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最古기업 '두산' 3기 청사진은 수소·드론·로봇

명순영 입력 2021. 1. 26.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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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조정을 진행 중인 두산그룹이 소송 악재를 넘기고 다시 성장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두산은 최대 1조원 부담을 질 수 있었던 두산인프라코어차이나(DICC) 소송에서 사실상 승소했다. 이로써 3조원 규모 자구안 이행에 청신호가 켜졌다. 두산은 “두산인프라코어 매각을 예정대로 진행한다”고 밝히며 현대중공업과의 남은 절차를 순조롭게 마무리 짓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두산은 최근 ‘분당 두산타워’ 입주를 시작했다. OB맥주로 상징되는 1기, 두산중공업·인프라코어의 2기에 이어 2021년 3기 ‘분당 시대’를 연 셈이다. 그룹은 두산퓨얼셀을 중심으로 친환경 사업 계열사를 분당으로 모아 청사진을 만들어낸다는 계획이다.

▶DICC 소송에서 겨우 승리해 한숨

▷인프라코어 매각 본계약 가능할 듯

지난 1월 14일 두산그룹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껄끄러운 걸림돌을 하나 제거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2011년 기업공개(IPO)를 조건으로 외부 투자금 3800억원을 유치했다. 당시 계약에는 상장 불발 시 외부 재무적 투자자(FI)가 동반매도청구권(드래그얼롱·Drag Along, 잠깐용어 참조)을 행사해 DICC 지분 100%를 매각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두산 측은 이에 대한 대응 차원으로 우선매수권(콜옵션)을 확보했다. 약속했던 주식 상장에 실패한 이후 외부 재무적 투자자와의 소송전이 불가피해졌다. 외부 투자자가 동반매도청구권을 행사해 DICC 지분 100%를 매각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때 두산이 실사에 협조하지 않았고 외부 투자자가 계획한 매각은 불발로 끝났다.

외부 투자자는 두산인프라코어를 상대로 7093억원 주식 매매대금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1심에서 두산이 승리했지만 2심 법원은 투자자 손을 들어줬다. 이후 대법원 판결이 두산 구조조정의 최대 변수로 떠올랐는데 두산 승소로 결론났다. 2015년 11월 소송이 시작된 지 약 5년 2개월 만이다. 두산인프라코어가 패소했다면 외부 투자자 지분을 되사야 해 1조원에 가까운 우발채무가 발생할 터였다. 두산인프라코어를 매각해도 그룹에 들어오는 현금이 부족해 재무구조 개선안 이행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두산그룹 내부에서는 반신반의했던 판결 결과가 두산의 승리로 끝나자 최악을 피했다는 안도의 분위기가 뚜렷하다.

대법원은 두산인프라코어가 DICC 매각 작업을 방해한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투자자들이 투자금 회수 방안을 확보하기 위해 ‘동반매도청구권’ 조항을 약정한 경우 계약 당사자들은 상호 간의 협조 의무를 부담한다”면서도 “협조 의무를 위반했다는 사정만으로 민법상 ‘신의성실에 반하는 방해 행위’가 있었다고 볼 수는 없다”고 밝혔다.

대법원 판결로 두산인프라코어 매각은 예정대로 진행된다. 두산은 1월 말 현대중공업지주·KDB인베스트먼트컨소시엄과 두산인프라코어 주식매매계약(SPA·Share Purchase Agreement)을 체결할 예정이다.

불씨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소송 결과에 상관없이 외부 투자자는 동반매도청구권 카드를 여전히 갖고 있다. 동반매도청구권을 행사하면 DICC지분 일부는 제3자에게 팔린다. 매각을 위해 두산이 외부 투자자 지분 20%를 사오게 되면 매각 작업에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 특히 대법원이 실사에 협조해야 한다고 판단한 만큼 2015년과 달리 매각 여지가 남았다. 외부 투자자가 “100% 지분 매각과 이에 협조 해야 한다는 의무를 법원이 모두 인정했다”며 “동반매도청구권 행사를 논의 중” 이라고 밝힌 것은 이를 말해준다. 두산 인프라코어 매각의 구체적인 밑그림도 아직 뚜렷하지 않다. 한영수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두산그룹이 두산인프라코어를 분할해 영업 부분만 매각할 것으로 알려졌는데 분할 뒤 그룹에 잔류하는 쪽의 처리 방법을 아직 알 수 없다는 점도 불확실성”이라며 “잔류 파트를 두산중공업으로 합치는 방식을 택한다면 인프라코어 투자자 불만을 살 수 있을 것” 이라고 말했다.

