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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박상현의 일상 속 문화사] 일상 도와준 고마운 존재인가.. 평생 벗어나지 못할 굴레인가

조성민 입력 2021. 01. 26.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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⑫ 루스벨트 대통령의 휠체어
루스벨트, 39세에 병으로 휠체어 사용
대중들 앞에 드러내는 것 극히 꺼려해
1990년대말 기념관 조각상 만들며 논란
설계자들 휠체어에 앉은 모습에 반대
큰 망토 둘러 휠체어 가린 모습 제작
장애인 인권운동가 등 반발 추가 설치
'장애를 정체성으로 생각했나' 화두로
태어나면서 중증 장애를 얻어 휠체어를 사용하다가 11살에 세상을 떠난 매슈 로빈슨의 묘. 매슈의 부모는 아이가 휠체어를 벗어나는 모습을 조각해서 비석 위에 세웠다.
몇 해 전 온라인에서 한 어린아이의 무덤이 화제가 되었다. 미국 유타주에서 1988년에 태어나 11살 때 세상을 떠난 매슈 로빈슨이라는 이 아이의 묘에 사람들의 관심이 쏠린 이유는 부모가 세운 비석 때문이다. 평범한 돌판으로 된 주위의 비석과 달리, 비석 위에 어린아이가 휠체어에서 일어나 하늘을 향해 뛰어오르는 모습의 조각이 붙어있다. 비석에는 아무런 설명이 없이 이름과 태어난 날, 세상을 떠난 날만 적혀 있지만, 이 조각을 본 사람들은 직관적으로 아이의 짧은 생을 이해할 수 있다.

매슈는 태어나면서 산소공급이 잠시 중단되는 바람에 중증 장애를 갖게 되었다. 앞을 보지 못했고, 목 아래로는 몸을 가누지 못했다. 세상을 떠날 때까지 사용할 수 있는 단어도 몇 개 되지 않았다. 하지만 매슈의 부모는 짧은 생을 살다간 아이가 가져다준 큰 행복에 감사했고, 아이의 삶을 기념하기 위해 이 조각을 비석 위에 만들기로 결정한 것이다. 아이는 태어나서 한 번도 자신의 힘으로 일어선 적이 없지만, 조각 속의 아이는 자신이 세상에서 보낸 11년 동안 앉아있던 휠체어를 벗어나 높이 뛰어오르고 있다. 매슈의 부모는 장애인에게 휠체어 같은 기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누구보다 잘 알았고, 그래서 아이 생전에 장애인들에게 재활기구를 제공하는 비영리재단을 만들기도 했다.

그런데 부모는 조각을 만들면서 아이가 그런 휠체어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그렸다. 왜 그랬을까? 휠체어는 아이의 일상생활을 도와준 고마운 존재인 동시에, 아이가 평생 벗어나지 못한 굴레이기도 했다. 그래서 저 세상에서는 휠체어에 갇히지 말고 마음껏 뛰어다니라는 바람으로 이런 조각을 디자인한 것이다. 이 조각을 보는 사람들이면 누구나 그 마음을 이해하고, 그래서 눈물을 흘린다.

그러나 이 조각은 어디까지나 부모의 바람이지, 매슈의 실제 모습이 아니다. 매슈는 비석 위에서 자신이 한 번도 동일시할 수 없었을 모습을 하고 있다. 물론 우리는 매슈가 어떤 모습으로 기록되기를 바랐는지 알 수 없다. 만약 매슈처럼 평생을 휠체어에서 보낸 어떤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서 자신의 모습이 조각으로 남겨질 것을 알았다면, 그는 자신의 모습이 어떻게 기록되기를 원할까?

인류는 오래도록 장애를 ‘정상이 아닌 것’으로 이해해왔다. 장애인은 ‘정상이 되지 못한’ 사람들이고, 그래서 그들은 정상이 되고 싶어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장애를 보는 이런 시각은 바뀌고 있다. 장애는 정상이 아니거나 부족한 것이 아니라, 다름이라는 시각이다. 멜라닌 색소가 적은 백인들은 피부암에 걸릴 확률이 다른 인종보다 높지만, 우리는 멜라닌 색소가 부족한 것을 두고 정상이 아니라거나, 장애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다른 인종들보다 선블록 로션을 열심히 발라야 하고, 피부암으로 발전하는 반점이 생기지 않는지 주기적으로 열심히 살펴야 하는 ‘불편’이 있을 뿐이다.

