당비도 끊는다” “당을 해산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글이 올라왔다. 심상정 전 대표는 “가슴 깊은 곳에서 통증이 밀려온다”며 “당의 대표가 가해자란 사실은, 당의 모든 것을 바닥에서부터 재점검해야 할 일”이라고 했다. 다만 당 일각에선 “그래도 정의당이었으니 대표 직위 해제까지 한 거다. 정의당 식으로 처리했다”는 반응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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