▶3조원 자구책 실현 막바지 돌입

▷솔루스·모트롤…돈 되는 건 다 팔아

두산그룹 구조조정은 지난해 3월 채권단으로부터 1조원 규모 긴급 수혈을 받으며 시작됐다. 이후 두산은 채권단과 3조원 규모 자금 마련을 약속했다. 두산중공업 등 주력 계열사들이 만기 도래하는 빚을 못 갚는 지경에 이르자 채권단 지원을 전제로 이 같은 규모의 자구안을 이행하겠다는 계획을 제출한 것이다. 두산은 즉각 실행에 옮겼다. 1998년 부터 본사 사옥으로 쓰던 서울 동대문 두산타워 매각은 상징적으로 받아들여진다. 두산타워 빌딩은 부동산 전문 투자업체인 마스턴투자운용에 8000억원에 팔렸다. 지난해 9월에는 ㈜두산 유압기 사업부인 모트롤과 동박 생산업체 두산솔루스를 각각 4530억원, 6986억원에 매각했다. 모트롤 사업부는 소시어스-웰투시컨소시엄이, 두산솔루스 지분은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가 가져갔다. 앞서 지난해 8월 두산중공업 골프장인 클럽모우CC도 1850억원에 매각을 완료했다. 매각대금 중 회원권 입회보증금 반환 비용 등을 제외한 1200억원을 갚은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달 벤처캐피털 네오플럭스 지분 96.77%를 신한금융지주에 730억원을 받고 팔았다. 속도감 있는 매각을 통해 두산은 2조2000억원 재원을 확보했다.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 등 ㈜두산 대주주는 책임 경영 차원에서 보유 중인 두산퓨얼셀 지분 23%를 두산중공업에 무상 증여했다. 1월 말 두산인프라코어 매각 본계약을 체결하면 채권단인 산업은행과 약속한 총 3조원 규모 자구안이 마무리된다.

▶올해부터 ‘분당 시대’ 개막

▷친환경 계열사 집결…시너지 기대

구조조정을 끝낸 이후의 두산 규모는 크게 쪼그라든다. 두산은 1896년 서울 배오개시장(현종로4가)에 문을 연 포목상 ‘박승직 상점’을 시초로 하는 국내 최고(最古)기업이다. 이후 OB맥주로 상징되는 소비재 그룹으로 자리매김했다. 1990년대 OB 맥주와 음료, 의류, 전분당 사업 등 소비재 부문을 모두 매각하고 한국중공업과 고려산업개발, 대우종합기계, 밥캣 등을 인수했다. OB맥주의 1기에 이어 두산중공업과 인프라코어의 2기로 넘어간 것. 이 과정은 경공업에서 중공업으로의 극적인 전환으로 호평받았다. 국내 재계 역사에서 ‘M&A(인수합병)를 통한 그룹 포트폴리오 전환’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힌다.