다름과 차이를 부족함으로 보는 시각은 많은 종교와 문화에서 가진 남녀차별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가령 여성은 남성이 하지 않는 생리를 하고, 그래서 ‘불결한’ 존재로 인식하는 전통적인 사고방식이 그것이다. 지금은 세계적인 대회가 된 보스턴 마라톤 대회가 여성의 참여를 허용한 것은 1970년대에 들어와서다. 그 전에는 여성은 자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오래달리기를 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비과학적인 사고가 지배하고 있었고, 1967년에 캐스린 스위처라는 여성이 몰래 참가하자 주최 측이 몸싸움을 벌여가며 코스에서 쫓아내기도 했다.

사회가 다름을 인식하는 방식이 변화하면서 장애인을 묘사하는 방식에도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1990년대 말에 일어난 미국의 32대 대통령 프랭클린 D 루스벨트(1882~1945)의 조각상과 관련한 논란이 그것이다.

루스벨트는 성인이 된 후에 병을 앓아 휠체어를 사용하게 된 사람이다. 의술이 크게 발전하지 못했던 과거에는 그가 39세가 되던 1921년에 소아마비(polio)에 걸렸다고 알려졌지만, 지금은 그가 걸린 병을 길랭-바레(Guillain-Barre) 증후군으로 추정한다. 루스벨트는 운동과 물리치료를 통해 장애를 극복하려 애를 썼고, 그 과정에서 비슷한 장애인들을 위한 재활센터를 설립하기도 했지만 결국 부축이 없이는 걸을 수 없게 되었다.

그가 뉴욕 주지사에 출마해서 당선되고, 곧이어 대통령직에도 도전해서 당선된 것은 모두 그가 보행장애를 갖게 된 후의 일이다. 그는 자신의 장애를 담담하게 받아들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걸 대중 앞에서 드러내는 건 극히 꺼렸다. 휠체어는 사람들이 없을 때만 사용했고, 대중 앞에 나설 일이 있을 때는 양옆에서 보이지 않게 부축해서 걸어 나오는 것처럼 보이도록 했다.

하지만 그가 장애를 창피하게 생각해서 그랬던 것 같지는 않다. 아무리 미국이라고 해도 장애인들을 바라보는 20세기 초의 사고방식을 고려하면 그가 자신의 장애를 최대한 숨기려고 했던 이유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한 나라의 지도자가 두 발로 걷지 못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할 사람들이 많았던 세상이었다.
닐 에스턴이 제작한 루스벨트 대통령의 모습. 1997년 기념관의 완공과 함께 공개된 이 조각은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이 앉아있는 휠체어를 교묘하게 감추고 있다.
그랬던 루스벨트 대통령을 기리는 기념관이 1990년대 말에 만들어지면서 그의 조각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느냐는 논란이 생겼다. 기념관의 설계자들은 루스벨트 대통령을 휠체어에 앉아있는 모습으로 조각하는 것에 반대했고, 그를 앉은 모습으로 묘사하되 큰 망토로 앉아있는 것이 휠체어인지 알아볼 수 없게 했다. 생전 자신이 휠체어를 탄 모습을 드러내기를 꺼렸던 대통령의 의도가 존중되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1948년 런던에 세워진 루스벨트의 동상은 별 논란 없이 서 있는 모습으로 제작되었다.

하지만 일부 사학자들과 장애인 인권운동가들이 이에 반대했다. 그가 장애를 가진 것은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며, 그 사실은 루스벨트를 더욱 위대하게 만들 뿐 흠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런 시각을 의식해서 동상을 설계한 조각가는 루스벨트의 동상 뒤쪽에 바퀴가 살짝 드러나게 설계를 했지만 애써 뒤로 가서 보지 않는 한 보이지 않는다. 말하자면 역사적 사실과 루스벨트의 의도 사이에서 찾은 절충안인 셈이다.

장애인 단체는 이에 만족하지 않았다. 루스벨트 대통령처럼 존경받는 인물,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인물이 장애를 갖고 있었다는 사실은 세상의 장애인들에게 큰 영감과 희망을 줄 수 있는데, 그 기회를 애써 포기한다는 것에 동의할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이 단체는 기념관 내에 또 하나의 동상을 세웠다. 이 동상은 루스벨트가 타고 있는 휠체어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아니, 루스벨트보다 그가 탄 당시의 휠체어가 더 주인공처럼 보이는 조각이다. 물론 이에 대한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그는 평생 장애를 가졌던 인물이 아니었고, 장애를 자신의 정체성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사람인데 후세 사람들이 그를 그렇게 규정해버리는 건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 번도 휠체어에서 일어나 본 적이 없는 매슈는 자신이 어떻게 묘사되기를 원했을까? 그 아이의 바람과 부모의 바람 중 어느 쪽이 더 중요할까? 하나의 정답이 없는 질문이지만, 그럼에도 계속해서 사회가 묻고 답해야 할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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