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시선] 법치주의 무너뜨린 경찰

남상훈 2021. 1. 26.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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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집행 드러난 이용구 차관 사건
엄정한 처벌·사태 재발 막아야 국민 신뢰 회복

불과 얼마 전에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에 대한 출국금지 절차의 불법성이 크게 논란된 바 있는데, 이번에는 이용구 법무부 차관에 대한 경찰 조사과정의 불법성이 다시금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권력기관들의 적법절차 경시가 계속 문제 되고 있는 것이다.

‘적법절차’는 영국에서 발전된 ‘법의 지배(rule of law)’를 미국식으로 발전시킨 것이며, 오늘날에는 법치주의를 실현하는 대표적인 원칙의 하나로 널리 인정되어 우리 헌법에도 수용되고 있다. 적법절차는 불법적인 절차를 통해 정의로운 결과가 나올 가능성은 극히 미미한 반면에, 불법적인 절차에 의해 침해되는 인권은 매우 심각하다는 점에 대한 인류 역사의 경험을 반영한 것이기 때문이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헌법학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수사기관에서는 범인의 검거라는 목적 달성을 위해 절차적 정당성을 무시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그 좋은 예가 김학의 출국금지에서 절차의 불법성을 아랑곳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런데 이 차관의 경우는 단순히 정당한 절차를 밟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불법행위의 증거가 담긴 블랙박스 영상을 폐기하도록 종용한 점이 문제 되고 있으며, 더욱이 경찰에서 관련 영상을 확인하고도 법 집행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점은 매우 심각한 문제라고 볼 수 있다.

많은 국민이 이 차관의 사건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보이는 것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한편으로는 최근의 법무부 사태, 특히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갈등과 관련해 이 차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도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택시기사 폭행이라는 사건이 갖는 상징성, 즉 상류층 인사의 갑질 행태에 대한 분노도 있다. 그러나 가장 주목되는 점은 경찰의 수사과정에 대한 관심이다.

최근 검경 수사권 조정이 진행되면서 경찰권력의 비대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수사권 조정의 기본방향에 대해서는 찬성하면서도 그 선행조건이 갖춰졌는지에 대해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고, 심지어 지나치게 서둘러서 수사권 이양을 해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할 것이라는 예측도 만만치 않다. 문재인 대통령도 취임 초기에 수사권 조정의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그 전제조건으로 경찰의 개혁을 주문한 바 있는데, 과연 경찰의 하부조직까지 충실한 개혁이 있었는지 의심스럽고, 이런 상황에서 수사권의 확대·강화는 결국 권한의 오남용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버닝썬 사건 등에서 드러난 경찰 비리는 예외적인 사례라고 치더라도, 과거 경찰에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뀐 경우가 드물지 않았다는 지적도 많았고, 무리한 수사로 인해 관련 당사자들의 인권침해가 적지 않았다는 비판도 있었다. 나아가 각종 인맥이나 사회적 지위를 고려한 봐주기 수사도 끊임없이 문제 되었다. 그런데 이 차관 사건의 수사과정에서 보여준 경찰의 태도는 이러한 비판과 우려가 충분히 해소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과연 담당 수사관의 개인적인 일탈인지, 아니면 경찰 내부에 가해자의 신분을 고려해 적당히 처리하는 관행이 아직도 만연해 있는 것인지는 향후 진상조사를 통해 밝혀져야 할 것이다. 분명한 것은 경찰의 거짓 해명으로 경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심각하게 훼손되었을 뿐만 아니라, 검경 수사권 조정에 대한 불안감도 커졌다는 점이다.

최근 한국법제연구원에서 국민의 준법의식은 아직도 서구 선진국에 비해 약하다는 조사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법을 제대로 지키는 것이 오히려 손해이고, 적당히 눈치껏 하는 것이 현명한 사회생활이라는 생각에서 찾을 수 있다. 그 결과 법치가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하고, 이른바 ‘눈치껏 불법’이 당연시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가장 엄정하게 법을 집행해야 할 법무부와 검찰, 경찰에서까지 법적 기준을 지키지 않고, 적법절차를 경시한다면 어떻게 국민에게 준법을 강조할 수 있는가? 이번 사건들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더불어 적법절차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권력기관 내부에 깊이 뿌리내려야 한다. 나아가 적법절차 위반에 대한 엄정한 책임이 뒤따라야 유사 사태의 재발을 막을 수 있으며,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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