그러나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에서 시작한 세계 경기 침체로 건설과 건설장비 사업이 타격을 입었다. 재무구조에 어려움을 겪게 된 두산그룹은 2016년 박정원 회장 취임 이후 구조조정 모드로 진입했다. 인프라코어, 모트롤 등 돈 버는 ‘효자’ 계열사들이 매각됐거나 매각 절차를 밟고 있다. 그나마 덩치가 좀 있는 밥캣마저도 매각될 가능성이 남았다. 3기 두산은 ‘차’ ‘포’를 떼어놓고 장기를 두듯, 주력 계열사 없이 비즈니스 전쟁터에 나서야만 하는 어려운 형국에 놓였다. 이 때문에 두산그룹이 충실하게 자구안을 이행하다 역설적으로 성장 동력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과거 현대그룹, 한진그룹 등이 주력 계열사 매각을 추진했다가 경쟁력을 잃은 사례와도 비교됐다. 사면초가 상황에도 불구하고 3기 두산그룹에 대한 기대감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두산그룹 내 일부 계열사가 미래에 다가올 메가 트렌드를 주도할 역량을 갖추고 있어서다. 그룹 부활 선봉에선 계열사는 두산퓨얼셀이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친환경 경제로의 전환은 불변의 흐름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두산퓨얼셀은 수소경제 핵심인 연료 전지 전문기업으로 정부가 발표한 수소사업 로드맵의 가장 큰 수혜자로 평가받는다. 발전용 연료전지는 수소와 산소의 전기 화학 반응을 통해 전기와 열을 생산한다. 배기가스가 전혀 없는 친환경 발전 시스템으로, 발전 효율이 80%를 웃돈다. 두산퓨얼셀은 시장 진입 후 3년 만인 2018년 처음으로 수주 1조원 을 넘어섰다. 2023년 매출 1조5000억원을 달성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전혜영 KTB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내년 도입 예정인 HPS(수소발전 의무화 제도) 비율 1%를 가정해본다면 국내 이미 설치된 300㎿ 규모만큼 추가 연료 전지 발전 설비가 필요하다”며 “단기간 연료전지 발주량이 빠르게 확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나민식 상상인증권 애널리스트는 “두산퓨얼셀은 국내 수소경제 가치사슬 중 기업 규모가 가장 크고 기술력이 가장 뛰어나 수소경제 대장주로 부를 만하다”고 평가했다. 두산모빌리티이노베이션(DMI)은 두산퓨얼셀 등이 쌓아온 기술을 토대로 연료전지를 소형화해 드론에 탑재한다.

DMI는 세계 최초로 수소드론을 생산한데 이어 양산·사업화 단계에 도달한 유일한 기업이다. 최대 5㎏ 화물을 탑재할 수 있고 최대 비행시간은 120분이다. 기존 리튬이온 배터리 드론 비행시간이 최대 30분에 그친 것과 비교하면 성능이 월등히 뛰어나다. 로봇에서도 앞선다. 두산로보틱스는 작업자와 같이 일할 수 있는 ‘협동로봇’ 전문기업이다. 협동로봇은 로봇과 사람이 업무 분담을 해 작업자와 별도로 작업하는 기존 산업용 로봇 대비 생산 효율이 높다. 두산 협동로봇은 특히 업계 최고 수준 충돌 감지력으로 안정성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7년 10월 처음 출시한 4개 모델 이후 현재 10개 모델을 양산한다. 국내 협동로봇 시장점유율 1위로 전 세계 협동로봇기업 중 라인업이 가장 많고 탄탄하다. 두산의 협동로봇 생산 공장 주요 공정에서 사람과 협동로봇 완제품이 협업해 제품을 만드는 장면도 이채롭다. 말 그대로 ‘로봇이 로봇을 생산하는 광경’이 현실화 된 셈이다. LG화학, 현대차 등 국내 기업은 물론 콘티넨탈, 로레알, 야마하 등 굵직굵직한 해외 기업이 고객사다. 출범한 지 2년이 채 안 되는 두산로지스틱스솔루션(DLS)은 비대면경제가 불러온 물류 시장 확대 붐을 탔다. DLS는 물류 프로세스 전 과정을 관리하는 시스템 전반을 공급하는 물류 자동화 토털 솔루션기업으로 성장성이 기대되는 계열사로 호평받는다.

문재인정부 탈원전 정책으로 고전했던 두산중공업은 새로운 기회를 엿본다. 친환경 발전 강자로서의 위상 재정립이 핵심 전략이다. 최근 가스터빈 발전, 풍력 발전, 수력 발전 등 친환경 발전소 시장으로 보폭을 넓혔다. 지난해 말 미국령 괌에서 6000억원 규모 복합화력 발전소 수주에 성공했다. 한국남동발전과 해상풍력 활성화를 위한 양해 각서도 체결했다.

잠깐용어*동반매도청구권(드래그얼롱·Drag Along) 소수 주주가 지배주주 지분까지 끌고 와 제3자에게 매각할 것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 드래그얼롱은 콜옵션 (우선매수청구권)과 함께 붙어 다니는 경우가 많다.

[명순영 기자 msy@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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