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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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의 시시각각] 재난지원금이 부채질한 K양극화

김동호 입력 2021. 01. 27. 01:03 수정 2021. 01. 27. 0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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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겨냥한 코로나 돈 풀기 과열
약자 더 힘들게 하는 위선 멈추고
재난지원금, 빈곤층에 집중해야
김동호 논설위원

서울 강북의 한 식당. 신선한 삼겹살에 소시지와 계란·치즈구이…. 다 열거하지 못할 만큼 한 상 가득 찼다. 다양한 재료가 듬뿍 들어간 해물탕은 덤이다. 방역도 호텔급. 개별 마스크 봉투에다 일회용 앞치마까지 제공된다. 가격은 1인당 1만5000원. 이런 폭탄세일은 본 적이 없다. 마치 “손님! 이래도 안 오실 건가요?” 같았다. 그러나 평소 고객이 북적댔던 흔적이 역력한 이 식당에는 적막감마저 돌았다. 점심 내내 일행 3명이 조용한 분위기에서 밥을 먹었다.

그날은 정세균 국무총리가 국회에서 자영업자의 어려운 처지를 설명하던 중 감정이 북받쳐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보였다는 소식이 나온 직후였다. 그 진심을 공감할 수 있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마음도 다르지 않을 터다. 그는 코로나에 지친 국민을 위로하고 소비를 진작해야 한다면서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거듭 주장하고 있다. 국민의 고통을 보듬으려는 노력이다.

하지만 정치인은 더 큰 안목이 필요하다. 아무리 좋은 의도라도 부작용을 살펴야 한다. 무엇보다 불평등의 부채질이 문제다. 1차 전 국민 재난지원금 14조원의 경기부양 효과는 최대 36%에 그친 것으로 분석됐다. 국책연구기관의 분석이었다. 신용카드로 지급되니 소비할 수밖에 없지만, 여유 있는 사람들은 그만큼 자신의 돈을 덜 쓰게 된다. 부자 주머니만 불렸다는 얘기다.

이렇게 형편 좋은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싶지만 꽤 많다. 지난해 연봉 1억원을 넘어선 근로자는 85만 명을 돌파했다. 국회의원은 세비로 불리는 연봉을 올해도 어김없이 셀프 인상했다. 대통령을 비롯한 110만여 공무원도 연봉이 뛰었다. 평범한 사람들도 직장이 있으면 당장 위기는 없다. 더구나 아파트라도 한 채 있거나 지난해 주식투자에 나섰다면 재산은 더 불어났다.

그사이 영세 자영업자를 중심으로 K 양극화의 골은 깊어졌다. 3분기 소득 상위 20% 가구의 월소득은 전년 동기 대비 2.9% 늘어난 1039만7000원에 달했다. 소득 하위 20% 가구의 월소득은 1.1% 줄어든 163만7000원이었다. 코로나 사태가 대면 접촉이 불가피한 취약계층에만 일자리 감소의 직격탄을 날린 결과다. 이 마당에 월소득 1000만원이 넘는 고소득 4인 가족에게도 100만원씩 퍼줬으니 빈부격차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정치인들은 또 국민을 공짜의 길로 유혹하고 있다. 4월 7일 선거가 다가오자 4차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을 서두르면서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전 국민 지급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고, 이재명 지사는 “지역화폐로 지급하자”고 주장했다. 이에 질세라 정세균 총리는 자영업자 손실보상제를 꺼냈다. 문재인 대통령도 제도화 검토를 지시했다. 자영업자들은 환영하겠지만, 없는 재원을 억지로 만들게 되니 시장은 즉각 부정적으로 반응하고 있다. 적자 국채 급증 우려에 국채금리가 가파르게 치솟으면서다. 결국 경제 약자들은 조만간 이자 폭탄을 맞게 된다.

사람이 공짜를 좋아하는 것은 보편적 진리다. 여론조사에서도 국민 상당수가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찬성했고, 지난해 1차 전 국민 재난지원금 당시 99.5% 국민이 돈을 받아갔다. 포퓰리즘은 이 지점을 파고든다. 수십조원의 예산이 필요한 손실보상제, 대기업의 팔을 비트는 이익공유제, 정부 출연금이 동원되는 사회연대기금법은 모두 약자를 돕는다는 명분 아래 오히려 시장을 왜곡하고 빈곤층에 집중해야 할 몫을 빼앗는 위선의 수단이 될 수 있다.

천문학적 재난지원금을 뿌리는 미국을 우리와 견주기도 한다. 하지만 미국의 사회·경제 구조는 우리와 많이 다르다. 일단 달러를 찍어내는 특권을 가져 재정이 거의 화수분이다. 해고가 쉽고, 월세를 못 내면 홈리스가 되는 월세살이가 많은 것도 우리와 다르다. 우리는 우리 실정에 맞아야 한다. 바로 절박한 사람에 대한 집중적 지원이다. 그게 포퓰리즘도 막는 길이다.

김동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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